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필리핀 기갑부대의 활약

https://www.facebook.com/MaxDefense/posts/so-who-is-maj-maximo-young-ret-the-latest-recipient-of-the-south-korea-order-of-/991951714308819



자국 홍보용 SNS라는 특성상 과장이 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율동전투 때의 활약 등은 이미 국군, 미군 자료와 교차검증되는 부분이고


출처로 자국 기록이 아닌 'US Army in the Korean War' 4권, 미군 기밀문서

'Army 12 November 1952', USACMH 발행 'The Korean War the Outbreak'등

외국 자료를 기재하고 있어서 적어도 난 어느정도 신뢰성이 있다고 생각함.




한국전쟁때 필리핀군은 10대대 전투단을 파병, 총 파병인원 7500여명을 보내

UN에서 다섯번째로 많은 군인을 보낸 군대였는데


특기할 사항은 이 10대대 전투단은 '기갑부대'였음.

그것도 필리핀에 있던 유일의 기갑부대.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사실 필리핀은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당시

M4A1셔먼(75mm모델), M10 울버린 구축전차, M7 프리스트 자주포,

그레이하운드 장갑차와 M3 반궤도 장갑차등 기갑차량을 도합 500여대 가량

보유하고 있던 서류만 놓고보면 상당한 기갑전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문제는 이 기갑차량들이 대부분 정비, 운용할 인원 없이 창고에 쳐박혀 있던

물건들이라는 점이었음. 근본적으로 미군이 필리핀에서 쓰다가 회수하지 않고

그냥 가버리면서 필리핀에 남게된 잉여물자들이었고


이걸 운용할만한 숙련된 정비병과 전차병, 인프라는 필리핀에 매우 소수만 있어서

필리핀은 1950년 시점에서 10대대 전투단 단 하나의 기갑부대만을 운용하고 있었으며,

구체적으로는 29대의 셔먼 전차와 10대의 스튜어트 경전차 소수의 m101

105mm 자주박격포만을 운용하고 있었다고 함.



하지만 필리핀은 6.25 개전 직후 곧바로 식량 및 농기구, 비료등을

한국에 지원해준 걸로 모자라

유일한 기갑부대인 10대대 전투단을 한국에 파병할 것을 결정했음.


필리핀이 안정되어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라 1946년 독립 이래 내부적으로

이미 한국보다 먼저 개판이 나서 친미정권에 반기를 든 공산 반군 후클발라합,

남부 이슬람 무장단체등이 들고 일어나 나라가 2~3개로 쪼개질 판국이었는데도

기갑차량 운용능력을 가진 유일한 부대인 10대대 전투단을 파병할 것을 결정한 것임.


개전 3개월이 채 안된 1950년 9월 15일에 부대는 출발할 예정이었는데 심각한 문제가 생김.


부대는 총 16대의 셔먼 전차와 1대의 울버린 구축전차를 운용할 예정이었는데

병력이 출발하기 이전에 "미리 유엔군에 장비를 보내놓고, 도착하면 다시 받아 싸우자!"라는

생각에 기갑차량들을 먼저 부산항에 보냄. 그리고 따로 병력이 출발함.


근데 막상 9월에 필리핀군이 부산에 도착하자 필리핀군은 차량을 못받음(???).

그래서 필리핀군은 명색이 기갑부대인데 인천상륙작전 이전까지

그냥 기갑차량 없이 보병으로 싸웠다고 함.


필리핀 국방부 페북에 따르면 자기들이 도착하기 전에 파괴되었다고도 하고

대체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 17대의 기갑챠량의 행방은 오리무중임.


아무튼 그래도 필리핀군은 부산과 대구에서 기갑없는 기갑부대,

사실상 보병부대로서라도 열심히 싸웠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에도 참여했으며,


이후 미군에게 필리핀군이 가진 화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요청을 넣어 다시

채피 경전차와 셔먼 중형전차등을 받아 기갑부대로서 구색을 갖추는데 성공함.


1950년 11월 미우동에선 비가 내려 전차가 기동하기 힘든 진창이 되었음에도

성공적으로 채피 전차를 운용해 북한군을 격퇴했고


중공군의 개입 이후 1951년 4월 20일 임진강 인근에선 2대의 미군 M26 퍼싱 전차가

수렁에 빠져 기동불능이 되는 사태가 발생, 중공군은 포격을 가한 후 다수의 보병들을 보내

퍼싱 전차를 노획하려 했는데 이때 10대대 전투단의 전차들이 달려와 중공군을 격퇴하고

미군 전차병들이 성공적으로 퍼싱 전차를 회수할 수 있게 도왔다고 함.



하지만 가장 유명한건 1951년 4월 22일 벌어진 율동전투. 율동에서 900명의

필리핀 10대대 전투단 병력이 거점을 지키고 있었는데 중공군 44사단 병력이 공격을 개시,

근처에 있던 미군 부대가 모두 후퇴하면서 필리핀군이 지키던 거점은

쿠르스크마냥 툭 튀어나온 형태가 되어버림.


중공군은 4만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고립되고 통신도 끊긴 필리핀군에

맹공을 퍼부었지만 필리핀군은 소수의 채피 전차로 이 공격을 격퇴하고

거점을 지키는데 성공함. 필리핀군은 12명이 사망하고 38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중공군은 5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었음.


전선이 답 없이 밀리면서 필리핀군도 결국 후퇴하지만 필리핀군 덕분에

미군은 후퇴할 시간을 벌 수 있었음.

콘라도 디 얍 대위

막시모 영 소령



이 과정에서 콘라도 디 얍(Conrado D. Yap) 대위와

막시모 영(Maximo Young) 예비역 소령이 뛰어난 활약으로

2018년 한국 정부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받기도 했음.


콘라도 디 얍 대위는 퇴각명령이 떨어졌음에도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돌격을 감행,

중공군을 패퇴시키며 부상자들을 구하고 전사자들의 시신을 수습했으며

이 과정에서 본인은 전사함.



막시모 영 예비역 소령은 이때 채피 경전차의 전차장이었는데

2차대전때 일본군에 맞서싸우고, 한국전쟁때 공산군에 맞서싸우고,

베트남 전쟁때도 참전해 세 전쟁에 참전한 인물로 알려져 있음. (올해 2022년 1월 작고)




앞서 말했듯이 율동전투때의 활약은 미군 기록으로도 검증된 사항이고


맥아더도 900명의 병력으로 4만명의 중공군을 막아낸 율동의 필리핀군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은 바 있고 퍼싱 전차 구출작전 당시에도 이 과정을 지켜본

미군 공수부대원들이 필리핀군을 극찬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필리핀군 10대대 전투단은 한국전쟁 당시 가장 분전해 싸운 부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음.





군사갤러리 나쿠로이님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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