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비극은 공포와 잘 어울리지 않는가.
매서운 불행이 휩쓸고 간 자리의 폐허.
그런 흉흉함과.
나와 마주친 사람들이 겁에 질려 발버둥 치거나
소리 지르며 달아나는 그런 지옥을 상상한다.
가령
조금 지나친 불행을 걸쳤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영문도 모른 채.
두터운 불행 뒤에는
반드시 어떤 섬뜩함이 깃든다는 듯이.
아니 그것은 이미
한 몸이나 다름없다는 듯이.
어떤 비극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대체로 무서워서 자꾸만 눈을 돌린다.
일견 평온해 보일 만큼 고요한 집에
불도 켜지 않고 누워 있으면
내가 살았던 흔적 같은 것이
이미 사라지고 난 뒤 같다.
작고 오목한 집에 언젠가
흰쌀밥처럼 고슬고슬한 비극이 굴러와
정확하게 담긴다면
나는 지금 폐가를 지나 흉가라는 오명을 쓴
집 한 채의 전사(前史)에 놓여 있는 것이다.
어린애처럼 울면서 통화하는 여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다.
그의 울음을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한줄기 굉음이 들려오는 철공소로
고개를 돌린다.
철근을 자르는 사람 주위로
가루 되어 날리는 불을 하염없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