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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의 흥행과 별개로 병영문화에 대한 설전들이 몇 보였다. 거기에 국방부까지 합세해 병영문화가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것까지. 어느 정도로 비난이 일었기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군필자로서 직접 시청을 해본 소감은 그게 국방부까지 나서서 변명할 일이었나 싶기도 하다는 것이다(물론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이겠지만). 드라마에서 그려진 군대 내 괴롭힘 문제가 대수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극적 구성을 위한 다소 극단적인 설정들로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드라마에서 그려진 일들이 현실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하는 건 또 아니다. 병영문화가 실제로 아무리 좋아졌다고 한들 어디에나 극단적인 인간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건 좀 다른 문제다.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이 말인즉슨, 군대가 아무리 폐쇄적인 곳이라고 해도 대개 입대 전 사회구성원으로 별 무리 없이 살던 사람들이 잠깐 거쳐 가는 곳인 것도 맞기에 집단 내에서 어느 정도 상식은 있다. 물론 군대라는 곳은 정말 이상해서, 멀쩡한 사람들이 부대만 들어오면 이상하게 변하는 경우도 적지는 않으나 모두가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2000년대 초반에 군 복무를 했던 나로서는, 현재의 군대 실정은 모른다. 그리고 사실 관심도 없다. 그냥 지금은 복무기간이 많이 줄었고, 군인들이 스마트폰도 쓸 수 있다는 것, 또 2000년대 초반에 비하면 그나마 월급이 조금 올랐다는 것 정도.

지금도 아마 군대 내 어딘가에서는 괴롭힘과 구타가 있기야 있겠지만, 내가 군 복무하던 당시에는 명확하게 존재했다. 그리고 지금에 비하면 군 인권이 크게 이슈화되지도 않았던 때다. 그나마도 구타와 괴롭힘이 많이 사라진 때라고들 했다. 나 때는 더 힘들었다, 라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어차피 내 세대나, 더 윗세대나 지금 세대나 각자 고된 군 복무를 하는 거다. 모두 각자의 고통을 사는 거다. 모든 시대의 군대를 경험해본 것이 아니니 어느 세대가 더 힘들다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그려진 괴롭힘 사례들을 현실에 적용해보면 조금 선을 넘는 데가 있다. 군대 특유의 그 경직되고 긴장감 흐르는 분위기는 공감하는 바이지만, 선임들의 괴롭힘은 조금 심하다 싶은 거다. 가령, 벽에 박힌 못을 뒤에 두고 폭행을 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시켜대는 행위, 또 무엇보다 이제 곧 나갈 말년병장이 고작 일병을 그렇게 손수 괴롭혀대는 일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놓고 악한 짓을 일삼는 드라마와 달리 정교하고 교묘하고 비겁하게 괴롭히는 말종들이 분명 현실에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불문율이라는 게 있다.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폭력이나, 심각한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는 어지간해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정정한다. 있기는 있다. 있기는 있지만, 그 정도의 행위를 할 거라면 정당방위에 가까운, 그러나 악에 받친 하극상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걸 상상하지 않고 고삐 풀린 말처럼 개차반으로 지낸다면 그는 아주 일시적인 권력에 취한 머저리다.

계급 사회이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괴롭히는 인간들도 최소한의 명분을 가지고 괴롭히는 거다. 어차피 2년도 안 되는 시간이고, 나가면 남남인 걸. 아무리 선임이라고 하지만 자꾸 선을 넘는 수준에 이르면, 부대 내에서도 수군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선임이라고 해서 후임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거나, 후임의 인격을 아무렇지 않게 말살시키거나, 후임의 가족을 조롱한다거나 하는 짓을 하면, 그가 아무리 선임이라고 한들 부대 내에서 어떤 식으로든 고립되는 건 피해자인 후임이 아니라 선을 넘은 가해자, 곧 선임이다. 그런 식으로 살아서는 결코 말년이 좋지 않다. 최고참이 별 근거 없이 일이병들 앞에서 상병 후임에게 정도가 넘은 모욕을 주거나 계급에 맞는 대우를 해주지 않아도 조롱당하는 건 최고참이다. 물론 앞에서는 대놓고 못 하겠지. 다만 그를 배제하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분명 형성된다.

세대의 구분도 있겠지만 사실 부대마다 문화가 다르기도 할 거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다. 좋으나 싫으나 1년 반 남짓을 부대끼며 살아야 하니 서로 지킬 건 지킨다. 드라마 설정이 완전한 허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선을 넘은 자들의 극단적인 사례라는 생각은 든다. 병영문화 운운하며, 국방부까지 지레 겁먹고 변명할 일은 아닌 것 같다는 거다.

군대를 무작정 옹호하는 것으로 비칠까 봐 다소 우려되는데, 나는 군대가 정말 죽기보다 싫었고, 이등병 시절에는 매일같이 탈영하고 싶었으며, 지금도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당시에는 정말 하루라도 빨리 군대 밖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밖이 그리워서? 밖의 자유가 좋아서? 노노. 그러니까, 군대만 아니면 되는 거다.

전시 국가에서 필요한 곳은 맞고, 군인을 폄하하고 싶지도 않으나 도저히 추억으로 부를 수 없는 부조리가 만연한 곳이었으며, 나와는 절대적으로 맞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이 어디 나뿐일까.


나는 이제 이 나라가 징병제를 없애는 것이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끌려왔다는 생각이 드는데 심지어 처우마저 거지 같으니 사명감 따위는 생길 리가 없다. 고작 그 돈을 받으면서 말이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나 때는,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라떼는 말이다. 이등병 시절 월급이 19,900원인가 그랬다. 무슨 홈쇼핑인가?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다. 무슨 명분으로 사명감을 요구했던 걸까.

군인이 100% 분명한 직업으로서 자리매김하면 오히려 그나마 군인이 적성에 맞는 사람들이 지원할 것이다. 또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지원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시간이나 죽이려고 원시적인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도 차츰 사라질 거다. 있다고 해도 그때는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고소의 문제로 가야 할 거다. 군인은 애국심이랄지 국방에 대한 사명감으로 하는 게 아니겠냐고? 그런 신화에 가까운 말보다는 적합한 보수를 주며 완전한 직업인으로 대해줘야 일말의 직업정신이라거나 생계에 대한 절실함으로 군대가 오히려 강해질 거다. 먹고 사는 일보다 중요한 게 어딨나. 적군이 내 생계를 위협한다? 그보다 더 사기 충전될 요인이 또 어딨겠나. 추가로 군에 대한 인식도 조금은 나아질 것이고, 군을 둘러싼 많은 사회적 문제도 조금은 해소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는 군대의 부조리, 절대 바뀌지 않는다. 극 중 조 일병의 말마따나, 고작 수통도 안 바뀌는데, 바뀌기는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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