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래비티> 속에 녹아있는 심리치료의 여정

어떤 인물을 창조하고, 그 인물이 활동할 시대적,공간적 배경을 설정하는 것이 소설,영화 등의 서사적 컨텐츠를 만들 때 쓰는 일반적인 방법이라면, 그래비티는 배경인 우주 뿐 아니라 그 공간에서 작용하는 법칙인 중력조차 전경으로 끌어올린 일반적이지 않은 영화일 것이다. 이 영화 속의 우주는 SF 설정을 위한 배경도 아니요, 아름다운 시각적 공간도 아니다. 그래비티의 우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이다. 인물은 그저 우주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보여준 '하필이면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에 불과하다. 적어도 난, 주인공은 우주 그 자체라 생각한다. 무중력 공간 속 우주인들은 무력하다. 우주선과 연결해주는 케이블을 놓치면 한쪽으로 계속 밀려나 우주를 떠도는 우주미아가 되고 만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생명 그 자체인 지구를 품고 있는 우주이지만, 우주는 그래비티 속 인물들에게 있어서는 곧 죽음이고, 지구(로의 귀환)은 삶이다.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는 위성의 통신 장비를 고치다가 사고를 당하게 되고 우주로 떨어져 나간다. 그때 겪는 공포감은 스크린 너머로까지 전해지는 듯 했다. 라이언의 헬맷에 비친 멀어져가는 맷, 그리고 지구. 소리 없이 조용히 회전하며 지구와 맷으로부터 밀려나듯 멀어지는, 무력한 라이언의 모습이다. 통신조차 두절이다. 이젠 죽음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의 도움으로 그녀는 다시 우주선으로 복귀한다. 라이언이 참으로 인간적이게, 우주 속에서 홀로 유영하면서 숨을 몰아쉰 것과 달리, 맷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라이언과 대화를 시도하고, 라이언이 어릴 때 잃은 딸에 대한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을 묵묵히 들어준다. 심지어, 맷은 위기의 순간 아무런 망설임과 동요 없이 라이언을 살리기 위해 케이블을 놓음으로써 우주 속 죽음을 택한다. 그 와중에도 갠지스 강의 일몰에 감탄하고, 자신의 죽음을 우주유영 시간의 최고 기록 갱신이라며 농을 건넨다. 이런 점들을 보고, 인간을 구원하는 메시아의 구도로, 맷을 예수님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맷의 비인간적인 모습(두려움이 없음), 라이언(인간)을 이끌고 구원해 주는 점, 죽음의 세계로 두려움 없이 떠나는 점, 꿈 속에 나타나 갈 길을 제시한 점(부활), 라이언이 맷을 향해 기도를 하는 점 등을 꼽아 구원자-인류의 구도를 빗댄 것이라고 말이다. 그것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맷은 분명, 필요 이상으로 상황에 대해 초연하다. 우주에서의 경험이 많아, 생과 사에 연연하지 않을 정도로 눈이 틔여 있다는 전제가 있지 않는 한은. 그리고 라이언을 살리며 떠나갈 때, 맷은 이렇게 말한다. "You have to learn to go." 라이언이 앞으로 겪게 될 것들이 '배움의 과정'임을 암시하는 대사다. 맷의 도움을 받고 소유즈(탈출 가능한 우주선)을 찾아 복귀한 라이언은, 안도와 함께 우주선 속에서 휴식을 취한다. 장면을 보고 한 눈에도 알 수 있는, 자궁 속 태아의 묘사다. 영화 속에는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들을 좀 더 시각화하기 위해 넣어둔 장치'들이 곳곳에 보이는데, 그 중 하나가 이 태아의 자세로 한 숨 돌리는 라이언이다. 위에서 언급한 기독교적 해석이 더 그럴싸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류의 구원(구세주의 희생, 맷의 죽음 선택) 후, '새롭게 탄생한 인류'를 의미하기라도 하듯, 탄생의 자궁 속에 들어가 있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대속적 죽음 이후에도 인류는 달라진 것이 없이 계속 사고를 친다. '재탄생'한 라이언에게도 사건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난다. 하지만 난 관심사가 관심사인만큼, 라이언이 우주에서 위기를 겪고, 딸에 대한 상처로 '목적없이 운전만' 하는 자신을 고백 한 후 퇴행하는 심리치료의 한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문제에서 벗어나 안락한 보호 장소로 (내적으로는 어린 시절로 퇴행) 돌아온 라이언은, 그녀가 진정으로 자신의 문제를 바로 보고 앞으로 나아가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위기를 겪을 수 밖에 없다. 문제에서 벗어난 것 같으면, 또 다른 문제에 맞닥뜨린다. 삶을 포기하는 것 외에는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정체된 '나'와 그저 그 자리에 있으면서 아무런 해도, 도움도 주지 않는 새까만 우주. 소통할 상대조차 없는 적막한 우주 속에서, 라이언은 우연히 연결된 지구의 통신 메세지에 눈물을 흘리며 '날 위해 슬퍼해달라'고 읊조린다. 이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딸을 잃은 상실감으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는 커녕 가야할 곳조차 알지 못한 채 계속 드라이브만 했던 지구에서의 자신처럼, 그저 산소부족으로 죽음을 맞는 것을 재촉하는 것 외에는 없다. 산소부족으로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녀는 환영 또는 꿈을 본다. 의식을 놓고 각성상태에 빠져 신 또는 환각을 접하는 것과 유사한 일일 것이다. 그녀의 꿈에 맷이 나타나, 소유즈의 착륙은 발사와 원리가 같다는 힌트를 준다. 그리고 그녀에게, 포기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이것은 라이언의 내면의 목소리가 맷이라는 환영 또는 꿈을 통해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환영 속 맷은 라이언에게 이야기한다. 여기 영원히 남고 싶을거라고. 조용하니 혼자 있기에도 좋고, 세상 모든 것이 잊혀지고, 상처 주는 사람도 없다고. 계속 살아봐야 뭐 있겠냐며, 자식을 잃은 슬픔만한 것이 어딨겠냐고. 하지만 계속 가기로(살기로) 했다면, 끝까지 가보라고 한다. 집으로 갈 시간이라고 한다. 꿈에서 깬 라이언은 시도하기로 한다. 더 이상 운전만 하지 않겠다고, '집으로 가겠다고' 한다. 딸을 잃고 공허한 '운전-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다가, 돌아갈 곳을 정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맷을 향해 이야기하듯 자기 자신이게 다짐하는 말 속에는, 딸의 죽음을 받아 들이고, 아이를 사랑한다고 하고, 엄마가 힘을 낼 것이라고 하는 상실작업과 현실의 인지, 현재를 살아가기로 다짐하는 것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그 후에야 비로소, 라이언은 삶을 여유롭게 바라보고 어떤 상황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어떻게 되든, 엄청난 여행일 것이다- 불길에 휩싸여 죽건, 지구에 무사귀환하건, 그 여정은 나에겐 엄청난 일이고 의미있는 일임을, 딸이 죽었더라도, 슬픔과 별개로 내 삶은 의미있음을 스스로 확인이라도 하듯 통신 마이크에 대고 외치고, 흐름에 몸을 맡긴다. 그리고, 그녀가 탈출에 성공해 다시 Gravity-중력을 느끼게 되면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삶 자체가 경이롭고 감사한 일이고, 과거나 자신의 마음 속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래비티는 단순하다면 단순한 내러티브를 갖추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메세지가 깊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을 괜히 꼬아놓거나 필요 이상으로 현학적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깊이를 훼손하지 않고 담아냈다는 점에서 참 멋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떤 관점에서 보건, 거대하고 무한한 우주, 대자연, 신의 섭리 등을 앞에 둔 미약한 존재인 인간이 삶의 목적을 되찾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현재를 살아나가라는 메세지는 공통적이지 않을까. 군데군데 종교를 상징하는 것들이 나오고 (소유즈에는 예수그림이, 셴죠에는 부처상이), 맷의 언행이 비인간적일 정도로 초연한 것을 빗대어 이를 구세주와 인간의 관계로 보고 싶다면, 그렇게 보면 된다. 대자연의 섭리 속에서 살아가는 한 영적 존재로서,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갈 길을 찾아내 현재의 내 삶을 느끼며 꾸려나가라는 메세지로 보아도 좋다. 그 무엇이 되었건, 세상에 경외심을 품은채 현재를 충실히 살아낼 이유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이론적 관점을 취하건간에, 모든 심리치료사가 내담자에게 말하고 싶은 부분이지 않을까.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