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기행-7) 눈을 들어 북방을 보라 - 왜 흉노인가 (4) - 한나라 vs 흉노, 무승부의 결과는? 북방의 경우

만리장성 남쪽의 <진.한>과, 북쪽의 넓은 초원과 사막의 <흉노>, 어느 날 콕 찍어서 선전포고 하고 시작한 전쟁은 아닙니다만, <사생결단의 진검승부>가 수십 차례 오고 갔습니다. 사생결단이란 게 한번 하기도 힘든 것이거늘 수십 차례씩 반복되고 .......... 그리고 그 사생결단의 진검승부는, 한무제가 <윤대의 조서>로 일단 휴지기로 들어갑니다. 흉노도 이 소식을 모를 리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던 전면전이 일단 멈춰졌습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상대방을 죽이는 데에만 집중돼 있던 에너지가 내부의 문제로 눈길을 돌리게 되는 거죠. 이제부터, 안으로 쌓여있던 병과 상처와, 부서진 집과 깨진 가족 ........ 진창이 되어버린 주방과 텅빈 창고 ....... 네 탓일까 내 탓일까 ....... 뭐가 잘못되고, 뭐가 제대로 된 것일까 ...... 내부의 문제가 봇물처럼 터지면서 전면으로 등장합니다.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사생결단 진검승부의 무승부>의 진짜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무승부는 결과가 아닙니다. 그 무승부의 결과가 진짜 결과입니다. 이 이야기까지 해야, 왜 흉노인가에 대한 작은 세션이 대강리하도 마무리되는 것 같아서, 중국 내륙 닝샤(寧夏) 남부의 작은 도시 구위안(固原)에서, 새벽에 일어나 앉았습니다. 참고로, 이곳은 해가 8시나 되어야 뜹니다 ㅋㅋㅋ ................................................. 당장의 결과는, 물어볼 것도 없이, 양쪽 다 치명적인 손실을 당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형국입니다. 승자는 당연히 없었고, 이제 어느 쪽이 얼마나 내상을 입었는지나 살펴볼 수밖에 없는, 비참한 결과가 된 것이죠. <사진 : 한나라가 흉노의 남진을 막기 위해 세운 장성, 토성으로 지은 것인데, 닝샤 남부의 작은 마을에 일부 남아 있다> 그러나 우선, <당장의 결과>에 앞서서 <아주 거시적인 안목>에서 보는 결과부터 음미해보고자 합니다. 이런 거시적 해석은 해석하기 나름입니다만, 북방기행이라는 제 시각에서 보면 아주 중요한 결과물을 낳은 것 같습니다. 남북 양쪽에서 각각 발달해온 두개의 시대적 이념과 응축된 에너지가 한과 흉노의 충돌 속에서 사생결단을 내려다가, 양쪽 모두 빈사상태에 빠지고 보니, 아~ 이게 아닌가보다, 상대방을 완전히 굴복시키려는 사생결단이란 게, "죽고사는 것을 돌보지 않고 끝장낸다"는 건데, 끝장이 나지도 않고,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집만 죽어나고 있다는 걸, 실감나게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사생결단이 아니라 <같이 사는 무엇>을 모색하게 됩니다. 사람사는 일이나 역사가 흘러가는 것이나 비슷해보입니다. 이렇게 해보다가 결과가 안 좋으면 반대로 가보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윤대의 조서>가 발표된 다음에 양측이 쌜쭉쌜쭉 웃으면서 만나서 어색한 포옹 몇번 하고, 쌈질 그만하고 잘살아보자고, 칼로 물베기했노라고 시시덕거린 게 아닙니다. 양쪽 모두, 내부적으로 내탓이다 네탓이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를 놓고 치열한 이념전쟁을 거쳐서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겁니다. 하루이틀 걸린게 아니고 수백년 걸린 겁니다. 그래서 <아주 저시적인 안목>에서의 해석이라고 한 것이지요. 북방에서는 새로운 권력과 수익모델을 창출하는데, 흉노의 기득권 안에서의 모색은 실패합니다. 시대이념으로 답을 내지 못한 채 내부의 치열한 논쟁 속에, 흉노가 <남흉노>와 <북흉노>로 갈라집니다. 남흉노는 한나라와 친해지는 방향으로 가고, 북흉노는 남흉노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북흉노는 또 핵분열을 합니다. 동서로 갈라져 <서흉노>는 밀려나면서 서쪽으로 이동을 시작합니다. 이들이 곧 유럽의 게르만족을 내치고, 정면으로 강타당한 게르만족이 유럽으로 밀려들어가면서, 무사안일에 푹 젖어 있다 로마제국을 엎어버린 것이지요. 바로 유럽 역사에 <훈족>이라고 기록된 무시무시한 기마군단입니다. 한편 <동흉노>는 새로운 비전을 창출하지 못한 채 세력이약해졌고, 결국 새로 일어서 서남으로 이동해온 젊은 피의 <선비>족에 합쳐집니다. 그리하여 거시적으로 보자면, 흉노는 이제 선비라는 새로운 대표선수로 완전 교체됩니다. 이 선비족이 위(魏)나라를 세운 것이 AD386년이니 선수교체에 걸린 시간이 약 4백년 걸린 셈입니다. 선수교체가 아니라 사실은 시대이념이 교체된 것입니다. <그림 : 선비족이 세운 북위의 개혁가였던 효문제> 이건, 축구대표팀 구성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작전을 변경하는 것만으로 되지 않고, 사람 몇을 교체한다고 되지도 않고,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나쁘면 감독부터 선수까지 통으로 교체하게 됩니다. 이것은 작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작전을 생각해내는 사람 자체를 바꿔야 정말로 작전이 변경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람을 완전히 교체하면, 같은 작전도 다른 작전이 됩니다. 또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작전이 구사되기도 합니다. 히딩크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말 새로운 것을 보여준 게 많습니다. 이미 책에서나 TV에서 다 봤던 것이고 다 알고 있었는데, 히딩크가 하니까 되더라는 그 어떤 것이 있는 것이죠. 국가대표는 잘하는 놈을 뽑아 써야 한다, 이런 간단한 명제를 히딩크는 그대로 해낸 것 아닙니까? 누구나 알지만, 축구협회 사람들도 다 말로는 그렇게 떠들었는데, 히딩크가 해내고 나니까 아 정말 그렇구나 ....... 했던 거 기억 나시나요? 월드컵 열리기 며칠 전까지도 죽어라 하고 체력훈련을 시킨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체력이 좋아야 축구를 잘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히딩크가 해내고 나니까 아 정말 그렇네 하고 새삼 깨닫게 됐지요. 그 이후 축구 선수들의 체력은 한단계 푹~! 올라갔죠. 다시 말하면, 히딩크로 교체됐다고 감독 한사람만 교체된 건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 축구에 대한 <발상법>이 바뀐 겁니다. 역사에는 이와 유사한 것을 <시대이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대이념이란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공감하고, 아니면 공감당하고, 그들에게 비전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로만 성립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발상법(철학과 비전 가치관)과, 그것을 구현하는 방법론(제도와 문화, 습속 등), 그것을 집행하는 에너지(권력과 의지) 등등이 한데 뭉쳐진 것이 바로 시대이념입니다. 말로만 철학을 떠들고, 그것을 추진하는 방법론이 없거나, 방법론도 그럴듯한데 그걸 구현해낼 에너지가 없으면 말짱 꽈당입니다. 이런 걸 헛소리 내지 개소리라고 하죠~ 반대로 힘은 충만한데 철학도 방법론도 없으면? 시정잡배 내지 깡패라고 하지요~ 아무튼 북방에서는, 흉노의 내부분열 이후에 세대교체가 이뤄져갔습니다. 특히 흉노가 퇴장하고 다양한 에너지가 출현하는데, 그게 바로 <5호16국>의 5호입니다. 호는 胡인데, 북방민족을 통칭하는 것으로 굳어진 말입니다. 오호란, 다섯 북방민족이란 말이죠. 흉노(匈奴), 갈(羯), 선비(鮮卑), 저(氐), 강(羌) 다섯 민족이 각각 정권을 이리 세우고 저리 무너지고, 이렇게 대체하고 저렇게 뒤집고 ......... 자그마치 열여섯 나라가 명멸했으니 국명을 외우기도 힘들 정도라 교과서에서는 <혼란의 시대>라고 이야기하지만, 혼란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이념을 생산하는 거친 <산고의 시대>였습니다. 그리하여 선비족에 세운 <북위>가 결국 북중국을 통일했고, 이 북위가 제자리에서 폴짝 뛰어 <수.당>이 된 것입니다. 수차 말했지만 수.당은 선비족의 정권입니다. 이 이야기는 선비 편에서 자세하게 다룰 이야기니 여기서는 통과~! 이들 선비족의 시대이념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호한융합>이라는, 민족구분을 넘어서서 속살까지 합쳐서 살자는 것이었습니다. 한나라와의 사생결단 진검승부의 결과다 둘 다 사망 직전에 이르렀던 것의 반대방향으로 잡은 겁니다. 그래서 선비족은 한족과 통혼하고, 성씨를 같이 쓰고, 습속도 합쳐서 교환했습니다. 철학만큼은 한족의 유학이 아닌 새로운 철학이 필요했으니, 그래서 불교를 적극적으로 진흥한 것입니다. 중국에서 제일 유명한 석굴과 사찰들이 상당 부분 선비족의 북위 시절에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북위가 새로운 철학으로, 유교가 아닌 불교를 채택했기 때문입니다. <사진 : 북위에 세워진 수미산(須彌山> 석굴의 대불. 불상 높이만 30미터 정도가 된다> 그 결과 당나라 시대의 특색있는 당삼채 등등의 유물에는 기존 중원의 한족이 아닌 이민족들이 그렇게 많이 등장하는 거지요. 바로 <호한융합>을 통해, 민족 내지 혈연으로 가르지 않고, 있는대로 보이는대로 전부 합쳐서 사는, 누구나 와서 장사하고 사는 <국제국가>로 탄생한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에서, 정말 위대한 진보입니다. <사생결단 진검승부>에서 <파와 살과 문화까지 융합시켜가는 호한융합>의 바다로 ......... 이게 북방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흉노로 다시 돌아가서, 그들은 북방에 최초의 유목제국이랄 수 있는 제국을 구축했지만, 그것이 남방까지 아우를 수 있는 시대이념으로 성장하진 못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초원에서의 권력자는, 유목지를 배분하는 조정자이고, 척박한 환경에서 조달되지 않은 생필품을 외부에서 조달해오는 군수사령관이고, 집단수렵을 지휘하는 우두머리입니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부족연합체 성격이 강했고, 합의에 의해 권력자의 교체가 이뤄질 수밖에 없었는데, 권력의 교체가 원활하지 않았다는 것도 흉노의 큰 취약점이었지요. 중요한 또 하나의 요인은, 이동문명 속에서 생존하다보니, 그 문화적 자양분이 부족했거나 축적한 것이 부족했습니다. 사람들을 단번에 묶어버리는 <질긴 끈>이 권력과 제도라면, 그것을 천천히 그러나 오래도록 붙어있게 하는 <묽은 풀>이 바로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방에 문화가 척박하다고만 오해하지는 마시길, 거친 환경으로 인해 문화를 <축척해둘 여건>이 나빴을 뿐이지, 실제 <문화적 능력>은 상당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북방민족들이 어떤 문자를 어떻게 창제했는지 등등의 이야기로 상세하게 풀어볼 생각입니다~) 결국 흉노는 힌나라와의 진검승부를 통해 스스로의 한계를 다 까발리고는, 서서히 퇴출하기 시작했고, 역사는 새로운 발상법과 그것을 구현할 방법론과, 그것을 실현해낼 충만한 에너지를 키워갔으니 그게 바로 <선비족>이었고, 이 선비족이 <북위>를 거쳐 <동아시아 최초의 국제국가 당나라>로 꽃을 피운 것입니다. 흉노가 무승부로 주저앉은 그 거시적 결과는, 바로 이게 아닐까요? 북방에서 이렇게 치열하게 새로운 시대이념을 모색하는 동안, 만리장성 남쪽의 그 중원문명은, 처참한 무승부 뒤끝에서 무슨 결과를 끌어가고 있었을까 ...... 정말 유심히 살펴볼 만한 시대가 개 끌리듯 질질 끌려가고 있었으니 ...... 그 이야기는 또 다음 포스팅으로 이어집니다. [출처] 북방기행-7) 눈을 들어 북방을 보라 - 왜 흉노인가 (4) - 한나라 vs 흉노, 무승부의 결과는? 북방의 경우|작성자 왕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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