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행성착륙(3)

탐사대원들이 모두 식당에 모이니 잔칫날 같았다. 배양실에는 세균들이 만들어 놓은 식량이 넘칠 정도도 많았다. 갓난아기 주먹만한 식사거리였지만 영양도 충분했고 뱃속에서는 포만감도 생겼다. 선구자는 먹거리를 죄다 싣고 올 수 없었다. 은하계 탐사라는 이전에 없었던 일을 하는데 식사는 골치거리였다. 우주탐사국에서는 수많은 제안 중 탐사대원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에너지로 바꾸는, 세균을 이용한 영양 배양을 선택했다. 탐사 기간이 제 아무리 길어도 먹거리를 제공하는 세균. 더군다나 대원들이 호흡할 산소를 내놓으니 금상첨화였다. 맛만 있다면 더할나위 없는 완벽한 식량이었다. 탐사대원들은 이 영양식을 먹을 때면 감미료를 뿌렸다. 정태는 가끔 소금만 뿌려 먹었다. 특별한 날이면 통조림 음식을 먹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드물었다. 배양 음식에 질린 아라나 정태가 투정을 부려야 김 중령은 선심 쓰듯 통조림을 열곤 했다. 통조림 쌀로 만든 밥과 통조림 햄, 통조림 된장찌개를 차렸다. 이런 진수성찬은 처음이었다. 김 중령은 거기에다 소주도 4팩이나 꺼냈다. 지금껏 먹지 못한 걸 한꺼번에 먹는 즐거움은 정말 각별했다. 정태는 지구가 아닌 곳에서 이렇게 소주를 마실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오로라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선구자에 실린 술부터 다 마셔버릴 거야.' 정태는 술 생각이 날 때면 오로라를 핑계대곤 했다. 살아났다는 마음에서 살랑대는 바람을 느끼며 빛살을 담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통조림을 꺼내 먹고 소주도 마셨다.아라가 홀로그램 카메라가 있는 수첩을 꺼내면서 한 마디씩 해보라고 했다. “내일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어!” 정태가 빈 술잔을 머리 위로 들며 말했다. 아라는 다른 이들 표정도 담기 시작했다.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김 중령, 창피하다며 손으로 카메라를 치우라는 정태,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는 장 대위, 그 새 우울해진 나 박사 모습이 들어왔다. “이 행성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이 정말 궁금하네요. 우린 이제 반환점에 왔다고 믿어요.” 나 박사가 한 말은 행성에 착륙한 뒤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뭐라 대답하지 않았다. ‘지구로 돌아가는 걸 확신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여긴 반환점이야. 정말 돌아갈 수 있을까? 그 사람 혼은 지구로 돌아갔을까?’ 나 박사 머릿속으로 을지원 대위가 들어왔다. “장 대위! 니콥 하나씩 어때?” 정태가 장 대위 어깨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정태와 장 대위는 니콥을 좋아했다. 지구에서는 차로 마셨지만 먹는 물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우주선에서는 언제부턴가 껌으로 만들어 씹기 시작했다. 우주 비행사들 특징으로 니콥 씹는 모습을 꼽을 정도였다. 두 사람은 선구자에서 깨어 있을 때면 하루에 열 개 넘게 씹었다. 정태가 지구를 떠나 은하 탐사에 나서기로 작정했을 때 니콥을 마음껏 씹거나 마셔도 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 박사는 니콥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둘이서만 씹을 건가? 나도 하나 줘.” 김 중령도 끼어들자 분위기는 금세 달라졌다. “여기서도 담배나 커피가 자란다면 우린 진짜 니콥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겠지. 아니, 아니지. 커피는 커피대로 마시고, 담배는 담배대로 따로 피면 돼. 20세기 사람들처럼 시거를 물고 폼도 잡는 거야. 하하하. 이거 생각만 해도 신나는데. 고 박사, 노아의 방주에 실어논 커피랑 담배는 무사하겠지?” “특별히 묘목으로 열 그루씩 실었잖아요. 잘 모셔 뒀으니 걱정마세요.” 아라가 생글거리며 대답했다. 그녀도 니콥을 좋아했다. 노아의 방주에는 온갖 식물 씨앗을 보관했다. 성미 급한 김 중령과 정태가 커피와 담배만큼은 생장을 멈춘 묘목 상태로 싣자고 했다. 우주탐사국도 허락했다. “하나 더 드릴까요?” 재철이 다른 이들에게 니콥을 하나씩 나눠주곤 정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은 니콥이 얼마나 돼?” “아주 많진 않습니다.” 정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수영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아라는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상상이라도 하는지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전 햇빛만으로 충분해요.” 장 대위도 한 마디 거들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난 바비큐. 고기를 못 먹은 지 너무 오래 됐어.” “저도 영양식 말고 다른 근사한 걸 먹고 싶어요.” 나 박사도 김 중령 말에 동의했다. 저마다 한 가지씩 소망을 말했다. 죽어야 하는 자리에서 밝히는 침울한 소망보다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말하는 소망은 제아무리 터무니없더래도 좋았다. 니콥 씹는 소리가 식당을 채웠다. 아라는 피곤했다. “아하~, 이제 쉬고 싶어요.” 나 박사가 하품하며 말했다. 다들 피곤하긴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무중력에 익숙했던 몸이 착륙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컸다. 게다가 몇 년 만에 술까지 마셨다. 행성에서 맞이한 첫날밤에 느낀 행복은 어느 무엇하고도 비교하기 힘들었다. 대원들은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강제 수면이 아닌 자연스런 잠 또한 얼마만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였다. ‘이런, 벌써 취한 거야?’ 정태는 비틀거리며 제 방으로 걸어갔다. (제1장 계속)

중고등학생용 수학 교재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틈틈이 라이영이란 이름으로 소설을 씁니다. 소설, 특히 과학소설(SF)에 관심 있습니다. 페이스북 그룹 "한글빛내기모임"에서 우리말글을 아끼는 이들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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