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오카현의 흥미로운 이야기 (feat.녹차)

전근대 일본의 고속도로, 도카이도는

1601년 마련된

에도와 간사이 지방을 잇는 약 500km의 길

이 길을 따라 53개의 역참(휴게소)가 세워졌고

수도를 향한 행렬이 통하며

역참 근처로 상업이 크게 발달하게 되는데

현재의 도카이도 신칸센과 1번 국도도

거의 이 길과 비슷한 경로를 따라간다


참근교대(参勤交代)를 위해 가는 다이묘 행렬이

도카이도를 따라가다보면

여러 고개들도 난관이지만 가장 큰 장애물이 가로막는데..



(참근교대 : 각 번의 다이묘를 정기적으로 에도에

볼모로 잡아두고 다이묘가 없을 때는

아내나 자식 등 친족을 에도에 보내 견제하는 제도,

에도까지 가는데도 돈이 많이 들어서 재정적 부담도 듦)

바로 시즈오카현 시마다시의 오오이 강이다

이 강을 기준으로 당시 지명 상

도토미국과 스루가국이 나뉘었다

미나미알프스에서 발원해 스루가 만으로 빠지는

이 강을 건너기 위해선 인부들을 이용해 도하해야했다


이 강을 사이에 두고

에도 방향으로는 시마다(島田)쥬쿠

쿄토 방향으로는 카나야(金谷)쥬쿠라는 역참이 있었다


이 강을 건너고 23개의 역참을 지나면

에도 니혼바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유동 인구가 많았지만 오오이 강에 다리가 생기진 않았고

천 명이 넘는 인부가 강을 건너는 일에 종사하고 있었고

이 산업이 막부에 바치는 세금도 쏠쏠했다


에도 시대 중기 이후에는 일반 여행객들의 수요도 늘어

서민들은 가마가 아닌 인부에게 목마를 타고 가기도 했다


오오이 강은 수심이 깊진 않지만 물살이 빨라

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가면 위험했다

강의 수심에 따라 도하 비용은 달라졌는데 (위험 수당)

강의 수심이 136cm가 넘으면 '가와도메'라는

도하 금지령이 떨어졌다


1년 중 50일 정도는 도하가 금지되었고

최장 28일 간 도하가 금지된 기록이 있다

오오이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카와카이쇼라는

티켓 오피스에서 티켓을 사야했다


1인 가마는 네명, 2인 가마는 여섯 명,

다이묘들이 쓰는 렌다이 가마는 스물네명의 인부가 필요했다

시마다의 인부들은 1번부터 10번까지의 쉼터에

모여 대기하며 얘기를 하곤 했다


인부들은 수요가 많아지자 힘들어져서

인부 개인이 하루 최대 3번 도하하게 제한을 두었다

오오이 강의 도하 제도는 메이지 정부 출범 후 3년 뒤인

1870년에 강에 배를 띄울 수 있게하며 인부들은

졸지에 다 실업자가 되었다

배로 강을 건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1879년엔 강에 목조 다리가 건설되는데,

이 다리가 바로 897m 길이의 '호라이바시'

기네스북에 등재된 가장 긴 목재 다리이다




한편

근대 일본에 처음 해군을 만든

카츠 카이슈는 1860년 서양을 돌아보고

일본의 차가 상품 가치를 갖겠구나 생각해

1869년 시즈오카 마키노하라 일대에

1,425ha의 녹차밭을 개간하게 명령한다


도하 산업을 잃은 시마다의 인부들도

1873년부터 이 녹차 산업에 뛰어들어

30ha의 녹차밭을 개간하며

지금의 시즈오카 일대는 녹차로 유명한 지역이 되었다.

일본여행-관동이외갤러리 비기뇽님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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