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마을 호카게급 돌려먹기였던 바둑의 정점 ㄷㄷ

세고에 겐사쿠 라는 일본 바둑기사가 있었음


일본의 기원을 창립한 사람들 중 한명이고

당대 최고의 바둑기사 중 한명이기도 했던 사람이었음.


이 사람은 다른 기사들과 다르게

평생 제자를 딱 3명만 뒀음

한중일 각각 딱 한명씩


오늘 이야기 해볼 이야기는

두번째 그리고 세번째 제자 이야기임


겐사쿠가 중국에서 한 미친 천재를 만나게 되는데

이미 12살 때 당대 최강이었던 일본의 바둑기사들을

상대로 이기면서 천재로 이름을 날렸고


겐사쿠는 이 천재를 보고

자신의 유일한 제자이자

첫번째 제자를 보내 1대1로 붙였는데


이 경기에서 13살 꼬마가 일본에서 소문난 천재였던

겐사쿠의 첫번째 제자를 압살하게됨.

(첫번째 제자도 훗날 일본 원탑 중 한명이 됨)


겐사쿠는 이 소년에게 뿅가서 중국에서 일본으로 데려와서

제자로 삼는데

이 소년이 역사상 최고의 바둑기사 탑3에 드는 천재

'오청원'임


일본으로 건너가서 겐사쿠 밑에서 공부를 한 오청원은

당대 최강이었던 일본을 말 그대로 씹어먹음


어느정도였냐면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들이 20대초반의 오청원에게 찾아가

바둑을 두는일이 비일비재 했을 정도로 일종의

논외급 최종보스 역할이었음.


이 사람이 만든 전술은 훗날 현대 바둑의 기본기가 되어

그 토대 자체가 정석이 됨.


이런 개미친 goat를 제자로 둔

겐사쿠는 그 어떤 인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실제로 오청원 이후로 30년간 그 어떤 제자도

들이지 않고 살았음.


그리고 30년이 지나

한국에 또 한명의 개X라이급 천재가 탄생하는데

그게 바로 최후의 한명 한국의 제자 조훈현임


조훈현도 범상치 않았는데

무려 9살에 프로로 데뷔함.


조훈현도 일본으로 건너가

겐사쿠 밑에서 배우더니 13살에 데뷔.


신인왕도 먹으면서 승승장구 하더니

한국인의 족쇄 군대 때문에 한국에 귀국함


이때 겐사쿠의 상황이 중요한데

당연히 오청원을 키워냈기에 원로대접을 받았지만

겐사쿠의 라이벌 산하의 기사들이

일본 바둑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음.


그야 제자 자체가 셋뿐이니 당연한 일이었음


조훈현이 군대로 한국으로 귀국하자

제자를 빼앗겼다는 슬픔에 자살함...


바둑계가 충격에 빠졌던 사건이었고

조훈현도 이 충격에 침체기를 겪었음.


심지어 일본에서 공부하고 온 조훈현은

한국에서 텃세를 X나게 당해서 정말 순수 실력이 아니면

답이 없는 상황이었고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겐사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걸 몸소 증명함.


군대를 제대하고서 한국을 개같이 씹어먹더니

당시 한국은 바둑에서 약소국 취급이었는데

축구로 따지면 챔스인 '응씨배'에서 조훈현이

승패패승승으로 대반전 우승을 함


그리고 그 다음년도에서도 우승을 하고

한국을 넘어 세계최고 기사가 되었고

나아가 한국 자체가 바둑강국이 되어

먼 훗날 응씨배에서 한국인 기사가 우승을 휩쓸게 됨


그렇게 10년이 넘게 정상의 자리를 지킨 조훈현

한 제자를 받게되는데

그게 바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바둑기사

이창호임 (현대 바둑 한정 비빌자가 없음)


이창호와 조훈현은

단순한 스승과 제자 관계가 아니였음

조훈현의 집에서 이창호가 숙식을 같이하는

사실상의 양아버지였음.


11세의 나이에 프로데뷔를 한 이창호는

조훈현 인생에 단 두명 있었던

천재 였다고 함


자신의 사형인 오청원과 자신의 제자 이창호

이렇게 애지중지 키운 이창호는 청출어람을 시작함.

왼쪽이 당대 최고였던 조훈현

오른쪽이 그의 제자 이창호 15세


무려 최고였던 자신의 스승을 3대떡으로 이기며

조훈현이 갖고있던 타이틀을 하나하나 빼앗기 시작하고

조훈현이 이창호에게 압도당하기 시작하자

이창호와 조훈현은 양아들처럼 같이 살았기 때문에

차안에서 이창호와 조훈현 사이의 공기는

정말 적막했다고 함.


최고 전성기의 자신을 끌어내린 꼬마가

자신의 양아들이나 다름없는

이창호였기 때문에 스승으로써의 뿌듯함과

패배감과 섭섭함에 만감이 교차했다고 함.


일본과 중국의 정점이었던

조치훈 린하이펑 기사들과도

세계무대에서 만났지만

모두 이창호가 3대떡으로 발라버렸음.


당시 전성기의 승률이 90퍼센트에 육박할만큼

적수가 없었고

이 미친 사람은 그 기량을 무려 20년간 유지함


결국엔 조훈현을 무관으로 만들고

자신은 13관왕을 차지하며 완전한 세대교체를 이뤄버림


이 당시 승률이 아닌

출전한 대회의 우승 확률이 80퍼센트를 넘었음


훗날 이창호가 늙고 전성기가 지나

이세돌, 쿵제와 같은 다음 시대의 주역들이 등장 하기 전까지

무려 15년간 단 한차례도

세계랭킹 1위를 놓치지 않았음.



요약.


1940년대부터 1970년대의 정점 오청원


1970년대부터 1990년대의 정점 조훈현


1990년대부터 2000년대의 정점 이창호


이 셋은 전부 영화같은 사제관계로


얽혀있다.




+)여담으로


이 미쳐버린  조훈현 이창호를 딱한번 꺾고 우승한 무려 '여자' 바둑기사


루이나이웨이가 오청원의 제자임

ㅋㅋㅋㅋㅋㅋㅋㅋ

지구촌갤러리 강남대성수호자김구암님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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