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결심했다고 가정해보죠.
결심한 순간에는 확고합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적게 먹고 밤이 되면 어떻죠?
친구가 옆에서 케이크나 치킨을 먹고 있으면요?
마음속에서 무슨 말이 들리나요?
- ‘오늘 너무 굶어서 이렇게 안 먹으면 뇌가 제기능을 못할지도 몰라. 머리가 잘 돌아가야 과제를 제대로 하지.’
- ‘적게 먹는 것보다 내일부터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 그래야 건강하게 다이어트가 되는 거잖아.’
- ‘그래. 중요한 건 인간관계지. 다이어트는 내가 혼자 하는 건데 나 때문에 분위기 망치면 안 되잖아.’
- ‘오늘은 감기 기운이 좀 있는 것 같아. 이럴 땐 먹어야 돼.’
- ‘내일부터 하자. 내일이 월요일이니까 날짜도 좋잖아.’
오죽하면 “맛있게 먹으면 칼로리”라는 말이 유행했을까요.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말이 안 되더라도 그 순간 그럴듯하게 들리는 메시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메시지들이 왜 그제야 들리는 것일까요?
처음 결심했을 때는 왜 들리지 않았을까요?
마음은 여러분이 주인인 하나의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사보타지를 혹시 아시나요?
익숙한 단어는 아니죠?
이는 중세 유럽의 ‘농민들이 나막신을 신고 수확물을 짓밟던 행위’를 뜻합니다.
사보는 프랑스어로 나막신입니다.
그들은 왜 수확물을 망가뜨렸을까요?
대놓고 영주들에게 항의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니 숨어서 원래 주인의 목적이 달성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겁니다.
파업과는 다릅니다.
파업은 대놓고 일을 하지 않는 것인데 중세에는 그럴 수 없었겠죠.
마치 우리 마음처럼 주인이 존재했을 테니까요.
주인에게 대놓고 거부 의사를 비치면 그는 그 주인에게 제재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만약 파업사태가 일어나면 사보타지보다 해결이 쉬울지도 모릅니다.
파업은 거부하는 이들이 눈에 보이고 그 이유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보타지는 숨어 있기 때문에 해결이 어렵습니다.
심지어 그런 방해가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수도 있죠.
일을 게을리하는 것과도 다릅니다.
사보타지는 단순히 농땡이 피우는 것보다 적극적입니다.
목적이 이뤄지는 것을 방해하고 그 주체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결심했는데도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 결심을 잊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버리는 경험을 해봤을 것입니다.
아니면 계속 결심만 하고 행동을 미루는 적도 있었겠죠.
마음을 먹었는데 왜 그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일까요?
우리의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이유는 마음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오히려 조직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보타지가 벌어지고 있지요.
여러분의 목적을 숨어서 방해하는 무리입니다.
다이어트가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사보타지가 우리 안에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마음 설계의 힘> p289. 24강 사보타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