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르면서 / 곽구비
당신과의 연애는 눈물맛이 컸지만
산행은 아직까지 짜릿한 맛이 이어졌어요
산골짝 능선마다 그 산들이
숨겨놓은 모습들이 당신을 만날 때보다
지루함이란 게 도무지 없거든요
젊어서 팔딱거리며 꼭대기는 내가먼저
당도하고자 객기를 부렸다면
몇 번씩 오르던 그 길에서 눈 못 마주치던
작은 꽃들과 해찰을 부려가며 천천히 가는
지금의 트레킹도 산행이거든요
사실 비밀이지만 나이에 육체가 밀려나
꼭대기는 이제 엄두를 못 내요
당신의 괴팍한 성질이 나랑 비슷해 같이
팔딱거리며 싸움밖에 더했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남이 되었던 연애랑 산은 달라
나는 여전히 산엘 다녀요
한때 연애는 손에 쥔 막대 사탕처럼
금새 녹으면 사라져
뒷맛이 씁쓸한 그 연애를 내려 놓았지만
산은 끊임없이 다닐 생각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