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랄리아스

목요일은 역시 독서지. 이 책은 언어에 대한 책이기는 한데, 한 가지 점에 초점을 맞춘 전문가의 에세이집이다. 바로 “망각”이다. 표지가 바벨탑이라는 사실이 이해가 가는 것이, 망각으로 인해 언어가 태어나고 번성하고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그 흔적을 남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프랑스어에서 철자 u를 생각해 봅시다. 보통의 경우(참조 1) 발음은 /위/로 표시한다(참조 2). 예를 들어서 bus의 발음은 /뷔스/인데, u를 어째서 /위/로 발음하는가에 대한 가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켈트인들의 모음 체계에 /우/가 없었다는 점에 있다. 즉, 없는 /우/를 발음하기 위해 이들은 /이/를 들여왔고, 그 결과가 /위/라는 가설이다.


사실 이런 가설을 증명하기는 매우 어렵고, 아마 앞으로도 증명이 안 되지 싶다. 게다가 반대되는 증거(켈트족이 살지 않았지만 같은 발음을 하는 지역이 있다)들이 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켈트인들이 정말로 /우/ 발음을 못 했는가? 하는 의문도 있다. 그러나 이 가설이 틀렸다는 증거 또한 없기 때문에 현재는 켈트인들의 발음이 어떻게든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정도로 정리되고 있다.


말인즉슨? 흔적을 남긴다는 이야기다. 켈트가 언제 얘기냐, 기원전으로부터 한참 지난 후에도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의미는,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한가운데에서도 뭔가 이전 언어가 또아리를 틀고 숨었다는 뜻이다. 화자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 존재한다고 봐도 좋겠다.


가령 h는 어떨까? h가 /ㅎ/ 음가를 가진 언어(영어)가 있기는 하지만 로망스어군, 그리고 독일어에서 중간에 h가 위치하는 경우 스펠링에 흔적만을 남기고 음가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 흔적 때문에 알파벳 h를 없앨 수가 없다. 발음에 영향을 꽤 끼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장단음(독어)과 이중모음(포르투갈어)이고,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의 경우는 c와 결합하여 /ㅊ/이나 /ㅋ/처럼 다양한 음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즉, h는? 숨결의 흔적이라고 하자면 너무나 문학적 표현일 것이다. 역할이 없는 언어에서도 h는 흔적을 남겼고, 역할이 있는 언어에서도 자취는 남아 있다(참조 3). 물론 전혀 다른 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책에 나오는 사례이지만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는 러시아어로 표기할 때 Генрих Гейне(겐리히 게이네)라고 쓴다. /h/ 음가가 /g/ 음가로 바뀐 것인데, 러시아어에 /h/로 정확하게 대비할 문자가 없던 시기에 우크라이나와 남부 러시아어에서 사용하는 Г/g로 표기를 해서 저렇게 된 것이다(참조 4). 그때(19세기)는 그게 또 고급 표기였다.


간단히 우리식으로 이야기하자면? Paris를 /빡히/가 아니라 “파리”라 표기함으로써 현지인이 못 알아듣는 우리만의 표기법이 일취월장한 사례가 세계 도처에 많다는 이야기다. 언어의 전개 양상이 이러니, 우리로서는 헤아릴 길이 그리 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각의 흔적을 좇는 것이 호기심 많은 자들의 임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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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가령 예외랄 수 있을, où(어디/where)라는 단어는 프랑스어에서 대단히 흥미롭다. 대단히 빈번하게 쓰이는 단어인데도 불구하고 ù의 형태가 들어간 단어로서 이 단어가 유일하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ou/또는과 구분을 위해 악상을 안 붙이면 안 된다. 발음은 동일하다.


2. 여담이지만 /우/를 표기하기 위해 현대 프랑스어는 철자 ou를 사용한다.


3. 가령 영어에서 hour는 /하우어/로 읽지 않는다. 내친 김에 h에 대해 더 얘기를 하자면, 기원전 그리스어에서 쓰이던, 음가가 남아 있는 h를 로마인들이 베껴서 썼고, 그때문에 로망스어에 음가가 없는 h가 퍼졌다. 이것이 프랑스어 고어로 옮겨갔다가(houre) 영어로 바뀐 것이다.


영어에서 h는 /헤이치/가 아니라, /에이치/라 읽는다. 어지간한 언어와 달리, 알파벳 자신의 이름에 해당하는 음가가 없는 알파벳이 바로 h이다.


4. 가령 헐리우드를 러시아어로는 Голливуд/골리부트/라 표기한다. 다만 이 책에서는 러시아어 표기가 다 그렇다는 식으로 좀 과대포장?됐는데, 항상 그렇지는 않다. 가령 최근에 있었던 핼러윈은 Хэллоуин/헬러윈/으로 표기한다. 발음의 미세한 차이 때문인데, 한글은 단일한 /ㅎ/만 표기하므로 설명하기 힘들다.


이런 방식은 교회 슬라브/러시아어 표기법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남부 러시아어… 정도로 써야 더 옳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고급 표기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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