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 하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책인 Pape Satàn Aleppe가 나왔다. 이탈리아 레스프레소 지에 게재했던 칼럼 모음집이며, 아마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으로부터 이어지는 시리즈의 마지막일 것이다. 원래 이 책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2019년 빨리 보고싶은 열린책들의 표였다(참조 1). 파페 사탄 알리페가 도대체 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적절한 제목이라 할 수 있는데 우선 2019년 9월로 예정했던 책이 2021년 1월에 나왔음은 그동안 열린책들에 뭔가 사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겠다. 게다가 아마 가장 큰 문제는 이탈리아어판이 아니라 웬 뚱딴지 같은 독일어판을 번역 원본으로 삼았다는 것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이탈리아어 독음을 이상하게 한 곳이 눈에 띄였기 때문이다(참조 2).


그러고 보면 움베르토 에코 에세이집의 번역자들이 죄다 다르긴 했었다(참조 3). 실제로 이탈리아어를 아는 김희정씨나 에코에 왠지 특화된 것 같은 이세욱씨가 하면 안 됐을까? 그런데 이 한국어판에는 굉장히 큰 문제가 있다.


이탈리아어판(참조 4)의 차례와 한국어판의 차례를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Introduzione / 소개

La società liquida / 유동사회

A passo di gambero

Essere visti

I vecchi e i giovani / 늙은이와 젊은이

On line / 인터넷 세상

Sui telefonini

Sui complotti / 음모와 대중매체

Sui mass media

Varie forme di razzismo / 인종주의의 여러 형태

Sull’odio e la morte

Fra religione e filosofia / 철학과 종교 사이

La buona educazione

Sui libri e altro / 글을 쓰고 읽는 것에 대하여(참조 5)

La Quarta Roma

Dalla stupidità alla follia / 뻔뻔하고 멍청한 인간부터 황당하고 정신 나간 인간들까지


어떠신가? 사실 이 한국어판은 독일어판(참조 6)의 차례와 글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어판과 독일어판의 문제는 동일해진다. 차례가 단순화됐고, 칼럼의 배치가 제멋대로가 됐다. 이탈리아어판은 A 챕터에 들어간 것이 한국어판에서는 B 챕터에 들어간 사례가 많다. 또한 번역이 안 된, 그러니까 누락된 칼럼들이 꽤 많이 생겼다. 번역도 아마 독일어를 베이스로 했기 때문에 원어와의 뉘앙스 차이가 발생하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참조 7).


그렇다면 열린책들은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어째서 원어판과 비교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해도 좋은 것일까? 원어판과 많이 다르다는 안내 글이라도 들어갔다면 좋잖았을까? 감수를 독일어 구사자들만 했을까?



그래도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책이니 그런대로 재밌게 읽어내려갈 수는 있지만 말이다. 책 얘기를 못 하고 말았는데… You know Eco. 아니, Conosci Eco, v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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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2019년 1월 9일 : https://www.facebook.com/openbooks.kr/posts/1988999697822324


2. 이를테면 p71의 “로 스페치오”??? 아니 왜 이런 간단한 이탈리아어 단어(“거울”의 의미다, 발음은 /스페키오/) 독음을 저렇게 했는지, 어째서 편집부에서 거르지 못 했는지 모르겠다. 번역자가 이탈리아어를 모르거나 최소한 익숙하지 않다는 걸 보였을 뿐이다.


3. 반면 이 책이 원본으로 삼고 있는 독일어판의 역자인 Burkhart Kroeber는 그간 독일어로 나온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 전체를 그가 혼자 했었다.


4. 내가 갖고 있는 건 전자책으로 나온 Umberto Eco. ‘Pape Satàn Aleppe: Cronache di una società liquida (Italian Edition).’이다.


‘La nave di Teseo, Milano’ 2016, ‘ISBN 978-88-9344-021-9’


5. 당연히 직역은 아니다. 움베르토 에코가 굳이 저런 제목을 택한 이유는, “책과 기타등등”에서 책과 관련된 모든 주제를 넣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6. 독일어판 차례는 아마존의 미리보기에서 보실 수 있다. https://www.amazon.de/dp/3423146486/ref=cm_sw_r_tw_dp_vUxeGbS6S0K9H


7. 가령 p288에서는 “로마노 프로디가 선거에서 이겼을 때…”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탈리아어판은 “프로디가 총선에서 겨우 이겼을 때…”로 나와 있다. 아마도 독일어판 번역을 따랐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 것이다. 나는 이어지는 칼럼 내용상 “겨우”라는 단어가 들어갔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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