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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선생님과의 통화 내용들을 곱씹어 보았다. 그러면서 요즘 시에 대한 내 생각들을 또 하게 되었다. 내 시집에 대한, 내가 간추린 선생님의 평가의 요지는 어쩌면 요즘 나의 생각에 빗대어진 자의적 해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내가 순진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내 시집과 마침 우리 잡지사에서 일괄 배송한 시 잡지를 같이 받았는데, 거기에 시가 하나도 없다고 분개했다. 그러면서 나를 차라리 추켜올렸다. 시 잡지인데 시가 없다 함은, 그가 보기에 시다운 시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나로서는 사실 그의 이런 다른 시인들에 대한 평가가 놀랍지는 않다. 그는 형편없는 시인은 아예 시인이 아니라고 평가절하해버리기 일쑤다. 그런 태도가 좋다 나쁘다, 판단할 생각은 없다. 그러한 거침없는 평가는 양가적인 데가 있지만, 나는 차라리 그의 그런 솔직한 면모를 좋아하기는 한다.

그가 내게 순진하다고 표현한 것은 아마도 내가 시집 안에서 너무 많이 벌거벗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시집을 내놓고, 몹시도 민망한 데가 있는 것은 너무 적나라하게 내 안의 것을 끄집어내서이다. 선생님께도 고백했듯이, 또 '시인의 말'에도 적어두었듯이 분명 그것이 나의 흔적일지라도, 이제는 너무 오래 되서, 이제는 정서적으로 너무 멀리 떠나와서 내가 그곳에 없고, 내가 더는 지향하지 않는 세계라 할지라도, 그것이 내 흔적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독자는 그것이 나의 현재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여하튼 선생님의 '순진'이라는 지적은, 벌거벗는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내가 뭘 얻었느냐로 들린다. 내가 크게 곡해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요즘 시에 대한 내 고민과 일치한다.

선생님이 차라리 나를 추켜올리며 다른 시인들의 신작시를 폄하한 것은 아마도, 그들은 벌거벗기는 커녕 꽁꽁 싸맨 채 시인의 흉내를 내고만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속엣말은 하나도 꺼내놓지 않은 채, 격식만 그럴싸하게 차린 예쁘장하고 무의미한 말만 늘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차라리 이물질이 섞여있더라도 내 속을 다 들어낸 내가 낫다는 의미일 텐데, 시적 과도기에 있는 나로서는 그것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어차피 나는 다른 시인들의 사정은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한 시 잡지에 발표한 시에서 나는 이런한 시적 고민을 은근히 고백하기도 했다. 요즘 나의 관심사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최대한 솔직할 수 있을지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선생님의 지적과 만나는 지점이 있다. 어쩌면 나는 한때 강박을 가지고 내 치부를 다 드러낸 것인데, 그게 어쩌면 굉장히 큰 모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벌거벗되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 불필요한 것은 보여주지 않는 그런 균형을 가져야 되는데, 나는 무턱대고 벗고 본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그것이 흉이라고 생각지 못했거나, 치기어린 마음에 상관 없다는 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나의 그 노고를 인정은 하지만 그건 순진한 데가 있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선생님은 정리하는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한 시절을 묶은 것은 이해하지만, 자신이라면 그것마저 버리고 새로 시작했을 거라고 했다. 그 마음도 이해가 간다. 내가 이 시집을 마지막으로 투고하기 전 수도 없이 고민했던 지점이니까. 이 치부의 흔적을 그래도 남길 것이냐, 아니면 과감히 버릴 것이냐.

결국 나는 치부를 드러내는 쪽을 택했다. 치부를 드러내기를 택했다기보다, 그 시절을 묶어내는 데 동의한 것이지만 마지못해 그 위험도 감수했다는 뜻이다. 선생님은 그래서 이어 말하기를 내 다음 시집이 오히려 기대된다고 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내가 벗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차라리 내 알몸을 보여주기보다 예쁜 옷을 고르는 데 더 관심이 가기 때문이다. 다음 시집의 결과가 어떨지는 사실 나도 알 수 없지만, 방금 고백한 방향으로 가게 된다면 선생님은 이제 더는 내 안에 시가 없음을 확인하고 내게서 돌아설지도 모르겠다.  


시인이 되기란, 시인으로 살기란 만만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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