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오늘은 직접적인 귀신이야기 말고, 점집에 대해서 이야기 할까해요.

오늘은 소름이 쫙 돋는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가끔은 이런 따수운 이야기도 읽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같이 읽어볼까요 핳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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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시고 재밌게 읽으셨으면 댓글 하나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

그러니까 내 나이가 스물셋, 넷 되던 그 시기는 내 인생의 암흑기였다.

사람의 인생이 백 년이라고 치면, 백 년 동안에 만날 나쁜 인간들을 1년이라는 시간 안에 한꺼번에 몰아쳐 만났다고 할까.

사기, 이간질, 배신, 구설수 등등.

사람들의 관계에 치여 쓴맛을 참 여러 번 봤다.

결국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사람들과 치고받고 싸워서 경찰서도 들락거렸고.

예술을 전공하였으나 정서가 불안해지자 작품활동이 전혀 되지 않았다.

늦어지는 졸업 탓에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성화시고, 그쯤 되니 그냥 사람이란 대상이 모두 두려워졌다.

길 가다 마주치는 고양이나 참새를 빼놓고 마주치는 인간은 다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길을 걷다 아파트가 보이면 떨어져 죽을 생각을 하고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내가 치여 죽는 상상을 했다.

자려고 누우면 잠도 잘 안 오고, 어쩌다 잠이 들면 꿈을 계속 꾸었는데 그 꿈도 매우 현실적이어서 현실과 꿈을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지금 생각 해보면 우울증이 심했던 것 같다.


그런 날들이 꽤 여러 달 반복되었을 무렵.

지인을 만나서 길을 걷다가 우연히 점집 골목을 지나치게 되었다.

지인은 평상시에 그런 쪽(무속신앙)에 관심이 많은 터라 점을 보자고 했다.?그 당시 지인은 꽤 오래 만나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사이가 좋지 않아 고민이었다.

매사에 의욕이 없는 나는, 점은 너 혼자 봐라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그냥 있겠다고 했다.

점집은 옛날 일본식 상가 건물을 그대로 고쳐 쓰고 있었다.

그곳은 역 앞, 점집 골목으로 대부분은 점집들의 형태가 비슷비슷했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신당이 보였는데, 주인이 없었다.

날이 아닌가 싶어서 그냥 나오자고 했는데 지인은 한사코 기다리자고 했다.

주인도 없는 신당에서 무려 30분이 넘게 기다렸다.

더는 기다리기 지루하고 또 우울한 마음이 도져서 먼저 가겠노라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지인은 망설였으나 기다린 시간이 아쉬웠는지 꼭 점을 보고 가겠다는 거다.

알겠다고 인사를 나누고 점집을 나서서 한 30미터 걸었을까.

저기 먼 곳에서 한복을 차려입고, 정갈하게 쪽 찐 머리를 한 중년 아줌마가 걸어오고 있었다.

차림새가 평범한 차림새는 아니라서 ‘아- 저 아줌마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하는 느낌이 났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성큼성큼 걸어 지나치려는 순간, 중년 여인이 내 손목을 낚아채더니

“왜, 조금만 더 기다리지, 벌써 기어 나왔노.”


팔목을 잡고 왔던 길로 다시 끌고 가는 것이다.

사실, 끌려가는 동안에 이 아줌마가 도를 아십니까 나, 다단계 같은 귀찮은 사람이 아닐까 머리가 복잡했으나 왔던 점집으로 밀어 넣길래 이건 뭔가 싶었다.

그 당시에는 가정용 씨씨티비가 흔한 것도 아니어서 꽤 놀랬다.

“아주머니, 혹시 다른 곳에서 씨씨티비로 보고 계셨어요?”

지인이 여러 차례 물어봤으나 썩은 미소를 날리며

“내 장바구니 안 보이나. 장보다 쌔빠지게 뛰어온 거 안 보이나. 늦었으면 못 볼 뻔했네.”

실제로 아줌마가 내려놓은 장바구니 안에는 대파며 사과며 뭐가 많았다.

지인은 기다린 보람이 있다며 기분이 업되어서 연애가 어쩌고 결혼이 어쩌고 쫑알댔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조용히 향에 불을 켜더니

“오늘은 너 말고 니 뒤에 가시네 이야기나 듣자.”며 나를 가리켰다.

그러더니 작은 소반 같은 걸 내 앞에 끌어다 놓고 마주 앉았다.

나는 아무 의욕이 없었다. 예를 들자면.

길을 걷다가 아무 일면식 없는 사람이 내 뺨을 찰지게 때리고 지나가도 ‘아- 내가 한 대 맞았구나-‘하고 다시 갈 길 걸어가는 마네킹처럼. 그때 내 상태가 그랬다.

좀처럼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옆에서 지인이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고 옆구리를 찔러도 딱히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아줌마가 나를 유심히 보더니 나지막한 음성으로

“그리 죽고 싶나.”

경상도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이 지역은 전라도) 지인이 뭐라고요? 되물었더니

“아니~ 이 처자는 살고 싶은 마음이 개미 눈곱만큼도 없잖아. 친구 아니야?”

지인 역시 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내가 죽을 만큼 괴로워했을 거란 생각은 못 했다고 했다.

나는 지극히 외강내유형인지라 고민이 생겨도 내색을 안 하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쟁이 아줌마가 해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오열했다.

“내가 기도드리러 산에 갈 때가 됐거든. 그래서 산에 갈 채비를 하느라고 한참 시장에서 장 보고 있었는데. 아 느그 할머니가 살쾡이 같은 눈을 하고 날 보는기라. 사과 하나를 집어 들면 사과 옆에서 째리보고, 곶감을 집어 들면 곶감 옆에서 째리보고 얼른 가라고 등 떠밀어서 진짜 가랭이지게 뛰왔다. 너거 할머니가 니 걱정 많~이 한다.”


……


그땐

할머니가 돌아가돌아가신지 2년이 채 되지 않을 무렵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품에서 자랐기 때문에 사이가 각별했다.

너무 연로하신 탓에 자연사로 돌아가셨기에 사람들은 할머니의 죽음을 두고 호상이라며 위로하였으나 사람의 죽음을 두고 잘 죽었다 논하는 것이 나는 분했다.

하지만 슬픔은 그때뿐이었고, 나는 나대로 대학 생활을 하느라 할머니를 잃은 슬픔은 곧 잊고 살았었다.


아무 생각이 없다가, 할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이 삐질삐질 밀려 나왔다.

처음에는 뭔가 서러워서 흑흑 거렸는데 나중에는 감당이 안 될 만큼 꺽꺽거리며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정말로 정말로 힘들었는데 주변인은 나의 힘듦을 알아주지 않았고, 알 수도 없었다.

살아있는 사람들도 몰라주는 나의 힘듦을 돌아가신 할머니가 알고 계신다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더더욱 서러웠다.


“그래가지고 내가 쌔빠지 게 걸어왔는데, 할매가 니 뒤따라서 걷고 있데. 니 뒤에서 울면서 따라 걷는 거야. 그래서 내가 너를 알아봤지. 허리는 구부정해가지고.. 허리가 ㄱ자로 굽은 거 느그 할매 맞제?”


점쟁이 아줌마는 허리를 구부리며 지팡이를 짚는 흉내를 냈다.

우리 할머니가 맞았다. 우리 할머니는 나이 오십에 산에 땔감 주우러 갔다가 산비탈에서 구른 후에 점점 허리가 굽었다고 했다.


점쟁이 아줌마는 내 손을 감싸 쥐면서

“힘든 때는 누구나 온다. 너는 마음이 다른 누구보다 더 여리고 깨끗하네. 순진하니까 상처도 잘 받는 거야. 할머니가 니 걱정되서 잠을 못 잔다 하잖아. 힘들 땐 죽을 생각부터 할 게 아니라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이겨 먹을 생각을 해야 산다.”


시간이 너무 지난 이야기라, 기억을 더듬어 쓴 것이지만 아줌마는 아무튼 저렇게 이야기를 하며 나를 달랬다.

나는 할머니가 너무 궁금하고 걱정이 되어서 정말 할머니가 보이냐고, 할머니는 왜 천국에 가지 않고 눈에 보이는 거냐고 물어봤다.

왜냐하면 우리 집안은 사돈에 팔촌까지 크리스천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교회 권사님까지 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사는 지내본 적도 없고 절 근처에는 가본 적도 없는데..

유일하게 나 혼자만 불교인지라 집안에서 상또라이 취급을 받는 때도 있었는데.

교회식으로 말하면 애 진즉 천당 가셔서 영면하셔야 할 분이 왜..?

점집 아줌마는 썩소를 지으시며 “나중에 죽으면 느그 할매한테 물어본나” 하셨다.


아무튼 할머니가 손녀 걱정에 죽어서도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복채를 드리려고 지인에게 눈치껏 얼마냐 물었더니 점집 아줌마는 됐다고, 다음에 둘이서 다시 놀러 오라고 복채를 받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그러니까 나는 생전 처음 점보는 곳에 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울기만 하다 나온 거다.

너무 울어서 지인의 부축을 받다시피 해서 나왔다.

어떤 믿음에서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나는 조금씩 변했다.

할머니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시 복학했고, 옆에서 누가 뭐라 하든 정신 승리로 버텨냈다.

잡생각을 없애기 위해서 알바를 두 탕씩 뛰었으며 일이 끝나면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호프집이나 카페에서 꼭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갔고, 나중에는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게 싫어서 그 지인과 살림을 합쳐 함께 살았다.

그러면서 나는 예전의 김푼수로 다시 돌아갔다.


가끔 그날의 그 점집이 생각나서, 오 년 후엔가? 남자친구와 함께 찾아갔는데 그 거리가 싹 재개발이 되어서 새 건물이 들어서고 그 점집 역시 없어져있더라.


그 아줌마가 무속인이든, 뭐든 간에 힘들어하는 어린 아가씨에게 시간을 투자해서 힘내라 응원해주어서 참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outlook_exp/222336476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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