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소년가장, '아기곰' 두산 정수빈

시즌 도중에 타격폼을 교정하는 일은 흔치 않다. 웬만한 타자들은 본인의 감각대로 시즌을 마무리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지만 올스타 브레이크가 지난 이후에 타격폼 수정으로 대박을 맞이한 선수가 등장했다. 9번 타순에서 이렇다 할 활약없이 낮은 타율로 부진 아닌 부진을 겪어야 했던 두산 정수빈이 그 주인공이다. ​ 두산 송일수 감독은 올시즌 스프링캠프부터 '리드오프는 민병헌, 정수빈은 9번, 오재원은 2번'이라고 단정지으면서도 정수빈에게는 '강한 9번 타자'라는 미션을 던졌다. 타순은 9번이지만 실질적인 역할은 리드오프와 같았으면 하는 게 송 감독의 바람이었다. 실제로 발도 빠르지만 무엇보다도 기습번트 등의 작전수행능력이 다른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뛰어난 편이다. ​ 4월은 그럭저럭 잘 버텼지만 5월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한계가 드러났고 타율이 2할7푼대 초반까지 추락하면서 공격의 흐름을 이어가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정수빈의 부진에서 시작된 좋지 않은 기류는 타선 전체로 퍼지면서 6월부터의 타선은 완전히 침묵 그 자체였다. 해결사는 커녕 팀 출루도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 가장 시급했던 정수빈의 부진을 풀기 위해 타순 조정도 있었고 박건우를 대신 투입하기도 했지만 시원치 않았다. 그랬던 정수빈에게 반등의 기회가 찾아온 건 8월 중순, 이제는 본인도 변화해야 할 시기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고 과감하게 타격폼을 교정한다. 원래 본인의 타격폼에서 넥센 서건창을 벤치마킹한 타격폼이었다. 약간 몸이 움츠려드는 폼이라고 해야 할까. ​ 올시즌 200안타까지 바라보고 있는 서건창의 타격감이 워낙 좋다보니 비슷한 유형의 타자였던 정수빈으로선 욕심이 난 모양이다. 항상 잘 치는 타자들의 비디오를 보고 연구를 한 끝에 가장 최적화된 타자를 서건창으로 꼽았고 경기에서 타격폼을 보이기 전 계속해서 연습을 거듭했다. 쉽진 않았지만 반복하다보니 몸이 저절로 익혔다는 게 정수빈의 이야기이다. ​ 놀랍게도 타격폼 교정 이후 정수빈의 타격감은 거짓말처럼 살아났다. 7월 16경기 타율 .269 52타수 14안타 2홈런 3타점을 기록했던 그가 8월 21경기 타율 .324 68타수 22안타 1홈런 12타점, 특히 월간 타점이 두 자릿수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경기 수는 8월이 오히려 5경기 더 많았음에도 타율에서 꽤 차이를 보였다. ​ 반짝 끝나지 않고 이 효과는 9월, 그리고 현재까지도 진행중이다. 9월 단 8경기를 소화하긴 했지만 37타수 16안타 1홈런 3타점을 기록했고 타율은 무려 4할3푼2리(.432), 그야말로 대단한 기록이다. 6일 삼성전까지 10월 6경기에선 25타수 9안타 5타점 타율 .360, 아시안게임 브레이크 공백기에도 감각을 유지한 덕분에 시즌 타율에서도 3할대를 마크할 수 있다. ​ 9월 이후로만 보면 14경기 타율 .403, 시즌 초중반 괴롭혔던 부진에서 탈출할 수 있는 이유이자 자신감을 심어준 계기이다. 스윙을 돌릴 때도 편안하고 부담감을 한결 덜어냈다는 게 팬들이 봐도 보인다. 마음고생이 그 누구보다 심했고 선발 우익수라는 자리가 부담스러웠지만 스스로 이겨낸 정수빈이 자랑스러울 따름이다. 어린 선수인데도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는다. ​ 6일 삼성전은 정수빈의 독무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타수 3안타를 때리면서 팀 내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선보이는가 하면 마지막 타석이었던 11회초에는 임창용과 나바로 두 명의 선수를 모두 흔들어놓았다. 정수빈이 쳐낸 타구가 1루수 박해민의 글러브를 살짝 스치고 외야로 빠져나가더니 루 상에 있던 세 명의 주자가 모두 홈을 밟아 주자 일소 3루타를 기록했다. ​ 그런데 3루타도 잠시, 팬들과 삼성 내야진 심지어는 덕아웃에서 지켜보던 동료들 모두 깜짝 놀랐다. 3루 베이스를 밟은 정수빈이 중계플레이를 하던 삼성 수비진을 보고 홈으로 쇄도해 기록상으로는 3루타였지만 그라운드홈런이나 다름없었다. 세 점으로 끝날 상황을 재치로 한 점 더 뽑아 임창용을 마운드에서 끌어내렸고 연장 승부에서 짜릿한 승리의 주인공으로 올라섰다. ​ 3타점도 중요하지만 정수빈의 타격능력과 재치를 모두 볼 수 있는 장면이라 의미가 크다. 임창용의 변화구가 치기 어려운 몸쪽 낮은 코스로 들어왔음에도 의도적으로 잡아당겨 1루 라인선상 쪽으로 타구를 보냈고 박해민이 미세한 차이로 포구에 실패해 타구를 멀리 보낼 수 있었다. 타구의 속도도 느려 펜스플레이를 하던 박한이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 3루까지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거리이지만 홈을 파고들 생각을 과연 그 누가 할 수 있을까. 정수빈의 재치가 없었다면 잔루만 하나 남기고 세 점 차에서 11회말을 들어갔다. 엄밀히 말하자면 세 점 차와 네 점 차는 선수들이 느끼는 체감 자체가 다르다. 세 점 차라면 주자 한 명이라도 내보내게 될 경우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네 점 차라면 주자가 출루를 하더라도 심적인 부담감은 덜 하다. ​ 다른 각도에서 이 상황을 이야기하자면 삼성 내야진이 너무 느슨하게 대처했다고 말할 순 있다. 주자 세 명이 모두 들어와 야수나 투수의 허탈감이 가득했고 공을 전달받은 나바로도 끝까지 자기 몫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발이 빠르고 언제 어디서든지 뛸 수 있는 주자, 정수빈이 아니었다면 삼성은 웃지 못할, 두산은 미소짓는 장면이 연출될 수 있었을까. ​ 두산 경기가 아니더라도 허구연 해설위원은 정수빈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정수빈에겐 '허구연의 남자'라는 타이틀이 붙여졌을 정도로 애정이 각별하다. '으린 슨슈', '증슈빈'이라는 키워드도 허 위원과 정수빈 두 명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 그 많은 선수들 중에서도 야구계에서 오랫동안 몸을 담은 허 위원이 정수빈 예찬론을 펼치는 이유가 무엇일까. ​ 9번에서 2번 타순으로 자리를 옮겼던 정수빈은 최근엔 민병헌을 3번으로 끌어내리는 대신 리드오프 자리를 맡았다. 선발 리드오프 자리를 꿰차기가 그리 녹록치 않은데 경쟁을 뚫어냈고 믿음에 대한 보답도 확실하다. 최근 18경기 연속안타를 기록하고 있으며 타율은 어중간한 3할 초반에서 3할6리(.306)까지 상승했다. ​ 정수빈은 이 날 시즌 122안타를 기록, 본인이 가지고 있던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2011년 118개)을 가볍게 갈아치웠고 남은 잔여경기에서도 안타 행진을 이어가려 한다. 지금의 페이스라면 연속 안타 행진도 중요하겠지만 130안타를 돌파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100경기를 이상한 시즌 중 3할 타율 기록도 유력한 상황이다.(2010년 타율 .322, 76경기 소화) ​ 현재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게 흠으로 남아있지만 아직까지 어떻게 해결할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아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올시즌이 끝나고 입대를 준비한다는 설도 나오지만 정해진 바는 없다. 시즌이 끝난 후 구단 면담을 통해 거취를 결정할 예정이다. ​ 이젠 확실한 신뢰를 주는 '아기곰', 새로운 베어스의 소년가장 정수빈의 진화가 기대된다. ​ [글 = 뚝심의 The Time(blog.naver.com/dbwnstkd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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