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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근처의 다른 잡지사 겸 출판사의 편집장과 식사를 했다. 그는 시조 시인이기도 하다. 시조 시인이라고 하니 나이가 있을 것 같지만 심지어 젊다. 우리는 서로의 시집도 주고받았다. 간간이 그의 얘기를 들었지만, 15년이나 근무를 했다는 말에 놀라웠다. 출판을 겸하는 소규모 잡지사야 어디나 그렇겠지만 근무 처우가 열악한 편인데, 한자리에 그렇게 오래 머무른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려 명문대의 박사 학위 소지자다. 발행인이 그의 은사이기 때문에 한자리를 오래 지키고 있는 것도 있겠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잡지사의 편집장과 대학 시간 강사를 병행하며 버티고 있는 것이다. 교수가 되기 위해. 결혼도 했고, 어린 자식까지 있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얼마나 많은 실력 있는 연구자들이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을까. 그가 털어놓는 여러 궤적들과 열정들에 귀 기울이고 있자니 그가 교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내내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강조했지만, 또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기도 하지만, 그가 부디 원하는 길을 걸어가기를 바란다.

사실 우리 잡지사도 앞서 몇몇의 시인들이 편집장을 거쳐갔고, 그들 중 누군가는 교수가 됐으며, 또 누군가는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나는 교수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럴 능력도 안 되지만, 어딘가에 얽매일 자신이 영 생기질 않는다. 교수는커녕 이 자리를 오래 지킨다는 전제하에 언제가는 물려받을지 모를 편집장이 되고 싶은 생각조차도 없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라는 얘길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나는 자꾸만 도망치고 싶어진다. 어쩌면 이건 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것이 꼭 나쁘지는 않다. 나는 힘닿는 데까지, 나의 방식으로 여기저기서 인생을 저질러보고 싶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특별히 맛있지는 않아도, 자꾸만 손이 가는 이 인생이라는 빙과가 자꾸만 녹아 없어지는 것이 아깝다. 이것이 다 없어지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 먹으면 더 맛있을 수 있을지 거듭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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