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기행-3) 눈을 들어 북방을 보라 - 왜 흉노인가 (1) 동아시아 남북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다

눈을 들어 북방을 보라 ...... 2011년의 과제 <북방기행-중국>을 구상하면서, 대충~ 만든 슬로건입니다. 지난 여름에 중국의 내몽고자치주의 동북 끝자락, 흑룡강성 서북단의 <후룬베이얼(呼伦贝尔) 초원>을 찾아가면서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2010년 12월, 마음은 이미 북방으로 향하고 있고, 곧 닝샤회족자치주(宁夏回族自治区)로 길을 나설 예정입니다. 북방기행의 두번째 답사 - 닝샤, 이곳은 황하가 북으로 올라갔다가 남으로 돌아내려오면서 그려내는 오르도스(ordos, 중국어로는 鄂尔多斯 또는 河套) 지역의 일부지요. 아래 지도에서 적색 원으로 표시된 지역입니다. 이 오르도스 지역의 서쪽 부분이 닝샤 회족자치주입니다. 이 오르도스 지역은 곧 <흉노>가 <진나라 한나라>와 충돌한 주된 무대였기 때문에 흉노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얼마나 더듬어질지는 미지수지만요~ 오늘은 ....... <왜 흉노인가>의 일부를 이야기하려고 글쓰기 편집창을 열었습니다. 우선 명칭 문제부터 잠시 짚어보고 넘어갑니다. 흉노는 한자로 匈奴라고 씁니다. 중국어 발음으로는 xiong nu, 이걸 한글로 표기하면 "슝누"입니다. 匈은 고어에서 가슴흉(胸)과 같이 쓰기도 하고, 현대어에서는 오랑캐란 뜻입니다. 奴는 노예의 노자로, 종이란 뜻입니다. "빌어먹는 오랑캐" "오랑캐 노예" 정도의 뜻입니다. 김운회 교수는 흉노라는 두 글자의 말뜻을 "입심 좋은 천한 놈"이라고 해설하더군요. 요약하면 흉노는 진한(秦漢) 당시 중원에서 북방민족을 부르는 말로, 한자에서 발음이 유사한 문자로 표기한 것인데, 그 문자의 뜻은 아주 천박하고 더러운 뜻을 갖고 있는 한자로 골라 쓴 것입니다. 어느 민족이 자신을 부를 때 입심 좋은 노예라고 불렀겠습니까. 우리말로 하자면 중국인을 "떼놈"이라고 부르고, 일본인을 "왜놈"이라고 천박하게 칭해서 부르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따라서 가끔 사석에서 하는 말로 떼놈이니 왜놈이니 할 수는 있지만, 공개되는 글로써 또는 역사 이야기에서 '떼놈 정부' '왜놈 정권' 식으로 말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민족이 아니라고, 미개한 오랑캐라고, 한족이 흉칙하게 지어 부르는 흉노라는 비칭을 사용하지 않는 게 도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워낙 당시의 기록이 중국 한족의 한자로만 남아 있고, 이렇게 칭한 게 이천년 넘게 오래 돼버렸지요. 오늘날 흉노의 자손임을 스스로 주장하면서 그런 비칭을 삼가고 이러이러하게 호칭해달라고 주장하는 이도 없고, 학계에서도 다른 호칭이 제안된 바도 없습니다. ....... 그러니 저같은 일반인이야, 별 도리가 없이 흉노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합니만, 이런 사용하는 용어가 비칭이란 것 자체는 알고 넘어가자 이런 뜻입니다. 또 하나 흉노는 누구의 후손이고 그들의 후손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 민족의 혈연적인 맥을 확인해보는 것인데, 이건 불분명합니다.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어느 하나의 주장이 독보적으로 논증 내지 고증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들의 주된 근거지가 오르도스 지역과 몽골고원이었고, 훗날 ....... (1)일파가 서쪽으로 이동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쪽으로 갔으니 그게 바로 <훈(Hun)족>이고, (2)다른 일파(남흉노)는 중원에 합쳐져서 <한족의 일부>가 됐고, (3)또 다른 일파는 동쪽에서 이동해오던 <선비(鮮卑)족에 합쳐>져 북위를 건국해 북중국을 통일한 다음, 그 북위가 다시 버전업이 되면서 중국 최초의 국제국가인 수.당(隋.唐)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흉노의 혈통에 대해 어느 학자들은 흉노-선비-거란-몽골-여진(만주족) 등을 우리의 선조와 합쳐서 <북방민족>으로 크게 구분하여, 크게 보면 같은 민족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다른 학자들은 흉노-돌궐-위구르-키르키스 등은 일괄해서 늑대를 토템으로 하는 [투르크(突厥)계], 선비-거란-몽골-여진은 하늘의 아들(天孫)을 자처하는 [몽골계]로 나누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동아시라 역사를 <북방>과 <남방>이라는 두 요소가 갈등-교류를 해온 것으로 보기도 하고, 다른 견해에서는 <몽골계>와 <투르크계> <중원-한족계>의 세 요소가 삼자간에 밀고 당기고 갈등-교류하면서 전개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물론 중국의 입장에서는 <중원의 중국>과 <사방의 주변민족>이라는 자기 중심적 구도로 설정해서 보기도 합니다. 앞의 두 가지 견해는 <유라시아의 초원에 활동하던 유목민>의 역할과 비중에 새롭게 주목하는 견해이고, 후자의 견해 즉 <중국과 주변민족>이라는 구도는 전형적인 중화주의적 시각이 되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저같은 길가던 행인이 뭔가 주장하거나 그걸 논증할 능력은 전혀 없고, 단지 중앙아시아-몽골고원-만주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중심으로 활약했던 북방민족이라고 넓게 이해하면 되겠다 싶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은 우리와 또는 우리 선조와, 적어도 혈연적 사촌관계였거나,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기질과 문화에 유사성이 많은 이웃사촌이었다는 것입니다. 흉노의 흔적을 찾아가는 모티브를 이야기하면서 너무 장광설이 됐군요. 사실 동아시아 역사를 이해하는 거시적인 틀, 역사관과 관련된 것들이라 짧게 결론 한마디로 하기도 어렵고, 이야기가 시작만 되면 덩어리가 큰 이야기들이라 어쩔 수 없이 ......... 이 흉노(왼쪽 사진 : 흉노인)가, 현재 전해오는 기록상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대략 BC 3세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로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은, 이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는지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별안간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이들은 이미 북방의 초원에서 살고 있었고, 그들 나름대로 갈등과 통합을 반복하면서, 기마문화와 철기문화를 발전시키오고 있었지요. 단지 <별안간 나타났다>는 것은 현재 남아 있는 <중국측의 기록만을 모아놓고 보니까 기록상에서는 "별안간"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마치 유럽인들이 16세기에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말이 그 이전에 없던, 그 이전에 사람이 살지 않던 땅을 발견했다가 아니라, 그들 유럽인 가운데 그곳에 도착했다가 다시 되돌아 와서 저기에 우리가 모르던 땅이 있더라고 떠든 게 처음이었다는 말인 것처럼, 흉노가 별안간 나타났다는 말 역시 중원의 한족이 남긴 "기록상에서 별안간"이란 뜻이니,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아무튼, 흉노에 대한 기록이 확인되는 이 시기에 중국, 즉 중원지방에서도 커다란 역사의 변화가 이어집니다. 자잘하게 나뉘어진 채 이어져 오던 <춘추전국 시대>에서 진.한(秦.漢)으로 즉, <중원의 통일정권> 시대로 넘어간 것입니다. 중국의 춘추시대(BC 770~403)는 백여 개가 넘는 도시국가들이 상하좌우로 부딪치면서, 올망졸망~ 아우다웅~거리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다가 철기가 보급되고, 철제 농기구로 농업생산과 함께 인구도도 늘고, 전쟁무기의 살상력도 크게 증대되면서 중원의 양상이 크게 바뀝니다. 그래서 지역정권 사이의 전쟁도 규모가 커지고, 전쟁 결과의 파급력도 커지면서,소위 전국시대(戰國 BC403-221)로 전개됩니다. 전국 - 온세상이 전쟁통이란 뉘앙스 그대로입니다. 전국시대, 한.위.조.제.연.진.초 이렇게 일곱나라, 소위 전국 칠웅이 패권을 겨루며 승자독식의 논리로, 최종적으로는 하나로 묶여가는 것, 통일로 밀려갈 수밖에 없는 시기였습니다. 이 전국시대의 결말은 서쪽 오랑캐의 냄새가 짙은 나라에 의해 하나로 통일됩니다. 이게 바로 진(秦)나라입니다. 대빵은 진시황~~ 물론 이 진나라는 오래 가지 못하고, 16년만에 제자리에서 폭삭~ 널뛰기를 하고맙니다. 그 결과 유방(우측 사진의 동상)의 한나라라는 껍데기로 팍~ 바꿔 입고나서, 마치 이전에 전혀 없었던 것처럼 폼나게 등장합니다. 그러나 두 왕조는 한데 묶어서 생각해도 문제 없어 보입니다. 저는 두 왕조를 묶어서 진한(秦漢)이라고 칭하곤 합니다. 오늘날 외부에서 중국을 차이나라고 칭하는 것은 진(秦, 중국발음으로 qin, 우리글 표기로는 친)에서 나온 것이고, 그들 내부에서 한자니 한족이니 하는 한(漢)은 유방의 漢나라에서 온 것지요. 그런데 우리가 기존에 배웠던 [세계사]에서, 중국의 역사는 하(夏).은(殷)을 거쳐 주(周)나라의 춘추전국 시대를 거쳐, 진한(秦漢)에 와서 통일되어, 이것이 동아시아 역사의 메인 스트림을 이뤄서 전개되는 것으로 배웠지요. 그러나 진한이 차지하는 건 중국 역사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일단 동아시아 역사에서 <반쪽>일 뿐입니다. 이렇게 진한으로 통일돼 어떤 흐름이 생성된 것은, 동아시아 전체가 아니라, <중원 지방>에서 그렇게 됐다는 것입니다. 사실 중국역사에서도 진.한은 비중이 조금도 적게 평가될 순 없지만, 중국사의 전체는 아닙니다. 현재 중국의 4분의 1이나 되려나?? 아무튼, 이들이 중원지방에서 진한으로 통일되는 동안, <오르도스와 하북지방,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하는 북방>에서도 중원지방과 유사한 다부족간의 충돌을 거치면서 하나로 묶여갑니다. 그게 바로 <흉노>이고, 이들은 그들이 사는 초원의 환경에 맞춰 <유목제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그 시기 역시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한 시기와 거의 비슷합니다. 단지 흉노는 그들의 초기 역사를 그들의 문자로 남긴 것이 없어 우리가 세밀하게 알기 어려울 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동아시아는 남쪽의 진.한 중원정권과 북쪽의 흉노 유목제국의 양자의 구도로 정리된 것입니다. 이로부터 시작해서 동아시아 역사는 <동아시아 남과 북>의 긴장과 갈등과 협력과 통합이 반복되면서 이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동아시아 역사>를 <북쪽의 유목민>과 <남쪽의 농경민>으로 보게 됩니다만, 그 시작은 <북쪽의 흉노>와 <남쪽의 진한>으로부터 시작되는 셈입니다. 자 이제 이 북방의 흉노와 남방의 진.한 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 양쪽에 대표선수가 정리정돈 되고 난 다음은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사진5 설명 : 벽화에 그려진 흉노와 한나라의 전투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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