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강인욱 선생님의 엄청난 글(참조 1)을 먼저 보시기 바란다. 여기 중요한 언급이 스치듯 지나갔는데, 사실 이 또한 나의 연중 캠페인 중 하나에 들어갑니다. 제발 국사를 동아시아사로 확대개편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크림 전쟁(1853-1856)은 말처럼 현재 우크라이나의 크름 반도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전쟁이다. 하지만 이 전쟁의 전선이 우크라이나에만 있지 않았고, 북태평양의 캄차카 반도에도 있었다. 물론 캄차카 반도만이 아니라 핀란드를 위주로 한 발트해, 그리고 북극 지방의 바렌츠 쪽, 백해(White Seas)에서도 일어났었다.
즉, 유럽과 북아메리카, 인도를 중심으로 전세계적으로 있었던 7년전쟁(1756-1771) 이후 다시 한 번 전세계적인 전선이 이뤄졌다 할 수 있을 텐데, 사실 상식적으로 “허를 찌르기”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전술이다. 실행이 힘들어서 그렇지, 결국은 제해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생각해 보시라. 가장 와닿는 사례가 아마 인천상륙작전일 것이다.
물론 발트해, 바렌츠해, 캄차카 반도의 전투가 전황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발트해부터 얘기하자면 핀란드 헬싱키에서 1시간 좀 안 되게 배를 타고 가면 수오멘린나(핀란드의 城이라는 의미) 섬이 있고 여기에 대포가 막 설치되어 있고 그렇다. 여기 원래 요새입니다. 그리고 아마 셋 중에서는 발트해 전선이 제일 중요할 것이다. 국제법 공부할 때 반드시 짚어야 할 사례가 바로 올란드 섬 사건이기 때문이다.
올란드(Åland) 섬 사건이 국제연맹에서 영토분쟁을 해결한 사례이기 때문인데, 그 연원이 바로 크림전쟁의 발트해 전선에 있었습니다요.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 요새 역할을 하고 있는 올란드 및 수오멘린나를 맹렬히 포격했었다가 물러났는데, 크림전쟁 이후 파리협약에 따라 섬을 비무장화시켰던 일이 있다. 그에 따라 올란드 출신이 지금도 군복무 면제인 건 자랑. 다만 절대적으로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스웨덴 사람들의 섬이건만 핀란드 영토로 남았다.
바렌츠 해는 영국 함대가 북극해를 통해 러시아를 공격했던 전선이었다. 하지만 요새를 포격하는 것으로 그쳤는데, 북극에서 뭘 하겠나. 그나마 러시아 요새를 파괴시켰던 발트해 쪽이 더 과실이 있었을 텐데, 만약에 말입니다. 발트해가 뚫리면 당시 수도인 페쩨르부르크까지 그냥 프랑스/영국 연합군이 털 수 있었을 것이다.
캄차카 반도는? 당시 북태평양은 캄차카 반도와 알래스카 그리고 캘리포니아 북쪽(참조 2) 모두 러시아 영토였음을 아셔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해권은 영국이, 그리고 거기에 프랑스가 붙었네? 페루에 주둔하고 있던 함선들이 태평양을 건너와 캄차카 반도의 러시아 정착지/기지를 친 것이다. 그런데 이거 19세기 중반 이야기입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참조 3)는 20세기나 되어야 풀-개통된다 이거죠.
당시 캄차카 반도의 러시아군은 상당히 영리한 선택을 한다. 철도도 없겠다, 어떤 관점에서 봐도 유럽 부분이 중심인 러시아에서 극동까지 지원을 할 수 없고, 해도 한참 늦게 올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심히 싸워서 영프 함대에 피해를 주고는, 일종의 청야전술(淸野戰術)을 펼친 것. 이건 분명 러시아가 승리한 전투였다. 물론? 전황에 큰 영향을 줄리 만무한 곳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철종 시절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만약 이때 영국과 프랑스가 크게 승리해서 아예 캄차카와 오흐츠크해를 차지하여 나눠 관리했다면? 하는 시나리오도 상당히 향후 역사에 재밌을 것 같다. 영국의 거문도 점령이 없었을 테고, 일본은 상당히 진출에 제약을 받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런 기록을 볼 때마다 역시 세계는 생각보다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 이겁니다. 크림전쟁의 여파로 인해 러시아가 당시 자기가 지배하고 있던 핀란드 지역에 특별히 통신망을 확충한 것 또한, 핀란드 입장에서 저 멀리 우크라이나 크름 반도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나라 역사도 저 작은 전투 하나의 결과에 따라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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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아무르강 하류 영령사 절터, 중·러 “원래 우리 땅”(2023년 3월 23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9702
2. 캘리포니아 북쪽에서 순교한 정교회 성인 피터의 사례를 봅시다.
성인 피터(2022년 3월 5일): https://www.vingle.net/posts/4302326
3. 전혀 다른 주제겠지만, 러일전쟁 전에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개통되고 잘 활용됐다면 뭔가 또 역사가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다. Entente cordiale이 Triple-Entente로 더 빨리 바뀌고 영국의 일본국채 투자가 러시아를 향했을지도?
4. 짤방은 여기서 가져왔다. Petropavlovsk: The Crimean War’s Forgotten Battle : https://warfarehistorynetwork.com/petropavlovsk-the-crimean-wars-forgotten-bat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