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의 모티브, 대한민국 수전 역사상 가장 극적인 승리 - 명량 해전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의 3대 대첩이라고 하면 '한산 대첩', '행주 대첩', '노량 대첩'을 꼽습니다. 그러나 저는 '명량 해전'의 전개와 의의를 보게 되면 위 3개의 전투에 꿀리지 않는 전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영화화 될 '한산'이나 '노량'과 함께 이순신 장군 영화 시리즈에 넣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자. 그럼 명량 해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 1줄 요약: 해전판 300. 어떻게 졌는지 이해가 안되는 패전을 어떻게 이겼는지 설명이 안되는 승리로 갚아준 전투. (쓰고 보니 두줄이네요;;) 1. 배경 칠천량 해전으로 조선 해군은 최악의 국면에 돌입하게 됩니다. 우선 해상 전선이 뚫림에 따라 왜군들의 보급 문제가 해결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참고로 전쟁에서 보급은 절대적입니다. 보급이 부족하다는 것은 전쟁을 하는데 총탄과 먹을 것, 마실 것이 없다고 해석하면 바로 와닿으실 것입니다.). 또한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의 진격과 보급을 막을 전력조차 없었습니다. 칠천량 해전 이후 조선 수군의 전력은 증발해 버렸고 기껏해야 찾은 것이 배설이 칠천량 해전때 도주해서 살아남은 배 몇 척 뿐이였습니다. 상황이 이토록 처참하게 이르자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시킵니다. - 왕은 이른다. (중략) 지난번에 경의 직책을 빼앗고 그대로 하여금 죄를 짊어지도록 한 것은 역시 과인의 모책이 미덥지 못함에서 나온 것이었으니, 무슨 말을 하리오. 무슨 말을 하리오. - 선조는 중앙집권국가에서 나오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이순신에게 다시 중책을 맡깁니다(하지만 품계는 파직 이전보다 깎였다는 함정... 역시 졸렬한 선조입니다.). 하지만 이때 당시의 조선 수군은 정말 이름만 수군이지 아무 것도 없는 수준이였습니다. 조정에서도 유명무실한 수군을 없애고 육군과 합치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그 유명한 장계를 올리면서 이런 이야기를 셧아웃 시키게 됩니다. - 지금 신에게 아직 열두 척 전선이 있사오니 죽을 힘을 내어 막아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중략) 전선이 비록 적으나 미천한 신이 죽지 않았으므로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 이순신은 본인이 직접 돌아다니며 물자와 배를 끌어모았고 겨우 13척의 전투함과 32척의 초탐선을 모으게 됩니다. (*다시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해군을 없애는 것은 굉장히 미련한 짓입니다. 조선시대의 육로사정은 매우 좋지 않았으며 보급의 대다수는 수로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수군을 없애자는 말은 '보급을 포기하시죠?'라는 말과 비슷한 말입니다.) 2. 전투 전 - 동요하는 장군과 병사들 8월 28일 왜군이 8척의 배를 이끌고 쳐들어오게 됩니다. 이때 당시 조선 수군들이 얼마나 겁에 질려 있었냐하면 고작 8척의 배를 보고 경상 우수사 배설은 후퇴하자고 요청합니다. 물론 이순신은 동요하지 않고 8척의 배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이것이 이순신 장군의 복직 후 첫 승리였으며 어란포 해전이라고 부릅니다. 승전을 거두었을에도 불구하고 조선 수군의 분위기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9월 2일에는 경상 우수사 배설이 도주하는 사태가 일어납니다. 요즘으로 따지자면 해군 군단장이 도주한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순신을 포함한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패전을 당연시 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왜군은 300여척의 함대를 가지고 있었고 이순신은 고작 13척의 배가 있었으니... 이순신을 조롱하면서 단 13척의 배만 가지고 싸움을 건 적이 있는 것을 보면 일본군도 이 사실을 알고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는 것 같습니다. 이후 이순신은 우수영으로 장소를 옮기게 됩니다. 그리고 전투가 임박하자 장수들을 모아 전설로 남을 명언을 남기게 됩니다. -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고 했으며, 또한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一夫當逕 足懼千夫)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그대들 뭇 장수들은 살려는 마음을 가지지 말라. 조금이라도 군령을 어긴다면 즉각 군법으로 다스리리라! - 드디어 운명의 날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3. 전투의 전개 9월 16일 아침 엄청난 함대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숫자의 왜군 함대에 조선 수군은 질려버렸고 멀찌감치 도망쳐있게 됩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명량 해전 초기에는 13 대 133이 아닌 1 대 133으로 싸웠다는 것입니다. 이순신의 대장함을 제외한 나머지 배들은 싸우기도 전에 질려버렸고 뒤에 숨어있었습니다. 전투 초기에는 이순신이 탄 대장함 혼자서 모든 공격을 받아냈습니다(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진짜입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면 정말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뭇 장선(將船)들을 돌아보니, 물러나 먼 바다에서 관망하며 나아가지 않고 배를 돌리려 하고 있었다. - 전라 우수사 김억추, 안위, 배흥립, 김응함 등은 전부 다 후방에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이순신의 성품은 공명정대합니다. 공을 세운자는 아무리 신분이 낮아도 자라도 분명하게 기록한 분입니다. 그런데도 부하장수들이 도왔다는 기록은 지금까지 단 한 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에 대노한 이순신은 호각을 불어서 장수들을 소집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도착한 안위에게 호통을 치게 됩니다. '안위야, 싸우다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달아난다고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이 말을 들은 안위는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적진으로 나아갔고 이순신은 뒤이어 온 김응함에게도 호통을 칩니다. '너는 중군이 되어서 멀리 피해만 있고 대장을 구하지 않았으니, 죄를 어찌 면하겠느냐! 당장이라도 처형하고 싶지만 적의 기세가 또한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하겠다!' 이 말을 들은 김응함도 죽기살기로 싸우게 됩니다. 안위와 김응함의 배가 도착하자 명량 해전은 점점 더 난전이 되어갑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뒤에 숨어있던 배들도 전투에 참여하게 됩니다. 거기에 점점 물살이 바뀜에 따라 조선 수군에게 흐름이 넘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구루지마 미치후사가 이끄는 왜군의 대장선이 격파되었고 이순신은 마다시(구루지마 미치후사로 보입니다)의 시체를 건져내서 토막낸 뒤 걸어버립니다. 가장 안전한 곳에 있어야하는 대장선이 격침되었다는 것은 직접적인 공격을 받아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상당한 타격을 받은 동시에 대장선까지 격침 당한 왜군의 사기는 완전히 꺾였고 패퇴하게 됩니다. 결국 왜군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후퇴하게 됩니다. 3. 결과 사실 조선군이 승리를 했습니다만 압도적인 열세인 병력을 가졌던 만큼 승리 후에도 이순신은 후퇴하게 됩니다. 즉, 명량 해전에 져서 일본군이 북상에 실패했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입니다. 실제 왜군은 전라북도 부안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고 이 후 서해안으로 완전히 세력을 확장하는데는 실패하게 됩니다. 명량 해전 이후 조선 수군은 빠르게 재건에 들어갔고, 더 북상해보았자 이순신에게 밀려 패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였겠죠. 명량 해전의 패전으로 수로로 보급을 하며 한양까지 점령하겠다는 왜군의 계획은 완전히 틀려버리게 됩니다. 이때 당시 일본 육군은 한양으로 진격중이였고, 수군의 보급만 받쳐준다면 충분히 한양을 함락할 수도 있는 병력을 보유 중이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수군을 통한 보급 문제가 끝까지 해결이 안되면서 진격을 못하게 됩니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한다면 만약 명량 해전에서 패했다면 임진왜란은 왜군의 승리로 끝나고 저희는 '일본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보급 계획에 차질이 생긴 왜군은 남쪽으로 철수하게 됩니다. 4. 평가 단 13척을 가지고 무려 31척의 배를 격파한 대승입니다. 하지만 명량 해전으로 일본군을 궤멸시켰다고 보기 보다는(물론 상당한 피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후 조선 수군이 빠르게 재건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의라고 보는게 옳을 것 같습니다. 만약 계속해서 13척의 배 밖에 없었더라면 일본 입장에서는 아직 남은 200여척의 배를 동원해서 밀어버리는게 더 좋은 선택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명량 해전 이후 숨어 있던 병력들이 다시 모여들었고 조선 수군은 빠르게 상당한 규모로 재건하게 됩니다. 물론 명량 해전의 성과를 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전투에서 패배했다면 재건이고 뭐고 그냥 한양까지 뚫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명량 해전의 의의를 지나치게 크게 잡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치 명량 해전으로 왜 수군이 궤멸되고 쫄아서 13척 밖에 없는 이순신에게 덤비지 못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던데 그것은 아닙니다. '왜군의 진격을 막았고 빠르게 재건할 시간을 번 전투. 그러나 졌더라면 조선의 존망을 가늠할 수 없었던 중요한 전투.' 정도로 해석하는게 옳을 것 같습니다. ======== 영화 '명량' 덕분인지 이순신 장군님 전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흥하네요...ㅎㅎ 앞으로도 계속 써볼까 합니다. 다만 이제 부터 쓰는 글은 영화 관심사에 태그하는 것은 옳지 않아보여서 역사쪽에만 태그할까 생각중입니다. 이순신 장군님의 전쟁사를 계속 받아보시고 싶으신 분들은 역사쪽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물론 역사, 정말 딱딱한 분야이긴 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처칠의 명언을 인용하지 않아도 역사가 중요한 것은 전부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빙글에 올라오는 역사글들을 보면 교과서처럼 많이 딱딱한 글들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최근에 글을 올려주시고 계신 lucy7599님의 글은 정말 재미있게 왕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역사 관심사쪽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며 신채호 선생님의 명언으로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면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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