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행성착륙(마지막)

라온에 착륙한 지 11일째였지만 갈증은 여전했다. 달고 시원한 물, 살아 있는 물을 마시고 싶다는 욕심은 라온에 착륙한 뒤 누구나,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한 생각이었다. 아라가 김 중령 가슴 앞으로 수첩을 내밀었다. “뭘 말하라는 거야, 이거 원. 걷지도 못하는 놈들이 육지 구경나온 게 그리도 자랑스럽냐? 그냥 돌아가자.” 정태가 가만 있지 않았다. “왜 시작부터 초를 치고 그래? 어떤 놈들이 여기서 살지 김 중령은 궁금하지도 않아?” “궁금하면 어쩔 건데? 그래, 그 몸으로 한판 붙을 작정인가?” “착륙하지 않을 거라 했으니 그건 지켜야지.” “ 사실 공룡말고는 상상이 잘 안 돼. 난 상상력이 젬병이야. 그러니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놈들이라면 한 달 정도 바비큐감인데, 공룡 바비큐라, 하하!” 김 중령 얘기는 조금 엉뚱하기도 했지만 그다왔다. “바비큐라고? 여기서 우린 외계인인데, 여기 살고 있는 걸 잡아먹는다고? 지구로 온 외계인이 지구 사람을 잡아 먹는 거랑 뭐가 달라? 우린 여기서 잠깐 머물 거잖아. 아니, 여기서 눌러 살지도 모르지. 어쨌든 우린 손님이라구! 여기 주인이 바퀴벌레처럼 생겼어도 그들이 주인이야. 이런 식으로 흠잡고 탓하는 게 좀 지나치긴 하지만, 난 무엇보다도 우리가 정복자란 생각만큼은 꼭 버려야 한다고 여겨.” “이거, 이 박사를 흥분하게 만들었구만. 진정해! 내가 여길 사냥터로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니 안심해도 좋아. 내가 그 정도로 철없는 사람은 아니잖아.” 김 중령이 이렇게 미안함을 드러낸 적이 별로 없었기에 정태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따지고 보면 김 중령 말도 터무니없지는 않았다. “정복자가 된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어요. 우린 조난자였어요.” 나 박사 말에 김 중령이 반박했다. “선구자가 지구를 떠난 이유는 이런 곳에서 정복자 노릇을 하라는 거였지, 조난자처럼 지내란 건 아니었어. 여길 사냥터로 생각하는 건 지나치다고 말할 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정복자 노릇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해. 그게 우리 임무니까!” 정태도 가만 있지 않았다. “임무? 그따위 거 엿먹어라 해. 임무라니? 이제 우주탐사국 하고 완전 끝났다고. 그 녀석들은 지구 귀환을 보장하지 못했잖아. 17년 넘게 고생해서 여기까지 와서 그 녀석들을 위해 뭘 해야 하는데? 우린 우리대로 사는 거야. 여기서 정복자가 될지 괴물처럼 생긴 녀석들 포로가 될지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어.” “좋아, 우리 임무는 다음에 또 얘기하자고. 그나저나 이 박사는 SF를 너무 많이 봤어. 우리가 여기서 포로가 될 거라면 진작에 그리 됐을 거잖아.” 김 중령은 자신 있다는 투였다. “지금은 구경하러 왔으니 거기에 집중하자구. 말싸움은 질색이니까.” 아라는 김 중령과 정태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바 아니란 듯 계속 땅 아래를 살펴보고 있었다. “장 대위, 카메라를 작동해 봐. 이런 식으로 계속 발아래를 쳐다보다간 목디스크라도 걸릴 것 같아.” 아라와 나 박사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장 대위는 지상관측장치를 켰다. 움직이는 게 있으면 비행정 속도와 방향을 조정해 추적 관찰할 수 있는 장치였다. “이걸 좀 봐! 맙소사…, 저게 뭐야?” 정태 말에 김 중령도 화면을 주목했다. 뭔가가 무리를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저건, 저것들이 움직이잖아!” 탐사대원들로서는 지구를 떠난 후 처음으로 동물과 맞닥뜨린 셈이었다. ‘설마했지만 바로 동물을 보다니. 하긴 이런 행성에 아무것도 없는 게 더 이상하지. 김준우 말마따나 공룡도 있는 건 아닐까? 곤충은…….’ 정태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머릿속에서는 그 잠깐 사이에도 고만고만한 의문들이 쉴 틈 없이 들락거렸다. ‘공룡이 아닐까?’ 김 중령은 공룡을 떠올렸다. 이런 행성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이라면 공룡이라야 그럴 듯하다고 늘 생각했기 때문이다. “추적 상태로 바꾸고 좀 더 크게 비춰 봐.” 화면에 모습을 드러낸 건 공룡이라고 보기에는 가죽이 매끈했고 생김새도 너무 순했다. “이게 뭐야? 소, 소잖아. 지구에서 보던 것보다 다리가 짧은 점만 빼면…, 소랑 너무 비슷해! 김 중령은 자기 생각이 틀렸다고 쉽게 인정했다. “오백 마리도 넘겠는데요. 목동이나 카우보이가 있는 건 아닐까요?” 장 대위는 생김새나 평소 행동답지 않게, 동물들한테서 겁이라도 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뭐? 카우보이? 하긴 여기서 저걸 볼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 여긴 지구랑 비슷해,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해야겠어. 비록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그런데 이놈들은 왜 떼지어서 움직이고 있지? 먹이를 찾으려고?” 김준우 표정에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배어나고 있었다. “계속 관찰할까요?” 장 대위는 조금 불안한 모습이었다. “그럴 거 없어. 더 본다고 달라질 일도 없을 거고. 지금 착륙해서 저 녀석들이랑 부닥쳐 봤자 뭐 좋은 일이 생길 것도 아니니. 발걸음도 겨우 뗄 지경인데, 잘못 하다간 깔려 죽기 딱 좋지 뭐. 돌아가자, 돌아가는 데 불만 없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착륙할 때가 아니라 돌아갈 때였다. (제2장에서 계속)

중고등학생용 수학 교재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틈틈이 라이영이란 이름으로 소설을 씁니다. 소설, 특히 과학소설(SF)에 관심 있습니다. 페이스북 그룹 "한글빛내기모임"에서 우리말글을 아끼는 이들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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