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성이 사실상 벙커인 이유

먼저 조선의 성벽을 보면


여기까지가 수원화성과 조선 정부의 공식 기록화인

동래부충절도에 나오는 조선 동래성 성벽임.

저런데서 대충 이렇게 싸웠겠지


이제 일본의 성벽을 보면

딱 보면 짐작이 가겠지만 엄청 차이나는 게 병사 방호임.

한국 성벽은 총안 놔두고 멍청하게 올라가서 쏘는 거 무시해도

애초에 엄폐가 제대로 안되는 것과 달리 일본 성벽은 그냥 벙커 그 자체임.


총안 빼고 싹다 벽으로 막은데다가 활 곡사 방어용 지붕까지 씌워놨지,

완전히 밀폐는 아니라 수류탄에 당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럼.

이건 사실 일본 성은 성벽이 없고 벙커 그 자체라 그럼.


뭔 개소리냐고?

이건 확실히 다른 나라의 성벽에 가까운 구조와 기능이지,

근데 혹시 일본 성벽은 왜 다른 나라의 전형적인 성들처림 수직벽을 안 쌓고

미묘하게 기울어진 벽을 세우는지 궁금했던 적 있음?


보다 초기의 일본 성채 구조를 보면 알 수 있을 거임.

시부시성임.

위의 1600년대 성과 달리 1336년 이전에 건설된 초기의 성인데,

보다시피 성벽이라 할만한 구조물이 따로 없고 능선을 따라서 여러채의 시설들이 늘어서 있음,


기본적으로 일본의 수많은 산지와 험준한 능선을 이용해서 건설되었지만

저런 기괴한 형상이 자연적으로 생기는 건 아니고, 산 능선을 깎아내서 만든거지.

즉 일본의 성벽은 산 그 자체임.

그리고 산성 건축가들이 평지에 성을 지으면서 기존 노하우를 그대로 응용하기 위해

쌓아올린 인공 산. 그게 일본 요새의 높고 경사진 석벽이고

굳이 석축이라는 용어로 방어용 수직벽인 성벽과 따로 부르는 이유임.


이런 난해한 구조가 발생한 이유로

일단 고립되어서 선진기술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거나 한 건 아니고

중국 기술 배워와서 지은 판축식 토성인 이토성도 있고

이토성은 지금은 폐허고 짤은 중국식 토성인 가욕관임.


백제 출신 망명 건축가가 지은 오오노 성도 있는데


여기는 능선 꼭대기에 수직벽을 한겹 쌓아 올린 전형적인 한국식 산성임.


이런 것들은 그냥 사장된거고 일본식의 복잡기괴한 성채설계가 발달한 이유로


1. 수는 적지만 개인 숙련도가 높고 현장에 익숙한 사무라이들이

최대한의 방어력을 뽑아낼 수 있는 구조라거나

2. 유교 군주국처럼 대량의 인력을 동원할 수 없을 때 소수의 숙련된 기술자가

건설할 수 있는 구조라거나

등등의 설명이 있는데


결론적으로 일본 특유의 경사진 벽인 토루나 석축은 수직벽보다 건설이 쉬운 대신

한겹 한겹의 방어력은 좀 애매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복잡기괴한 구조로 겹겹이 구축하고

마찬가지로 기괴한 각종 해자로 보강해놨기 때문에,


적 공세를 종심깊게 받아내다가 공세적 방어로 함락된 보루를 재탈환할 수 있는

소수정예 주둔군에게 유리했음.


만약 조선군이라면 일단 외벽 한겹 뚫린 시점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니

외벽 한겹을 최대한 높은 절대방어선으로 만들고 쓰레기라도 위

에서 돌 던지면 사람 죽일 수 있게 하는 편이 나았지,


일본은 그런 인력이 풍부한 사회였고, 고급인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산을 깎아낸 자연 능선이든, 아니면 대 다이묘들이 쌓아올린 바위 인공산이든

그 능선의 핵심부에 건축된 방어건물들이 중요했지,


거기서 그대로 이어진 구조물들이 일본 성 특유의 꼼꼼하고 거의 완전 밀폐된 엄폐벽과 보루임.


이 설계덕분에 요새는 창,칼,활,총으로 돌파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얻어걸린 거지만 대포로도 성벽 무너뜨리기가 거의 불가능하지,

성문 뒤에 미로 따라 성문이 몇겹으로 있어서 대포로 문 뚫기도 어렵고,

유럽 보방식 성채랑 비교해봐도 주둔군 엄폐 정도로는 월등히 앞섬,


근데 이 설계를 왜 일본에서만 했을까?

여기서 일본 성채의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나는데 바로

저런 정교한 요새화 구조물들도 대포맞으면 다 뚫린다는 거임.

그냥 건성 부실공사하던 조선은 둘째치고, 서로 대포랑 로켓 쏴재끼던

중국,인도,유럽 입장에서는 어차피 대포맞고 터질 구조물들에 저렇게 정성들일 동기가 없었던지,


하부구조가 워낙에 두툼하고 대포 막기 유리한 방향으로 어쩌다 진화한 바람에,

전근대 동북아에서 이것들을 제압할 만큼의 대포를 동원한 적은 거의 없었고

19세기에 암스트롱포로 구마모토성 조질 때도 상부구조물 외에는 흠집도 안 나긴 했지만,

그 말은 즉 상부구조물은 다 타버렸단 거고,


울산성 전투 때도 총통과 홍이포를 잔뜩 들고 와서 조져대니깐

상부구조물이 무력호되면서 돌파되기도 했음.


이렇게 된 이유는 일본이 대포나 투석기의 경험 없이 처음부터 총에서

화약무기 운용을 시작해서 기형적으로 총칼창활 전투에 요새를 최적화한거고,

점차 대포에 가까운 대조총이 나오고 대포 수입이나 노획도 간간히 했기 때문에

에도막부에 의한 긴 평화가 없었다면 저런 구조물들은 아마 점점 간소화되었을 거임.


그리고 이 영향은 수세기 후에도 이어지는데

노르망디 독일 해안포랑 이오지마 수리바치 해안포를 비교해보면

보다시피 독일 해안포는 인공 구조물을 자연 지형 위에 높이 세워놓은데 반해

이오지마 해안포는 산의 천연지형을 깎아서 구조물을 만들고 그 안에 집어 넣은 형상임


여기까지 말한 건 다 예외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경향성이 그렇다는 거임.


장문이니깐 5줄 요약

일본 성은 거의 모든 냉병기, 총기 등에 대해 극도로 방어력이 높다.

다른 나라가 신경 덜 쓴 상부구조물에 극도로 신경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포 상대로는 방어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설계한 원인은 자연지형 자체를 방어에 적합하게 개조하는

특유의 설계사상 때문인데 20세기 요새 설계할 때에도 이런 사상이 적용되었다.



토탈워갤러리 ㅇㅇ님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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