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만의 호투, 야구계에 던진 메시지

야구에서 어느 포지션이든 힘들지 않은 포지션은 단 한 곳도 없다. 수비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지명타자를 제외하곤 전 포지션의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와 수비시간동안 본인의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안방을 지키면서 무거운 장비를 차는 포수도, 신속한 움직임과 포구 능력, 송구 능력 등 종합적인 능력이 요구되는 내야수와 외야수도 매 순간이 긴장 그 자체이다. ​ 그러나 우리는 많은 포지션, 선수들 중에서도 묵묵히 등판 지시를 언제나 기다리고 팀이 위기 상황을 맞이했을 때 바로 출격하는 중간계투의 가치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경향이 적잖다.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각 팀에서는 애지중지하고 FA 협상을 할 때도 신중하게 협상을 진행한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기 위해서 며칠의 시간을 쏟아붓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다른 선수들의 활약도 있었겠지만 중간계투, 특히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안지만의 역투는 메달 색깔을 가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7회말 무사 1, 3루의 위기 속에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삼진과 뜬공으로 세 개의 아웃카운트를 여유롭게 잡아내는 그런 여유, 아시안게임 2연패를 향한 시발점이었을지도 모른다. ​ 선발투수가 잘 던지는 날이면 계투진이 던질 수 있는 이닝은 많아봤자 평균적으로 2이닝에서 3이닝에 불과하다. 선발이 강한 팀은 계투진이 약해도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 역시 이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선발진의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게 현대 야구이고 중간에서 버텨주는 투수, 이른바 허리의 힘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 대표적으로 2000년대 후반 김경문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두산만 봐도 그랬다. K-I-L-L 라인을 구축, 고창성과 임태훈, 이용찬과 이재우 이 네 명의 투수가 있는 경기 후반은 상대팀에겐 지옥과도 같았다. 개개인에게도 2009년은 커리어하이의 시즌이었던지라 발휘되는 시너지 효과는 상당했다. 비록 마땅한 선발투수가 없어 한계를 맞이했지만 많은 팀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 사실 두산보다도 더 먼저 불펜 야구를 지향했던 팀이 있다. 바로 2007년 변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SK이다. '야신' 김성근 감독 체제 아래에서 리그를 호령하던 SK의 벌떼 마운드도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이기는 야구를 위해 계투진의 힘을 그 어느 감독보다 중요시했다. 베테랑 조웅천, 풋풋한 좌완 정우람 등은 물론이고 든든한 마무리 정대현이 버텼기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팀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었다. 이를 기점으로 SK의 전성시대는 본격적인 서막을 열었고 삼성과의 새로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데에 이르렀다. ​ 2005년 우승 이후 이렇다 할 성과가 없던 삼성도 중간계투, 필승조에 대해 꽤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초보감독이었던 류중일 감독에게 첫 해부터 순항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계투진의 역할이 큰 몫을 했다. 안지만이라든지 스윙맨이 가능한 차우찬, 원포인트 권혁, 롱릴리프 정현욱, 여기에 '아시아의 끝판왕' 오승환은 수술과 재활을 거쳐 더 진화된 돌직구를 뿌려 팀을 6년 만에 정상으로 이끌었다. ​ 이듬해에는 심창민까지 합류하면서 마운드가 더욱 두터워졌다. SK의 김성근 감독이 떠나면서 전반적으로 삼성보다 전력이 약해졌고 박희수를 비롯한 젊은 투수들 발굴에는 성공했지만 시즌 결과에서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다. 반면 삼성은 전년도보다 여유가 생겨 정규시즌 2연패를 일찌감치 확정짓고 한국시리즈에서도 시리즈 전적 4-2로 SK를 꺾어 통합 2연패를 달성했다. ​ 이러한 불펜 야구를 벤치마킹하는 팀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다. 11년 만에 가을야구의 맛을 느낀 2013년 LG도 강한 불펜을 빼곤 이야기할 수 없다. FA로 영입한 정현욱이 그렇게 인상적인 활약은 없었지만 등판 횟수가 적진 않았고 기존의 이상열, 이동현, 그리고 마무리 봉중근이 뭉쳐 기적을 일궈냈다. 올시즌 그들은 강한 불펜의 힘을 어깨에 얹고 가을야구 도전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 ​ 다시 아시안게임으로 돌아가보자. 대만과의 결승전을 우리 대표팀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7회까지 끌려가야 했다. 특히 7회말에는 예선 2차전의 호투를 이어가기 위해 등판한 양현종이 연속 안타를 허용하면서 무사 1, 3루에 주자를 남겨놓고 바통을 넘겼다. 예상치 못한 부진투에 불펜에서 몸을 풀던 안지만이 급하게 벤치의 명령에 따라 위기 상황에서의 등판을 하기 위해 마운드로 올라왔다. ​ 소속팀 삼성에서도 빼어난 투구로 올시즌 마무리 임창용 앞에서 우완 셋업맨의 역할을 충실히 했는데 이 날도 진가가 드러났다. 첫 상대 타자인 주리런을 4구 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더니 8번 타자 린쿤셩을 6구째 승부 끝에 중견수 뜬공, 9번 타자 판즈팡은 단 세 개의 공으로 좌익수 뜬공을 잡아내 주자의 이동 한 번 없이 이닝이 마무리됐다. 당연히 관중석에서는 박수갈채가 쏟아질 수 밖에 없었다. ​ 안지만의 호투에 힘을 낸 우리 타자들은 민병헌과 김현수의 안타로 시작한 찬스를 4득점까지 연결시키면서 세 점 차 리드를 잡아갔다. 단순하게 승부가 뒤집어졌다기보다도 분위기 자체가 한국 쪽으로 넘어왔다고 해야 할까. 추가 득점은 없었지만 분위기 싸움에서 승기를 잡은 우리 대표팀이 경기 후반 추격을 허용하지 않고 아웃카운트를 차근차근 쌓아가면서 그토록 원했던 아시안게임 2연패 고지를 밟았다. ​ 7회말 무사 1, 3루까지만 해도 우리로선 경기에서 패배하는 시나리오까지 생각을 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무사였기에 희생플라이로 아웃카운트를 하나만 잡아도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풀어갈 수 있었고 무실점으로 이닝을 쉽게 끝낼 수 있을지에 대해선 많은 이들이 의문부호를 가득 품었다. 결론적으로 그 의문부호를 느낌표로 바꿔냈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안타 한 개 못지 않은 소중한 값어치의 피칭을 팬들에게 선사했다. ​ 다른 선수들보다도 더 기뻐했고 금메달을 즐겼던 선수가 안지만이다. 전혀 떨림이나 부담이 없었고 마운드 위에선 승부사다운 냉철함을 보여주기와는 다르게 세레머니를 즐기는 내내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삼성에서도 종종 병뚜껑을 가지고 장난치는 등 유쾌했던 그의 성격은 국제대회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이런 강한 멘탈이 안지만을, 대표팀의 금메달을 이끈 원동력이기도 하다. ​ 다른 때보다는 안지만의 활약이 언론이나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황재균의 2타점 적시타에 조금은 묻힌 느낌도 없잖아 있다. 분위기 상으로 적시타의 역할은 굉장히 컸지만 역전이 되기까지 그 과정에서의 안지만의 비중을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다. 무사 1, 3루에서 등판해 단 한 점도 내주지 않는 그런 자신감을 보여줄 수 있는 투수가 과연 국내에 얼마나 있을까 싶다. ​ 우리가 잘 모르고 넘어갈 수 있었던 계투진의 노고를 아시안게임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면 이것이 계속해서 시즌으로 이어지면서 셋업맨의 역할을 되새겨봐야 한다. 공을 몇 개 던지지 않는데도 왜 30억에 가까운, 이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지 가치에 대해 생각을 했으면 한다. 팬들뿐만 아니라 야구계 전체의 문제이다. ​ 너무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비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찬스에서의 한방을 치는 타자가 위기 상황을 막은 투수보다 주목을 더 많이 받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28경기, 한 시즌을 그렇게 매 순간 대기하면서 팀의 부름에 움직여야 하는 자리인 중간계투, 셋업맨과 롱릴리프 등 세부적인 보직을 통틀어 중간계투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하는 시점이다. ​ 안지만의 호투가 금메달만 가져온 게 아니다. 야구계에 던진 뼈있는 메시지, 힙합맨의 강렬했던 투구에 박수를 보낸다. ​ [글 = 뚝심의 The Time(blog.naver.com/dbwnstkd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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