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아… ‘파 크라이 6’ 리뷰

스토리와 시스템의 조화가 인상적

<파 크라이> 시리즈는 한두 마디로 정의하기가 영 힘든 시리즈입니다. 작품마다의 평가가 워낙 중구난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초기 두 편은 게임성보다는 놀라운 그래픽으로 유명했습니다. 3편은 카리스마 넘치는 악당 ‘바스’ 덕분에 길이길이 회자됐습니다. 외전인 <블러드 드래곤>은 코믹한 분위기로 일부 본편보다도 호평이었습니다. 4편과 또 다른 외전 <프라이멀>은 기존 팬덤의 호의를 샀지만 대성하지는 못했습니다.


상대적 최근 작품 <파 크라이 5>와 그 확장판 <파 크라이 뉴 던>을 향한 게이머들의 감정은 좋지 못한 편입니다. 특히 <파 크라이 5>는 ‘급발진’ 엔딩으로 말이 많았죠. 그 이후 이야기를 다룬 <파 크라이 뉴 던>은 무의미한 반복성 플레이,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자극적 설정을 살리지 못하는 지루한 스토리로 혹평받았습니다.


유명 배우 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를 메인 빌런 역에 기용하며 다시 한 번 마케팅에 힘을 준 <파 크라이 6>였지만, 팬들이 반신반의하는 반응을 보인 데에도 다 이유가 있던 셈입니다. 몇 번의 출시 지연 역시, 게임 완성도를 향한 집념의 결과가 아니라 그저 일정 관리 소홀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습니다.


끝내 큰 기대를 받지 못하며 출시된 <파 크라이 6>을 플레이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유비소프트에 ‘무슨 바람이 불었나’ 싶습니다.


/디스이즈게임 방승언 기자



# 조금 더 현실에 발붙인 이야기


게임 인트로 영상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스페인 콩키스타도르의 이미지입니다. 이번 작품을 아우르는 정서가 무엇인지 암시해줍니다.


<파 크라이 6>의 배경인 가상 국가 ‘야라’는 쿠바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임의 핵심 NPC이자 혁명 조직 리베르타스의 리더인 ‘클라라’는 푸에르토리코 독립운동가 페드로 알비수 캄포스의 말을 인용합니다. 주인공 ‘다니 로하스’가 이 말을 베네수엘라 독립운동가 시몬 볼리바르의 말로 잘못 기억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야라의 화폐 단위는 ‘야라 페소’인데, 페소는 스페인 및 스페인령 식민지였던 남미 국가들이 오늘날까지 사용하는 단위입니다. <파 크라이 6>는 이처럼 도입부에서부터 스페인 지배를 받았던 현실 국가들의 레퍼런스를 강력하게 보여줍니다.

정치적 논란을 고려해 쿠바의 실제 역사를 모방하지는 않았으나, 야라에 관련한 여러 디테일한 설정에서 그러한 모티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잠깐 언급되는 미국의 해안 봉쇄, 발달한 의료 기술, 시가 담배 등은 영락없이 쿠바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현실에 있을 법한 억압의 주체(테러리스트, 군벌, 사이비 교주 등)를 묘사하는 것은 <파 크라이> 시리즈가 꾸준히 해온 방식입니다. 하지만 <파 크라이 6>에서는 그 현실성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고자 한 모습입니다.



# 드디어 이뤄낸 스토리와 시스템의 조화


3편 이후로 <파 크라이> 시리즈는 주인공보다는 악당의 카리스마로 더 유명했습니다. 3편의 바스, 4편의 페이건 민은 컬트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5편의 ‘조셉 시드’는 비록 동등한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으나, 당시 트레일러 및 굿즈 판매 등의 마케팅 전략을 돌아보면 제작진이 얼마나 ‘밀어주고’ 싶어했는지 훤히 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악당을 주역으로 내세우는 동안, 주인공들은 점점 입체성을 잃어갔습니다. 심지어 5편의 주인공 ‘신임 부관’은 이름도 없고 목소리도 없습니다. 당연히 과거사나 인간관계, 내면 묘사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인공의 입체적 묘사를 고의로 생략하고 상상에 맡기는 것이 항상 틀린 방법은 아닙니다. 이야기보다 액션 연출이 더 중요한 게임에서라면 ‘잘 통하는’ 요소기도 합니다.


<파 크라이>시리즈의 문제는 점점 ‘이도 저도’ 아니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 문제가 <파 크라이 5>에 와서 정점에 달합니다. 시스템적 혁신이 없다시피 한 와중에 공감이 어려운 스토리와 그러한 스토리에조차 융화되지 못하는 평면적 주인공을 내세웠습니다. 이 때문에 유저들은 게임플레이와 스토리 어느 한 쪽에서도 ‘마음 붙일 구석’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파 크라이 6>는 스토리 상의 설득력을 갖추고 이를 시스템에 조화시키는 방식으로 ‘유저와 게임 사이의 정서적 거리감’이라는 기존 문제를 일거에 해결했다는 점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우선 앞서 말한 ‘현실에 발을 걸친’ 익숙한 설정 덕분에 주인공과 주변 인물, 그리고 ‘야라’의 전반적 상황을 장황한 묘사 없어도 빠르게 이해시킬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런 기본적 ‘토대’ 위에 인물을 추동하는 개인적 동기를 도입부에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이를 스토리와 시스템에까지 조화시키고 있습니다.


주인공 ‘다니 로하스’는 고아 출신으로 한때 5년간 군사 교육을 이수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야라 사회에서 살아남고자 했으나, 지금은 그저 불안한 조국을 떠나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고 싶은 청년입니다. 하지만 미국행을 도울 반군 소속 친구가 정부군에 의해 살해당하고, 조력을 얻고자 어쩔 수 없이 임시로 반군 활동에 발을 들입니다. 그 결과 자신이 저항 운동에서 모종의 쾌감을 느끼는 반골적 기질을 지니고 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한편 클라라는 반군 중에는 보기 드문 고위층 자제 출신으로, 혁명가로서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으나 자신의 출신성분이 반군 조직 규합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클라라에게 ‘풀뿌리’ 출신인 주인공은 유용한 인적 자원으로 여겨졌고, 외부인인 그를 적극적으로 반군에 가담시켜 앞날을 도모하는 계기가 됩니다.

NPC들이 ‘외부인’에 불과한 주인공들에게 온갖 임무를 맡기고, 쉽게 동료로 받아들이는 액션 RPG 장르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클리셰를 어떻게든 설득력 있게 풀어낸 솜씨는 이미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이런 설정이 더 빛을 발하는 것은 게임의 전체 얼개입니다.


주인공은 야라의 4개 지역에 분포하는 반군 조직들을 설득해 ‘리베르타’에 합류시키는 ‘특사’의 역할을 맡고 파견됩니다. 이들 반군은 각자의 근거지에서 카스티요의 간부들과 대립하고 있습니다. 반군들의 ‘부탁’(퀘스트)을 최대한 해결해 그들의 환심을 사고, 간부를 물리쳐 지역을 탈환하는 것이 게임의 목표입니다.


<파 크라이 5>에도 동일한 시스템이 있었지만, 스토리와 조화되지 못했던 것과 비교됩니다. 일개 사이비 종교 간부들이 현대 미국에서 무력으로 넓은 지역을 장악했다는 설정부터 현실적이지 못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황당한 메인퀘스트 진행 방식입니다. 지역 내 활동으로 '진척도'가 일정 수준으로 쌓이면 주인공은 매번 갑자기 의식을 잃고 적진으로 '납치'돼 강제로 메인 스토리를 진행해야 합니다. 유저가 납득할 만한 순서와 형식으로 퀘스트를 제공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지 않았던 셈입니다. 



# RPG적 성장 요소 도입으로 줄어든 지루함


<파 크라이 6>의 게임 시스템은 따로 떼어놓고 보면 기존 게임들의 큰 틀을 유지한 채 몇 가지 추가적인 재미를 가미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메인퀘스트 외에는 기지 탈환, 아이템 수집, ‘네임드’ 동물 사냥 등 사이드 퀘스트와 낚시, 레이싱 등 ‘소일거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이템 습득, 강화 시스템은 메인퀘스트를 제외하면 가장 중요한 콘텐츠입니다. 무기 아이템은 ‘일반 무기’와 ‘고유 무기’로 나뉩니다. 일반 무기는 자원을 들여 특수 탄환이나 조준경 등의 업그레이드를 장착할 수 있습니다. 고유 무기는 개조할 수 없지만 고유한 기능이 있어 수집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방어구 또한 종류별로 모을 수 있고, 피스별 능력은 물론 세트 장비 능력도 있어 마찬가지로 수집욕을 자극합니다.


트레일러에서부터 강조하던 ‘수프레모 가방’은 <파 크라이 6>에 새로 도입된 시스템 중 가장 아이코닉합니다. 일종의 ‘궁극기’를 사용하게 해주는 특수 무기이자, 버프 및 도구를 제공하는 착용 장비 역할도 합니다. 여러 종류가 있고, 각자 제공하는 궁극기와 버프, 도구가 조금씩 다릅니다.

더 나아가 지역별 반군 근거지인 ‘게릴라 캠프’ 또한 자원을 투입해 강화할 수 있습니다. 캠프가 강화되면 지역 내 전투, 탐색 등에 도움이 되는 여러 부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RPG적 성장 요소들은 기존 시리즈에서 지루하게 느껴졌던 여러 부가 활동에 재미를 부여해줍니다. 필드에서 맞닥뜨리는 거의 모든 활동이 ‘성장’으로 강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무의미한 시간 보내기를 하고 있다는 부정적 감정은 대폭 줄었습니다.



# ‘낭비’를 없앤 <파 크라이>, 그러나 새로움도 없다


<파 크라이 6>는 시리즈의 기존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유저들에게 조금 더 몰입할 수 있는 ‘그럴듯한’ 세상을 선사하고자 노력한 기색이 눈에 띕니다. 여전히 현실성과 거리가 먼 설정이나 시스템은 남아있지만, 재미를 위한 게임적 허용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정도여서 감정 이입을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퀘스트와 부가 활동이 그저 자리만 채우는 요소에 그치지 않도록, 그간 누적해온 노하우를 ‘스토리’라는 아교로 단단히 이어붙인 점을 높이 살만합니다. 그 결과 때로 낭비처럼 느껴지던 유비소프트 특유의 그래픽적 디테일, 준수한 최적화, 만족스러운 건 플레이 등 숱한 ‘기본기’가 낭비되지 않고, 제자리에서 마땅히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다만, 숱한 매체와 유저가 지적하고 있듯, 그 어떤 새로운 재미도 선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지점입니다. 개별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로 봤을 때는 비판의 여지가 많지 않지만, 벌써 9번째 작품에 이른 시리즈에서 ‘독자적인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분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게임 뉴스는 이제 그만, 디스이즈게임이 당신의 인사이트를 넓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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