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를 읽다...
현재 출간된 14권의 김연수 소설책 중 내가 읽는 정말로 마지막권. 등단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차후 출간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모티프란다. 원제는 '세계로 가는 기차'였다고.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외 소설들이 80년대 학번들의 사회.정치적 환경이 녹아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 역시 그렇다는 얘기다. 그의 소설을 시대적 배경에 따라 두 축으로 나누자면 1900년대 중반과 후반으로 나뉜다. 일제 말기와 한국전쟁, 민주화 운동과 광주항쟁. 많은 소설들이 이 두축에서 전개되고 엮어진다. 먼 훗날, 그 시대를 담담히 다양한 시각으로 증언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소설이 될 듯하다.
p29 ".... 인간은 분열되어 있으며, 갖가지 가면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장 훌륭하다는 이성 역시 한 개가 아니며 수 많은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인간의 퍼스낼러티는 말 그대로 온갖 종류의 가면이 비치되어 있는 분장실일 뿐이에요. 이 사실을 인식하여야만이 가면을 직접적으로 가리킬 수 있는 것이죠.... 자신 역시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해요."
- 최민식의 논변. 이 소설의 중심사상이라 할 수 있을까? 작가는 제목에 대해 최민식의 말을 빌려 설명하는 듯.
p30 ".... 이 소설의 키 포인트는 인식이에요. 이 인식을 하고 자신의 가면을 가리키게 되는 순간, 그는 자신의 부모를 쏘았던 그 무자비한 가면들을 이 지상에서 삭제할 수 있는 윤리적 근거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 가면을 썼다는 인식, 그 가면이 타인의 그것과 같다는 인식. 그러부터 얻어지는 윤리적 근거...???
p31 ".... 사악한 것임에 틀림없는 집단 퍼스낼러티를 자의적으로 쓴 성원이라면 누구나 그 죄값을 치러야 합니다. 나는 그렇게 믿어요. ...."
-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무사유', 악의 평범성을 설명한 한나 아렌트의 말을 다른 방식으로 인용하는 듯.
p37 '일정한 객관적인 조건에 의해서 의식이 훼손당한 인간들을 연구하여 인류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일'
- 찬명이 말하는 '바이러스 연구소'의 정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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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바이러스 연구소 - 편지 1
2. 기관원은 모든 것을 관찰한다 - 변명 1
3. 허구를 반영하는 현실이론 - 편지 2
4. 알려지지 않은 제너럴 박 - 변명 2
5. 환상의 끝은 언제나 환멸이었다.
에필로그 - 좌담회
편지 1은 서원기의 혹평이다. 챕터 1에서 전개된 작가의 현학적 취향을 혹평하며 소설 쓰기를 그만하라고 한다. 작가 김연수의 자학적 소설 쓰기랄까? 소설을 쓰며 고민했던 부분들이 보인다. 독특한 소설 형식으로 인해서. 소설가 김연수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소설 쓰기를 고민하고 있다. 자신의 소설을 혹평하는 서원기로 화한 김연수, 소설 속에서 글을 쓰는 나, 김연수. 두 명의 김연수를 통해 그의 내면을 본다. 음... 토마스 만의 소설이 떠오르는 이유는 왤까? 토마스 만의 소설을 다시 읽아봐야 할 듯...
이 소설은 가스라이팅에 관한 이야기일까? 세계에 대해 의심을 하라는 것, 가면을 쓴 인간들, 세계를 움직이는 안 보이는 손, 그 손에 의한 인간의 좌절과 열패감, 거기서 비롯된 상처받은 자존, 허나 돌아보면 달리 보이는 것. 바이러스의 결함은 주변을 환기시킬 수 있을까?
허구와 현실이 공존하는, 작가는 이 결함을 통해 주변을 환기시키고자 한 듯하다. 등단작인 이 소설이 잘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소설이어서 다시 읽어야 알게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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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바이러스 연구소의 영문 번역가 최민식(투덜이)과 일문 번역가 송찬명(꺽다리, 삼천포), 연구소 직원 이영희, 지산스님이 소설가 이지산(<완전한 세계>의 작가), 무공스님, 카페 '파리의 유혹' 주인 로트렉, 백지수표를 건넨 누구도 정체를 알지 못하는 사내-기관의 전체기획과 과장 이형욱, 기관원 신고문, 친색협(친일파 색출 협회) 회장 김칠봉 노인, 거울을 건네준 도날드 덕 가면의 사람(작가는 <소설가의 일>에서 도날드 덕이 자기 자신이라는데), 주인 로트렉이 소재를 밝혔던 선배 이경옥, 카페 '파리의 유혹'을 '신세계'로 바꾸려는 새 주인 중년, 알려지지 않은 제너럴 박은 사실 청년북북서단 이갑진(남산 안가가 거처. 박정희가 모델인 모양), 시경 특별수사반 제2팀장 김종휘(이형욱 살해 사건으로 민식을 취조), 수사과장 주덕해, 특수반장 고덕근, 고교시절 이형욱과 탈선 행각을 벌인 서정달, 이형욱을 고시원에서 만난 가칭파 한국진('겨레의 얼을 백 배로 부풀리는 모임'의 대표, '99모임'을 이끄는 자), 전국 바닷물 마시기 협회 회장 권달진, 조직폭력배 우두머리 정덕신(민족주의 비밀결사 99모임에 의해 상해를 당함), 감사원 연구원 김영일, 기관 제2팀장 강성식, 보국일보 조희현 기자, 성북동 기관의 이부장, 대학교 철학 강사, 환상은 환멸이라는 대외협력반장 나독수(김종휘에게는 환상인 그것이 자신에겐 현실이란다), 일보의 신풍파 오부치 미치오, 신풍파 수석 연구원 하시모토 도시키, 신풍파의 우두머리 무라카미, 정세분석실장 신현민, 알려지지 않은 제너럴 박의 휘하 서삼탁, 기관 대언론 공작 특별분과 담당자 허삼기, 혜원 스님에 의해 거둬진 성암사 불목하니 일도 스님, 신의주 만세 사건의 주역이자 경성제대 예과 졸업생 청북 회장 신판만, 알려지지 않은 제너럴 박의 직속 상관으로 수완 좋은 허달진, 평북지방 갑부 강선식(알려지지 않은 제너랄 박이 머슴으로 있던 집 주인), 월남하여 10대 재벌이 된 송장그룹 총수 정주팔, 자신의 시 '불'을 시월평에 내려고 신문사를 찾은 시인 김영수, 성암사 주지 혜원 스님, '허구를 반영하는 현실이론'을 대표하는 부리부리 박사,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내, 지신이 사랑한 이한숙, '문인들이 나선다!'협회의 사무국장 김중혁(48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