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의 한복판에는 아크로폴리스(Acropolis)라 불리는 언덕이 있다. 그리고 그 언덕 위에는 인류가 남긴 유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인 파르테논 신전(Parthenon)이 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1호가 바로 이 파르테논 신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파르테논 신전은 대단한 상징성을 지닌다. 바닥부터 기둥, 지붕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대리석만으로 건축된 이 신전은 도리아 양식의 웅장함과 절제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확립된 그리스 건축의 전통은 로마로 계승되어 서구 세계에 그대로 답습되었으며, 결국 파르테논 신전은 후대 서양 건축사에서 길이 남을 불멸의 이데아(Idea)적 존재로 자리매김하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을 아크로폴리스라 불렀다. 사실 아크로폴리스(Acropolis)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어로 도시(πολις)와 가장 높은(ἀκρό)의 합성어이다. 그리스의 폴리스(Polis,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에서 아크로폴리스는 주로 두 가지 역할을 담당했다. 아크로폴리스의 높은 지대의 이점을 이용해서 전시에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도시국가를 방어하기 위한 군사적 요새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아크로폴리스는 주로 종교적인 기능을 수행하였다. 각 도시의 아크로폴리스에는 그 도시의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신이 거하는 집인 신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처럼 아크로폴리스는 도시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으며, 그리스인들에게는 성역 중의 성역이었다. 다신교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인들은 그 어떤 신이라도 결코 소홀히 대하는 법이 없었다. 사도 바울이 성경 사도행전 17장에 기록된 그리스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Arios Pagos) 언덕에서 행한 연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대 그리스인들이 가지고 있던 신들에 대한 경외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들은 미처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제사를 올리지 않아 신들의 노여움을 살까봐 심지어 ‘알려지지 않은 신’을 위한 제단도 만들 정도였다. 이러한 신들에 대한 경외감은 그리스인들의 독특한 종교관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스인들은 모든 신에게는 각기 자신의 고유한 영역이 있고, 신들은 인간의 모든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은 수많은 신들 가운데에서 특별히 아테나 여신을 매우 사랑했다. 그들은 아테나 여신을 자신들의 도시의 수호신으로 삼고, 도시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였다. 아테네인들은 특별히 아테나 여신을 자신들의 도시의 수호신으로 삼고, 자신들의 도시의 이름을 아테나 여신의 이름을 따 아테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다른 어떤 도시도 자신들의 수호신의 이름을 따 도시의 이름을 지은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아테네인들의 아테나 여신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아테네는 ‘여신의 도시’가 되었다. 아테네인들은 물론 도처에 제우스(Zeus)와 헤파이스토스(Hephaistos)를 비롯한 여러 신들의 신전을 건립하긴 했지만, 그들의 신전은 대부분 아테나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의 아래 쪽에, 즉 더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이 가장 사랑한 아테나 여신을 위해 가장 높고 신성한 곳인 아크로폴리스에 그녀를 위한 가장 아름다운 신전을 지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이다. 아테나 여신은 처녀 신이었으므로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이 지은 아테나 신전을 '처녀의 집'을 의미하는 파르테논이라 불렀다. 사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는 이 파르테논(Parthenon) 신전 외에도 아테네에게 바쳐진 또 다른 신전들과 다른 몇몇 신들의 신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아크로폴리스에는 단지 몇 개의 건물만이 듬성듬성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는 아크로폴리스의 입구 쪽에 위치한 아테나 니케 신전과, 입구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에레크테이온 신전 정도가 남아있다.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서쪽에 위치한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출입문 프로필라이아(Propylaia)를 통과해야 한다. 지금은 지붕이 사라져 기둥들만이 길게 늘어서 있는 이 프로필라이아는 과거에는 아무나 통과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오직 종교적 제의를 위한 신성한 행렬만 이 중앙 기둥들 사이를 통과할 수 있었고, 일반인들은 양옆에 있는 좁은 문들을 통해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프로필라이아를 통과하기 전,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일체의 교만과 욕망, 부정함으로부터 자신을 정결하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프로필라이아를 통과하면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건물이 바로 아테나 니케(Athena Nike) 신전이다. 아테나 니케 신전은 프로필라이아로 올라가기 직전에 우측의 돌출된 부분 위에 세워져 있다. 일단 프로필라이아를 통과하면 바로 웅장한 파르테논 신전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 조그마한 아테나 니케 신전에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사실 이 아테나 니케 신전은 고대 아테네인들에게는 매우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것은 바로 페르시아 전쟁에서의 영광스러운 승리였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전쟁인 페르시아 전쟁은 크게 기원전 490년과 480~479년, 총 두 번에 걸쳐 일어났다. 당시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리스 본토뿐만 아니라 소아시아 지방에까지 진출해 있었다. 그런데 그 후 소아시아의 이오니아 지방의 그리스인들은 리디아 왕국의 크로이소스 왕(Kroisos, BC 560~546)의 지배를 받았다. 크로이소스 왕은 자신의 영토를 확장시킬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페르시아 왕국의 영토를 침공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전쟁을 치르기 전에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사람을 보내어 신탁을 알아보았다. 그 유명한 신탁은 다음과 같았다. "만약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를 공격한다면 대제국을 파괴할 것이다." 크로이소스 왕은 이 신탁을 전해 듣고는 승리를 확신하고 기원전 546년에 드디어 군사를 이끌고 페르시아를 침공했다. 그러나 크로이소스는 페르시아의 제왕 키루스(Kyros)에게 대패하여 이오니아는 물론 리디아의 영토까지 빼앗기게 된다. 너무나 억울했던 크로이소스는 델포이의 신탁이 틀렸다고 불평하며 아폴론 신전으로 다시 사람을 보냈다. 이에 대한 델포이 신관의 대답은 이러했다. "만약 네가 정말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두 번째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네가 파괴할 왕국이 누구의 것인가, 너의 적의 것인가 아니면 너 자신의 것인가?" 결국 크로이소스는 파괴될 대제국이 자기 나라인지, 페르시아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신탁을 해석하여 전쟁을 벌인 꼴이었다. 한편 페르시아는 리디아 왕국을 정복한 후 직접 통치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현지의 독재자들에게 통치를 맡겼다. 그러나 이오니아의 그리스인들은 반란군을 결성하여 이들의 통치에 저항하였고, 그리스 본토에까지 지원군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그리스 도시국가 중 하나인 스파르타는 이 요청을 거절한다. 아테네만 이오니아 반란군의 요청을 받아들여 군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아테네군은 멀리 페르시아의 사령부가 있었던 사르디스(Sardis)까지 가서 공격을 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페르시아는 이오니아 반란군을 완전히 진압해버린다. 당시 페르시아의 왕이던 다리우스 1세(DariusⅠ, 재위 BC 522~486)는 아테네인들이 이오니아 반란군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하며 아테네를 정벌하기로 결심한다. 드디어 기원전 490년에 다리우스는 대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그리스의 마라톤(Marathon)에 상륙하였다. 페르시아군은 아테네군에 비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규모로 밀려왔다. 어느 누구도 아테네군이 승리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테네의 명장 밀티아데스(Miltiades)는 페르시아군에게 낯선 군사 작전을 펼쳐 기적적인 승리를 이끌어낸다. 그는 아테네의 중장보병을 보내 적의 양 날개를 공격하여 제압한 후에 다시 중앙을 향해 밀고 들어가는 작전을 펼쳤다. 전세가 불리해진 페르시아군은 그들이 타고 온 함선으로 퇴각하였으며, 아테네군은 미처 함선으로 도망하지 못했던 적군을 몰살시켰다. 아테네인들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승리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아테네군은 이에 자만하지 않았다. 함선으로 도망한 적들이 언제든지 아테네를 향해 진격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약 40㎞의 거리를 달려와 해상공격에 대비하였고, 결국 페르시아군은 패배의 쓰라림을 안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테네인들은 당시 최강대국인 페르시아를 이겼다는 자부심으로 충만했고, 이와 반대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은 치욕감으로 분노에 떨었다. 얼마 후 다리우스 왕은 죽고 그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Ⅰ, 재위 BC 486~465)는 다시 대규모의 군대를 조직하여 기원전 480년 그리스를 침공하여 지난날의 패배를 설욕하려 하였다.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는 군사적으로 열세인 그리스인들이 엄청난 규모의 페르시아군을 보기만 해도 항복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크세르크세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리스 남부에 있던 31개의 도시국가들은 페르시아 군대에 맞서기 위해 동맹군을 결성했다. 그들은 비록 소규모였지만 용맹스러웠다. 이때 그리스 동맹군의 지도국이 스파르타였는데 명장 레오니다스(Leonidas)가 스파르타 군대를 이끌고 있었다. 스파르타와 동맹군들은 예상을 뒤엎고 페르시아의 대군을 한동안 저지하지만 밀고자에 의해 페르시아군에게 정보가 새어나가 결국 저지선이 무너지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테네인들은 페르시아군이 아테네에에 입성하기 전에 간단히 짐을 꾸려 간신히 피신할 수 있었다. 그들은 먼발치에서 페르시아인들이 아크로폴리스를 비롯한 자신들의 영광스러운 도시를 파괴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넋놓고 바라만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아테네인들은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kles)의 지휘 하에 해상전을 준비했다. 그는 결국 해전에 그리스의 운명을 걸었다. 그가 전장으로 택한 곳은 아테네 앞바다 살라미스. 살라미스는 해협이 아주 좁아 가볍고 작은 그리스 함선에 유리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페르시아군을 살라미스로 유인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기발한 작전을 짰다. 즉, 페르시아군에 밀정을 보내 그리스군이 밤에 살라미스 해협의 서쪽 출구로부터 철수하려 하니 그쪽을 봉쇄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거짓 정보를 흘린 것이었다. 이 작전은 그대로 적중했다. 페르시아의 함선은 아테네군이 철수하기 전에 공격하기 위해 모두 살라미스의 좁은 해협으로 몰려들어왔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그리스 함선은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적군을 대파하였다. 이 모든 영광은 당연히 아테네에게로 돌아갔다. 바로 이 아테네인들이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를 아테나 여신에게 돌리고 기리기 위해 세운 신전이 아테나 니케(Athena Nike) 신전인 것이다. 그들은 신전을 짓고 그 안에 아테나 니케상을 모셨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승리의 여신 니케를 기리는 상은 아니다. 물론 니케 여신은 아테나 여신의 부속 신이다. 그녀는 전쟁의 여신인 아테나를 항상 따라 다니는 신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여기서 아테나 니케란 독립된 니케 여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테나 여신의 여러 가지 별칭 중에 하나를 가리킨다. 이는 아테나 여신이 항상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 신전 역시 아테네의 수호신이었던 아테나 여신에게 봉헌된 것이었다. 이제 프로필라이아를 통과해서 본격적으로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 보자. 입구를 빠져나오는 순간 아무도 눈길을 돌릴 수 없는 아름다운 신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파란 하늘 위에 걸린 듯 날개를 펼치고 있는 듯하다. 바로 파르테논 신전이다. 총 46개의 장중한 기둥들은 위엄 있는 모습으로 신전을 의연하게 지탱하고 있다. 그 웅장함과 세련된 아름다움에 여행객들은 가던 발길을 멈추고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아크로폴리스에 올라가 처음 마주하게 되는 파르테논 신전의 모습은 알고 보면 정면이 아니라 뒷면이다. 파르테논 신전을 찍은 많은 사진들이 대부분 신전의 뒷면을 담고 있다. 그냥 보게 되면 신전의 기둥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으니 일반인들은 어디가 정면이고 뒷면인지 잘 알 수가 없고, 사실 별 관심도 없다. 하지만 알고 보면 아크로폴리스의 신전들은 모두 동쪽을 향하고 있다. 따라서 아크로폴리스의 서쪽 입구로부터 올라온 아테네인들은 신전으로 들어가기 위해 신전의 입구가 있는 정면으로 향해야 했다. 정면으로 돌아가면 동쪽을 향해 거대한 아테나 파르테노스(Athena Parthenos)상이 있었는데, 40피트 높이의 금과 상아로 된 엄청난 크기의 조각상으로 그 위용을 자랑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신전 안에서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다. 이제는 파르테논 신전의 외벽을 둘러보자. 어쩌면 파르테논 신전의 외벽들 곳곳에서는 지금도 엄청난 신화적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신전의 외벽을 두르고 있는 박공벽(Pediment)과 메토프(Metope)에 묘사된 부조들은 서로 연결되어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듯 하다. 우선 파르테논 신전의 동쪽 박공벽에는 고대 아테네인들이 사랑하는 아테나 여신의 탄생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아테나의 탄생 장면은 그리스의 많은 도자기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주제였다. 제우스가 가장 사랑하는 딸 아테나 여신은 바로 제우스의 머리로부터 태어났다. 아테나가 태어날 때 하늘의 태양이 멈추고 바다가 요동치고 땅이 흔들리는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물론 신전의 가장 높을 곳을 장식하는 삼각형 구도의 박공벽에 이러한 탄생 장면을 자세히 새겨 넣지는 못했다. 아테네인들은 아테나 여신이 태어나는 순간이 아닌 태어난 후를 묘사하였다. 박공벽 중앙에는 제우스가 왕좌에 앉아 있고 이미 제우스의 머리로부터 나온 아테나 여신이 창과 방패를 들고 무장한 채로 서 있다. 제우스와 아테나 사이에서 니케 여신이 왕관을 아테나에게 씌우려 하고 있다. 제우스의 왕좌 뒤에는 전령으로서 이리스 여신, 헤라 여신, 아프로디테와 에로스, 아레스 등이 서 있고, 아테나 여신 뒤에는 도끼를 든 헤파이스토스, 삼지창을 든 포세이돈, 리라를 든 아폴론, 활을 든 아르테미스 등이 서 있다. 다른 신들은 모두 놀라운 듯이 아테나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가 아크로폴리스 관문을 통과하자마자 보게 되는 신전 뒤편의 서쪽 박공벽에는 바로 아테네 도시 탄생의 역사를 담고 있다. 아테나 여신 옆으로는 전차와 함께 헤르메스와 니케 여신이 있으며, 포세이돈 옆으로는 이리스와 암피트리테가 서 있다. 헤르메스와 이리스는 각각 고대 그리스의 전령의 신이다. 아테나 여신 쪽의 니케 여신은 바로 승리의 여신 아테나의 상징으로 나타나 있으며, 포세이돈 신 쪽의 암피트리테는 바로 포세이돈의 아내이다.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두고 두 명의 위대한 신들이 싸움을 벌였다고 생각했다. 아테네인들에게 아테나 여신은 올리브 나무를 제공했고 포세이돈 신은 소금물을 제공했다. 올리브 나무는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전역에 널리 자라는 식물이다. 건조하고 메마른 그리스 토양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지금도 아크로폴리스 주변에는 올리브 나무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다. 그러나 포세이돈은 바다의 신이었고, 아테네인들에게 짠물은 별로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아테네인들은 아테나 여신을 선택하였고, 포세이돈은 멀리 바다로 물러나야 했다고 한다. 파르테논 신전의 박공벽 아래를 살펴보면 총 92개의 정사각형 모양의 메토프들이 사방으로 줄을 잇고 있다. 전체 메토프는 동서남북 네 면으로 구분된다. 메토브들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모두 전쟁의 모습이다. 먼저 동쪽 메토프는 올림포스 신들과 기간테스의 전쟁을 보여주고, 남쪽 메토프는 인간들과 켄타우로스의 전쟁을 보여주고 있다. 서쪽 메토프는 아테네인들과 아마조네스의 전쟁을 보여주고, 북쪽 메토프는 트로이 전쟁을 보여주고 있다. 메토프 전체 구도는 동쪽으로부터 시작하여 북쪽에서 끝나는 것으로 보인다. 신전 정면인 동쪽 메토프에 가장 오래된 신들의 전쟁이 나오고, 바로 연결되는 남쪽과 서쪽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신화적인 종족인 켄타우로스와 아마조네스와의 전쟁이 나오며, 마지막으로 역사적으로 가장 나중에 발생한 트로이 전쟁이 나온다. 동쪽 메토프에 묘사되어 있는 올림포스 신들과 기간테스(Gigantes, 거인족)의 전쟁은 마지막 신들 간의 전쟁이었다. 올림포스 신들은 먼저 티탄족(Titanes)과 전쟁을 치른 후에 튀폰과의 대결을 치르고 마지막으로 기간테스와 전쟁을 한다. 기간테스는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할 때 떨어진 핏방울을 가이아가 받아서 처녀생식으로 낳은 자식들로, 바로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자식들이다. 그들은 티탄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올림포스의 젊은 신들과 전쟁을 벌였다. 올림포스 신들은 기간테스를 이기기 위해 인간 어머니들에게서 태어난 두 명의 신들이 필요했다. 그들이 바로 디오니소스와 헤라클레스였다. 이들 외에도 제우스의 자식들도 맹활약을 벌였다. 특히 아테나 여신은 자신의 유명한 별칭들 중 하나인 팔라스(Pallas)라는 이름과 동일한 거인을 만나 그의 살갗을 벗겨내 방패가죽으로 사용했으며, 또한 엥켈라도스(Enkelados)라는 거인을 시켈리아(시실리)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남쪽 메토프에 묘사되어 있는 인간들과 켄타우로스의 전쟁은 아테네인들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의 주도적인 인물이 바로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Theseus)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쟁은 본래 아테네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테세우스는 라피타이(Lapithai)족의 페이리토오스(Peirithoos)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테살리아로 갔다. 그런데 여기에는 반인반마인 켄타우로스족도 초대되어 왔다. 점차 밤은 깊어가고 술에 취해가면서 켄타우로스족 중에 하나가 페이리토오스의 신부인 히포다메이아(Hippodameia)를 납치하려 했다. 이에 서로 격렬한 몸싸움이 일어나 참혹한 피바람이 몰아쳤다. 결국 테세우스는 페이리토오스를 도와 켄타우로스족을 완전히 몰아내는 데 공헌한다. 서쪽 메토프에 묘사되어 있는 인간들과 아마조네스(Amazones)의 전쟁도 아테네인들에게 의미 있는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도 테세우스가 맹활약을 하고 있다. 아마조네스는 전설적인 여성전사들을 말한다. 그들은 활을 쏘기 위해 오른쪽 가슴을 베어내었다고 해서 '가슴이 없는 자들'을 의미하는 아마조네스라 불린다. 테세우스는 아마조네스의 나라에서 여왕 히폴뤼테(Hippolyte)를 데리고 왔다. 그러나 아마조네스는 자신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흑해 연안으로부터 말을 타고 아테네까지 공격해왔다. 이때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아마조네스에 의해 포위되었지만, 결국 테세우스가 아테네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아테네인들은 아크로폴리스까지 몰렸던 긴박한 아마조네스와의 전쟁을 결코 잊지 못했던 것일까? 북쪽 메토프에 묘사되어 있는 전쟁은 바로 트로이 전쟁이다. 이 전쟁은 그리스 전역에서 동맹군이 결성되어 트로이를 공격한 사건으로, 비록 아테네가 중심이 되지는 않았지만 아테네인들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아테네인들이 사랑하는 아테나 여신은 전쟁의 여신으로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 그녀는 그리스의 수많은 영웅들을 보호하고 승리를 이끌었다. 아테나 앞에서는 전쟁의 신 아레스도 무릎을 꿇었고,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도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최고 신 제우스마저도 아테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테나 여신의 영광은 곧 아테네인 자신들의 영광이었다. 아테네인들은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에 자신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적 제전인 판아테나이아 제전과 관련된 주요 장면들을 그려냈다. 그것은 신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영웅들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바로 아테네인 자신들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아테나 여신의 보호를 받는 아테네인들에게 아테나 여신을 기리는 판아테나이아 제전은 가장 중요한 종교적 의식이었다. 아테네인들은 파르테논 신전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기록하려 했다. 신전 자체가 바로 아테네인들의 살아 있는 역사였던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약 2400년의 긴 세월동안 아크로폴리스를 꿋꿋하게 지켜 왔다. 그 오랜 시간동안 파르테논 신전만큼 숱한 수난을 겪어온 건축물도 없을 것이다. 이 땅의 주인이 바뀜에 따라 아테나 여신의 신전이었던 파르테논은 비잔틴 제국 시기에는 그리스 정교회의 교회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기에는 이슬람교의 사원인 모스크로 사용되는 등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다. 이후 오스만 제국과 베네치아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에는 오스만 군대의 요새와 무기고로 전락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결국 1697년 오스만 제국 지배하의 아테네를 공격하던 베네치아군이 아크로폴리스에 대포를 쏘았다. 그 중 몇 개의 포탄이 파르테논 신전에 명중하였고, 수많은 세월동안 아크로폴리스를 지켜오던 파르테논 신전은 한순간에 기둥들이 뽑혀나가면서 내부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현재에도 그 포탄의 상흔들이 파르테논 신전 곳곳에 남아있다. 현재의 파르테논 신전은 사실상 그 앙상한 뼈대만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르테논 신전은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간직한 채 지금까지도 아크로폴리스 한가운데에서 의연하게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