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더 재미있는 올림픽여자배구 5. 페이스북 곽한영 교수

- 마지막 세르비아전 이야기


. 세르비아전이 끝났습니다. 결과는 안타깝게 되었습니다만 그렇게 된 사정에 대해서는 마지막으로 조금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기고 지는 것보다 배구라는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니까요.


. 실은 어제 하루 우리 대표팀에 휴식을 주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걱정을 했습니다.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달았지만 우리보다 객관적으로 훨씬 강한 팀인 세르비아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약속된 플레이가 핵심일텐데 아예 하루를 쉰다는 것은 경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 그 조직력 강화훈련을 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곧바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아, 염혜선 선수의 상태가 심각한 모양이로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 염혜선 선수는 지난 시즌 후반부 연습과정에서 손가락뼈를 크게 다쳐서 수술을 하고 후반부를 통째로 날렸습니다. 오늘 유심히 염혜선 선수의 손을 보신 분들은 오른손 여러 마디에 밴딩을 한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스파이크나 블로킹을 하는 포지션에서는 손가락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밴딩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손끝의 감각이 중요한 세터가 밴딩을, 저렇게 부분적으로 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제가 차마 가슴이 아파서 사진을 링크할 수는 없습니다만 밴딩부위는 뼈접합수술을 한 부분이고 밴딩을 벗기면 길쭉한 흉터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여기에 철심을 넣었는데 지금 이걸 제거할 타이밍인데도 빼고 나면 한동안 운동을 못하기 때문에 철심을 넣은 상태에서 이번 올림픽을 소화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게다가 나머지 손가락에 힘이 걸리다보니 나머지 손가락은 멍이 들어있는 상태입니다. 이 부분은 현장에서 취재하시는 기자분들, 혹은 선수 본인만이 알수 있는 것이라 추측이긴 합니다만 4강전까지의 과정에서 부상부위의 상태가 악화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쩐지 4강전에서 현대 배구에서 금기시되어 있는 언더토스가 좀 많다 했는데 손가락을 펼쳐서 토스하는게 어려워서 그랬던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 즉, 다시 말하자면 세터가 쉬어야 하는 상태라면 딱히 조직력훈련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기 때문에 하루를 빼는 결정을 했을 것 같습니다.


. 안혜진 선수가 백업세터로 들어가 있긴 하지만 앞선 글에 쓴 것처럼 긴장을 많이하면 과호흡으로 쓰러지는 문제가 있을 정도로 스트레스에 약해서 큰 경기에는 약점을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세르비아전에서는 꽤 긴 시간 출장했고 말도 안되는 토스 미스도 몇 번 했습니다. 선수를 비판하기에 앞서 계속 불안함에 눈빛이 흔들리는 안혜진 선수를 보며 역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 지난 브라질전과 달리 세르비아전은 세터가 커버가 되었다면 해볼만한 경기였습니다. 저쪽의 보스코비치도 잘했지만 우리 팀에도 김연경과 박정아 선수가 있으니까요. 드물게 나온 양효진 선수의 센터 속공에 세르비아가 무방비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저런 게 세트당 7-8개만 나와도.. 제가 아는 걸 선수들은 당연히 알았겠죠. 그래서 오늘은 안되는 거 알면서도 김수지 선수가 아주 열심히 이동속공을 뛰었습니다. 김수지 선수가 공격 성공 못한다고 비판하는 채팅도 있던데 대부분 세터의 토스 미스였습니다.


. 세터의 토스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세르비아의 세터가 아주 잘 보여주었습니다. 게임을 보는 중에 머리카락이 설만큼 무서운 장면이 하나 나와서 설명드리려고 캡처해두었습니다.


. 첫 번째 사진을 보면 키 큰 세터가 점프를 해서 네트 상단 높이에서 볼을 올리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볼의 궤적은 세터가 올린 궤적이 아니고 받으려고 준비하는 단계입니다. 우리 팀 코트를 보면 센터블로커 김수지를 비롯해서 후위까지 모든 선수의 시선이 세터에게 몰린 상태입니다. 그런데 세르비아팀 코트에서는 19번 선수가 백어택을 하기 위해 뛰어가고 5번 선수가 속공을 하기 위해 뛰어갑니다. 누구에게 공이 갈지 모르는 상황이라서 우리 블로커가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 그런데 두 번째 사진을 보면, 우와.. 저 높이를 보세요. 저건 공격수가 공을 보고 뛰어오른 것이 아니라 공격수가 최대한 뛰어올라 그냥 팔을 휘두르면 바로 그 위치에 공이 배달된 상황입니다(하이큐라는 배구만화를 보시면 이런 '택배 토스'이야기가 여러 화에 걸쳐 길게 나옵니다. 만화같은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사진으로 보여드릴 수 없지만 세터가 공을 쏜 궤적은 총알같은 완전 일직선이었습니다. 우리 팀에서는 김수지 선수가 간신히 손을 뻗어보지만 사실상 아예 블로킹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상태입니다.


. 이런 장면이 한 세트에도 여러 번 나왔는데 제가 가장 혀를 내두른 것은 세터가 '시간차 토스'를 한 몇 장면입니다. 설명이 될지 모르겠는데 세터가 점프를 해서 공에 손을 뻗었다가 반대편에 블로킹이 올라온 것을 보고 손을 움츠려서 공과 함께 공중에 잠시 머물러서 블로킹이 떨어지기를 기다린 다음에 속공토스를 밀어서 완전히 노마크 상황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옛날 마이클 조던의 더블클러치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 이런 신들린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염혜선 선수가 부상이 아니었다면, 혹은 그 전에 이런 부상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레 국가대표에 차출되지 않고 좀더 여유있게 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었더라면 결과가 어땠을까 아쉽지만 언제나 모든 것이 준비된 상황에서 맞이할 수 있는 이벤트가 인생에 몇 개나 있겠습니까. 늘 상황은 이미 주어져있고 우리는 그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바로 그런 의미에서, 저는 뻔하지만 쉽지않은 미덕인 '최선'을 보여준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염혜선 선수가 수술후 처치가 제대로 안돼서 후유증이 있을 것 같아 제일 걱정이네요.


. 올림픽 배구글 첫 머리에 썼듯이 쫄보라서 나중에 경기 결과만 확인하고 싶었는데 그렇게는 안되더군요. 경기보다가 수명이 주는 줄 알았습니다. 즐거운 순간 만들어준 선수들과 감독, 그리고 함께 즐겨주신 페친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부터 이어지는 코보컵, 그리고 정규시즌에서 또 배구 이야기 많이 나누었으면 좋겠네요. (GS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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