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 극장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 22학번, 이들은 생각했다. 마침 대학을 창설하고 의대를 활성화시키려면 해부학을 열심히 공부해야 할 텐데, 그렇다면 실습이 많이 필요하다. 즉, 해부를 할 특별한 교실이 필요하다는 결론. 이때가 1222년이며, 파도바 대학은 (최초는 아니지만) 정말 초창기 세워진 대학다운 대학이었다.


그래서 사진과 같은 일종의 “극장”이 생겨난다. 지금도 수술실을 operating theater라 부를 때가 있는데(물론 operating room이 더 일반적일 것이다), 극장이라는 명사가 붙는 까닭이 있다. 다만 “교실”이 이런 극장화된 것은 300여년이 지난 후인 1593년부터이다. 어째서 300년씩이나? 기록에 따르면 전설의 22학번들도 분명 해부를 실습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해부용 시체를 구하기가 녹록지 않았고, (불법까진 아니었지만) 시각도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해부 극장(!)은 임시 구조물일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이게 흥행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입장료 수입도 있을 테고, 일단 대중이 이런 쇼를 좋아했다. 천주교 입장에서도 하느님의 신비를 직접 보여주기에 해부학 쇼만큼 좋은 것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교육적인 목적이 강화됐기 때문에 해부 실습은 공개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다.


이른바 파도바 대학교의 해부실(Teatro Anatomico, 참조 2)이 그 시작입니다. 사진은 7월 말 베네치아의 프라다 재단에서 촬영한 것으로서, 프라다 재단의 전시회 이름 자체가 HUMAN BRAINS(참조 1)이다. 이 전시회가 일반적인 미술관의 일반적인 전시회가 아님부터 알려야겠는데, 인간의 두뇌 및 정신과 관련된 자료를 시대별로 전시하고 관련된 영상을 상영하는 형식이다. 미술관이 통상적인 개념의 미술만을 전시할 이유가 없다는 고민이 담겨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두 사진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첫 번째 사진은 200여명이 관람 가능한 6층짜리 파도바 대학교 의대의 원형 해부 극장 모형이다. 둘로 갈라진 객석을 합치면 완성되는 형태인데, 1층에는 학장과 시 고위관계자들(한 번은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 황제도 직접 구경했다고 한다, 참조 3), 귀족들이 착석 가능했고, 학생들은 2층부터 앉을 수 있었다. 아마 고학번부터 앉았을 것이다. 그런데 두세 층이면 관계자 모두가 앉을 수 있잖았을까? 나머지는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두 번째 사진은 이탈리아의 고질적인 경쟁이 낳은 또 다른 해부실이랄 수 있을 텐데, 파도바 대학이 만들었으니, 파도바 대학을 배출한 볼로냐 대학이 빠질 수 없다 이겁니다. 이 사각형의 해부실이 바로 볼로냐 대학의 해부실이었다. 1637년에 세워졌으며, 차별화를 위해 파도바 대학교와는 달리 사각형으로 지어졌고, 여러 유명인사들(갈레아누스, 히포크라테스 등등)의 흉상과 함께 그유명한 Memento Mori라는 글귀가 쓰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해부 극장 시설이 이탈리아에만 그치지 않았다. 본격적인 자본주의 방식 쇼로 둔갑한 곳은 아무래도 네덜란드일 테고(참조 4), 네덜란드에서는 흥을 돋구기 위해 해부 실습을 할 때, 라이브 콘서트도 개최됐다(참조 3). 파리와 런던, 웁살라, 마드리드, 베를린은 당연하거니와 미국에도 퍼졌다(참조 5).

이런 식으로 "수술 극장"이 있었다는 사실. 출처는 참조 7번 기사.

위에서 언급했지만 당연하게도 이 해부 극장은 수술 극장으로도 이어졌는데, 해부에서 수술로의 전환은 해부 극장 자체의 쇠퇴로도 이어진다. 이제 대중용 극장이 아닌, 실무 외과의사의 프리젠테이션(참조 6) 및 교육의 의미만 남는 것이다. 19세기 들어가면 해부 말고도 많은 볼거리는 물론 미디어가 출연한다. 대중이 굳이 시체만 보러갈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 이름, ‘극장’만은 수술실 명칭에 남았다. 20세기 초까지는 그런 극장으로서의 의미가 있었으나 점차로 수술 장면은 그냥 사진과 영상 기록만 남기고, 위생상 이유와 함께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교육과 해부학 실습은 별도의 방에서 이뤄지는 시대가 됐다(참조 7). 한국의 경우는? 예전 사진들을 보면 수술 극장이었던 형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연세대 의학박물관(동은의학박물관)에는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 주말 특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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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HUMAN BRAINS : https://www.fondazioneprada.org/project/human-brains-it-begins-with-an-idea/


2. https://www.unipd.it/teatro-anatomico


3. 1968년 미국 국립 의학도서관의 논문을 보시라. Old anatomical theatres and what took place therein. :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1033863/


4. 해부학의 라이벌, 빌도와 라위스(2019년 8월 25일): https://www.vingle.net/posts/2661779


5. 토마스 제퍼슨이 버지니아 대학교 설립 계획을 세울 때, 해부 실습 극장 도안도 그렸었다. Drawing 4를 보시라.


Thomas Jefferson's Plan for the University of Virginia: Lessons from the Lawn (Teaching with Historic Places) Drawing of the University of Virginia with several buildings facing open square. https://www.nps.gov/articles/thomas-jefferson-s-plan-for-the-university-of-virginia-lessons-from-the-lawn-teaching-with-historic-places.htm


6. 몇 번 언급한바 있는 드라마, The Knick의 의사들이 수술하기에 앞서, 수술극장에서 장황하게, 수술을 어떻게 하겠노라 강연하는 장면이 나온다.


The Knick (2014) 시즌 1(2014년 10월 20일): https://link.medium.com/O7ybA0Rx24


The Knick (2015) 시즌 2(2016년 1월 2일): https://medium.com/@minbok/the-knick-2015-%EC%8B%9C%EC%A6%8C-2-3064a20b7bdb


7. Inside the Operating Theater: Early Surgery as Spectacle(2015년 12월 9일): https://daily.jstor.org/inside-the-operating-theater-surgery-as-specta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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