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타고 홋카이도:DAY 1] 도쿄-아오모리, 후쿠시마를 지날 땐 마스크를 썼지만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15시간 36분. 도쿄도 히가시무라야마역에서 아오모리현 아오모리역까지 739km를 재래선으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새벽 5시 13분 열차를 타면 저녁 8시 49분에야 도착하는, 총 13회의 환승을 거쳐야 하는 구간. 한 달만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배낭보다도 무거운 건 부담감이었다. 도쿄에서 아오모리로 이어지는 토호쿠혼센을 지나기 위해서는 후쿠시마역에서의 정차를 피할 수 없다. 3년이 지났지만 그 누가 마음을 놓을 수 있을까. 피해갈 방법은 딱히 없었다. 어쨌거나 열차는 북쪽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갔다. 사이타마현의 중심 역인 오오미야역에서 토호쿠혼센으로 갈아타고 교자로 유명한 우츠노미야를 지나 오전 8시반 환승역인 쿠로이소(黒磯)역에 내렸다. 다음 열차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었다. 플랫폼 위 흡연소를 찾아갔다. "이런 곳에 경마장이 있네..."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어쩐지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게요. 경마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대학시절엔 자주 갔지. 벌써 20년은 지났어. 여행 중인가봐?" "네. 홋카이도에 가려고요." "좋구만. 얼마 있으면 후쿠시마네. 좀 더 지나면 아오모리를 지나 하코다테로 이어지겠지. 실은 나도 젊을 때 기차로 홋카이도에 간 적이 있어. 그 때 탈선사고가 나서 엄청 곤란했었지. 열차도 배도 끊겨서 며칠을 아오모리에서 묵었어. 그러다 곤란해진 캐나다인을 만나 도와주기도 하고.. 여행이란게 왜, 이런저런 일이 생기잖아." "하하. 이번엔 별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요." "후쿠시마... 응. 나도 도쿄에서 대학을 다녔어. 아다치구에 살았지. 대학 선배 고향이 후쿠시마였어.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가업을 이어 받았어. 샹송을 근사하게 불렀지. 실은 그 선배를 내가 좀 좋아했어." "만나러 가시는 길인가요?" "지진 때 죽었어. 참 멋진 사람이었는데." "......" "별 얘기를 다 해버렸군. 아. 화물열차가 지나가는구만. 흔치않게 컨테이너가 기네. 하긴 이제 가을인가. 이맘때면 감자를 잔뜩 실어 나르지. 그러고보니 슬슬 발차 시간이네. 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면. 여행 잘 하고. 참, 경마는 한 번쯤 꼭 가 보라고. 꽤 재미있다니깐." 열차로 돌아와 여행배낭을 뒤졌다. 1회용 마스크를 꺼내 썼다. 이 얄팍한 종이 한 장이 과연 무슨 효과가 있을까. 팔랑이는 종이 한 장. 딱 그 만큼의 위안마저도 간절하게 느껴졌다. 열차에 오르는 승객들을 보니 과연 적지 않은 수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후쿠시마가 가까워지며 뭔가를 사먹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도쿄에서 챙겨 온 과자를 먹었다. 열차는 마침내 후쿠시마역에 닿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일상적이었다. 3년 전 TV에서 본 참혹한 광경이 마치 꿈이었던 양. 지진이 할퀴고 간 흔적은, 적어도 선로가 지나가는 길 주변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하늘은 너무도 넓고 파랗게 펼쳐져 있어서 오히려 가슴이 아팠다. 당신들은 얼마나 아팠을까. 지금도 여전할 보이지 않는 상처에 얼마나 괴로울까. 타인의 불행을 조롱하는 당신은 얼마나 작은가. 센다이를 지나 오후 1시 반. 고코타역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열차 2량짜리 조그만 완만(ワンマン, '원맨'의 일본식 발음)으로 갈아 탄다. 고코타와 이치노세키역을 왔다갔다 연결하는 자그마한 연락차량이다. 열차에 올라 깊은 잠에 빠졌다. 긴장이 풀리니 전날 제대로 잠을 못 잔 피로가 몰려왔다. 사람들이 열차에서 내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눈을 비비고 차창 밖을 보니 출발지인 고코타역이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반이 지나 있었다.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뻔했다. 이치노세키까지 갔다가 잠든 채 출발지로 다시 돌아온 거였다. 하하. 웃는 수 밖에 없었다. 도착이 좀 더 늦어질 뿐이었다. 오후 6시. 모리오카역. 토호쿠혼센의 종착역에 닿았다. 여기서부터는 사철인 IGR이와테 은하철도를 타야 한다. 세상에. 열차 이름이 은하철도라니. 기대에 한껏 부풀었지만 정작 눈에 들어온 열차의 모습은 평범하기 그지 없는 완만카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늘의 종착지인 아오모리역에 도착한 것은 결국 예정 시간을 2시간 가량 넘긴 10시 12분이 되어서였다. 역에서 나오니 찬 바람이 몸을 감쌌다. 실감했다. 가을이구나. 북쪽이구나. 편의점에서 산 오뎅을 호텔에서 먹으며 몸을 데웠다. 내일은 드디어 홋카이도다. 다자이 오사무가 사랑하고 미워한 쓰가루해협을 지날 기대감에 좀처럼 잠을 이루질 못했다.

From Tokyo to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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