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성인으로 불리는 베토벤 관련 썰

베토벤의 할아버지는 실력을 인정 받은 궁정음악가(카펠마이스터) 였음

베토벤의 아버지 역시 성악가 였지만 실력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다고 함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기에 열등감의 해소 방법으로

아들을 모자르트 처럼 만들고 싶어 했었다라는 시각이 존재함

베토벤은 아버지에게 아동학대를 당하고 지하실 감금 등등 여러 썰들이 존재 하지만

그 당시 훈육법 자체가 그냥 미개 했던거 였기 때문에 그냥 보편적 교육을 받은 거라고 함


그와 상관없이 베토벤은 아버지를 매우 싫어했는데

알콜 중독에 돈 달라고 맨날 X랄 했어서 그랬다고 함


베토벤의 편지 같은걸 보면 아버지의 대한 내용은 욕으로 가득했는데

반면 어머니에 대한 글은 정말 애틋한 마음으로 적혀있다고 한다

베토벤이 아버지를 나쁘게 취급했어도 자식 가르치는데는 지극정성이었고

본인 실력으로는 커버가 안되자 베토벤을 동료 음악가 였던 네페에게 가르치게 했는데

이때 악보출판 하고 수록곡들중 후원자들에게 헌정하면서 아첨하는 기술 가르쳐 주는 등

앞날을 닦아 줬고 베토벤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고함


tmi로 네페는 급진 프리메이슨이었던 일루미나티 였고 

자기 밑에 후계자로 끌어 들이고 싶어서 그러한 의도가 있었을거라는 시각이 있음

하이든에게도 짤막하게 배웠음

모자르트와 만났다는 일화가 존재 하고 서로의 존재를 인지 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명확한 것은 없음 베토벤이 모자르트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둘의 스타일은 완전히 달라서

그 후계들이 훔멜파 vs 체르니파 구도를 만들어 냈음

이는 나중에 쇼팽파 vs 리스트파가 됨


아무튼 베토벤의 모자르트의 대한 공식적인 평가는

잘게 썰어놓은 음악 같고 자기 취향은 아니라고 했음

위에 언급된것 처럼 체르니는 베토벤 제자임

후원자 였던 리히노프스키 공작은 베토벤을 매우 아껴서 귀족과 같이 지낼수 있는

본인집의 2층을 내줬고 거의 양아들 처럼 대했음


하지만 간섭이 시작 되자 베토벤은 그걸 못참고 집을 나가 버림

후원을 받고 싶어서 자기가 들어간 집이었지만 자존심을 세웠던 일화이고


후원자들이 연주를 원할때도 오늘은 기분 별로라고 안치는 등 정조역전 세계 구축함

이는 리히노프스키 뿐만 아니라 후원 하던 귀족들 한테 죄다 저지랄한거였어서

작곡할때도 내방 얼씬도 하지말라고 해서 방 닫혀있으면

귀족들이 오히려 안달나서 귀를 대고 몰래 엿듣는 수준 이었다고 한다

베토벤이 살았던 시대는 신흥 귀족, 브루주아들이 막 생겨나던 시기였고

신흥 귀족들은 왕족, 원래 있던 봉건 귀족 삶을 닮고 싶어 했음 


자기 집에서 베토벤 같은 음악가 한번 불러오면 오 저 집안 Xㅅㅌㅊ 이런 소리가 나왔고

그덕에 베토벤은 자기 선배 작곡가들이 귀족의 노예처럼 살던 것들과 다르게

지 X대로 자기 음악성을 살리는 곡들을 작곡하면서도 악보도 파니까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크게 겪지 않는 프리랜서로 활동 할수 있었음 

숫자는 싫어 했는데 돈 계산은 귀신 이었다고함

베토벤은 귀족의 요구로 이루어진 즉흥 연주를 매우 싫어했지만 매우 잘 했다고 하고

귀족 주선 배틀에서 단 한번도 진적이 없다고 함

자신의 연주에 취하면 한시간 이상씩 즉흥 연주를 했었다고함

엘리제를 위하여는 사실 테레제를 위하여인데

글씨가 워낙 악필이라 못알아봐서 엘리제가 되었다고한다

독거노인 이미지와 다르게 베토벤은 많은 여자들을 만났는데

대부분 피아노 제자로 만나게 된 사이 였음


별의별 경우가 다 있는데 나이차이가 엄청 나거나 한 집안에 있던 제자,

제자의 자매, 제자의 사촌, 제자 엄마등 이랑 사귀게 된 경우 부터

사생팬 같은 미친X까지 만났으며 청혼했다가 까이기도 했음


40 중반 이후부터는 결혼은 포기하고 조카의 친권을 획득을 하는데 최선을 다함

연애를 포기했기에 꾸미지 않아서 거렁뱅이 처럼 다녔다고 함

3번 교향곡 '영웅'의 원래 제목은 '보나파르트(나폴레옹)' 이었음


베토벤은 신분이 있는 사회를 X같이 생각했고

나폴레옹이 짱먹으면 그런게 없는 세상이 올거라 생각했는데


나폴레옹이 황제 등극해버리는거 보고

X같은 새끼라 생각하며 어쩔수 없이 영웅으로 바꿈

귓병이 있던것을 숨긴 상태로 지휘를 한적이 있는데 엉망진창이었고

그만해라 라는 쪽지를 받고 그만 둔 일화가 있음 


귓병이 가속화가 될때쯤 작곡한게 2번 교향곡이고

3번부터는 작곡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본인이 남긴 기록이 있음

프랑스 혁명에 감명을 받았던 베토벤은

독재에 항거하는 민중의 자유주의 정신을 담은 오페라를 썼고 검열 당했음

베토벤은 괴테를 상당히 존경했다고함 

그의 책을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읽었다고하고 괴테의 작품 속 곡을 의뢰 받았는데

돈에 귀신이던 인간이 존경의 의미로 무료로 써준다고 했음

이는 베토벤이 현학적인 명성에 민감 했고

학교과정을 정상적으로 못받은 부분에 있어서 콤플렉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함


괴테는 젊은 시절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같은

굉장히 그 시대에 급진적인 소설을 적었는데 나이먹고나서는

형식을 더 중요시하는 인간이 되어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 되었고 

귀족에게 철저히 예의를 갖추는 인간 이었음


일례로 위의 짤과 같이 베토벤이랑 휴양지에서 마주쳤는데

괴테는 왕족이 지나갈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베토벤은 쌩깠다고함


이를보고 괴테는 베토벤을 건방지다고 생각했고

인간적인 면모,음악적인 면모 둘다 평가가 안 좋았다고함

이에 대한 이유로 괴테는 색채론이라는 책을 쓸정도로 시각에 매우 민감했던 사람인데

청각적인 부분에선 매우 약해서 보수주의적이던 자신의 음악가 친구에게

베토벤에 대해 물어보니까 아주 쓰레기 같은놈이라고 했고

그 의견을 전적으로 받아 들였을 확률이 있다고 한다


아이러니한건 괴테는 왕족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으나

베토벤은 왕족이나 귀족을 X으로 봤어도 격 없이 지냈음

이런 부분이 괴테의 질투심을 유발했다는 설도 있음

2차대전당시 연합군이었던 미군과 영국군 사이에서

전범국의 작곡가가 만든 운명 교향곡이 모스부호로 사용되었다고함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은 문화유산에 등재 되었으며

바그너는 교향곡이라는 장르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기점으로 끝났다라는 평을 내렸음




지구촌갤러리 ㅇㅇ님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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