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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대학원 소설창작 수업에서 우연히 접한 소설가 김홍이 장편소설 이후 드디어 첫 소설집을 묶어내 그것을 읽고 있다. 그때 나는 그의 병맛에 가까운 광기에 아낌없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을 했지만, 그의 소설은 수업 중 호불호가 지나칠 만큼 갈려 누군가는 혹평 중에서도 아주 가혹한 혹평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문학계의 주성치라는 별명을 얻은 것 같다. 출판사 홍보였던가, 어디서 그런 카피를 봤다. 뭐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지금 절반 정도, 그러니까 단편 4개를 읽었는데, 그의 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개략적으로 빠르게 훑어주는 느낌이 있다. 2년 전에 처음 봤던 <실화>라는 단편도 다소 그런 느낌이었다. 디테일보다는 속도감과 유머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랄까. 아직은 그보다는 오한기 소설가에게 더 끌리기는 한다. 이제는 지겨운, 문학 작품을 두고 벌이는, 정치냐 미학이냐의 논쟁에서 예전에는 무조건 미학에 손을 들어주었고, 김홍을 응원하는 것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사실 지금은 그것이 정치와 미학 중 택일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고, 두 가지 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지금은 다소 귀한 남자 소설가들의 유머러스한 소설 미학들은 여전히 응원하고 싶어진다. 김홍의 소설집을 다 읽은 뒤에는 이제 막 나온 오한기의 <인간만세>를 읽을 예정이다. 여하튼 두 소설가 모두 만세다.


*


다음 주 수요일까지 마감해야 할 시의 초고를 완성했다. 어제는 너무나 지지부진해서 정말 큰일 났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꽤 쉽게 풀렸다. 손은 조금 더 봐야겠지만 만족스러운 편이다. 몇 달 전 친구와 다녀온 캠핑에서의 정황들을 가지고 <조난자(가제)>라는 시를 썼다. 쓰고 보니 거의 친구를 향한 헌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 문제는 그 친구가 시를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 쓰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다면, 누군가를 위한 시를 써도 당사자가 대체로 알아듣지 못한다는 데 있다. 시 장르의 태생적 난해함 때문일 수도 있고, 상대의 독서 체험 한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자의 탓이 더 크다. 이것은 꼭 내가 우리 말을 모르는 외국인에게 뭔가를 고백하는 느낌이다. 그를 위해 뭔가를 얘기해주는데, 그가 그걸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토록 난감한 상황이라니.

사실 나는 이런 것이 내내 고민이어서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요즘은 지나친 수사를 쓰지 않으려고 한다. 시라는 것이 정보 전달의 언어라기보다는 언어 미학 자체의 목적이긴 하지만, 때로는 전달해야 할 때도 있다. 나는 그 중간이 어디일지를 늘 생각한다. 생각처럼 되지는 않을지라도.

서로의 말을 모르는 외국인들끼리 소통하려 하는 마음만 있다면, 어떤 식으로는 그 뉘앙스는 전달된다고 믿는다. 표정이든, 제스처든, 눈빛이든, 그 어떤 것으로든. 나는 바로 그런 것들을 지향한다. 나는 일부러 난해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독자 역시 마음을 열고 내 시를 읽어줬으면 한다. 다 알아들을 수는 없다고 해도, 어떤 뉘앙스가 전해졌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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