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http://blog.naver.com/sniperhu/220089095338 나는 한 번 죽었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나는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 수술실로 향하던 중, 희미한 의식 속에서 지난 삶이 스쳐 지나갔다. 거지 같은 인생이었다. 남들 대학교 가니까 따라서 대학교 가고, 남들 스펙 쌓으니까 따라서 스펙을 쌓았다. 왜 이리 아둥바둥 살았는지, 진짜 내가 살고 싶었던 인생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남들이 내주는 숙제만 열심히 하며 살아온 나의 인생, 후회뿐이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살았던 걸까? 돈? 명예? 권력? 그런 것들이 죽음 앞에서 다 무슨 의미란 말이가. 그제야 나는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게 됐다. 삶에는 설명하기 힘든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었는데,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나는 그저 태어났기에 살았을 뿐이고, 태어났기에 죽음을 향해 달려갈 뿐이었다. 나는 수많은 의미가 부여된 삶을 살고 있었다. 학벌ㆍ스펙ㆍ성공처럼 남들이 부여해 준 삶의 의미, 사랑ㆍ행복ㆍ가족처럼 내가 부여한 삶의 의미.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고, 그 의미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죽음과 직면했을 때 내 존재 자체는 어떤 의미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무(無)에서 왔다가, 무(無)로 돌아가는 게 인생이란 걸 깨달았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무의미의 축제>를 읽으면서 많은 점에서 공감했다.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는 알랭, 칼리방, 샤를, 라몽 네 주인공의 생각과 일상을 다루는 소설이다. 구성이 시트콤 같다. 전체적인 줄거리보다 하나하나의 에피소드가 중심을 이룬다. 개성 강한 에피소드들을 하나의 메시지가 관통한다. '존재의 본질은 무의미다.'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는 삶의 하찮음과 무의미에 주목한다. 보잘 것 없고 의미 없는 존재의 가치에 대해 풀어나간다. 세상을 전복시키려 했던 '스탈린'의 사상이 어쩌면 거대한 농담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하고, 깃털을 보며 천사를 떠올리는 인간들의 '의미부여'를 우스꽝스럽게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가 이끌어내는 결론은 '존재의 본질은 무의미다. 그러니 너무 큰 의미를 갖고 무거운 삶을 살 필요는 없다.'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그는 존재의 본질은 '가벼움'이란 걸 설파했다. 그러면서 독자들을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가벼운 게 좋다는건지 아니면 무거운 게 좋다는건지에 대한 궁금증을 남겼다. <무의미의 축제>는 그에 대한 작가의 답이다. 작가는 '존재의 본질은 무의미'이니, 너무 무겁게 살려 노력하지 말고, 조금은 가볍게 살라고 말한다. 그는 어쩌면 이 세상에 부여된 의미들(사상, 삶에 대한 의미, 존재의 의미 등)이 거대한 농담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한낱 웃음만 남기고 허공에 사라져 버릴 무의미한 농담을,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삶에 무거운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리고 가볍고 유쾌한 농담처럼 살라고 한다. 책을 읽다가 느낀 건데, 사람들은 그게 무엇이든 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마치 의무라도 되듯이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삶에 대한 의미, 성공에 대한 의미, 사람에 대한 의미, 자연에 대한 의미 사상, 도덕 등,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의미는 스스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시선으로 인간이 부여하는 거다. 존재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간에 의해 부여된 의미들을 '환상'이라고 말했다. 환상은 언젠간 깨진다. 그때 인간은 필연적으로 허무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 여겼던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이라 여겼던 돈을 잃었을 때, 천직이라 여기며 평생을 바친 직장에서 잘렸을 때, 죽음을 눈앞에 뒀을 때 등, 그제야 부여된 의미들이 사실은 무의미했다는 걸 깨닫고 인간은 허무를 느낀다. 존재의 본질이 무의미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수많은 의미들이 사실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허무를 느끼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에 초점을 맞추는데, 나는 '동물이다.'에 초점을 맞춘다. 인간도 하나의 동물이다. 다만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특징이 '생각'일 뿐이다. 절대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지 않다. 대자연 질서에 순응하며 사는 하나의 존재일 뿐이다. 벚꽃이 피고 지는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저 봄이 왔기에 피고, 수명이 다했기에 질 뿐이다. 인간의 삶도 이와 같다. 그저 태어났기에 살고, 태어났기에 죽을 뿐이다. 무에서 와서 무로 사라지는 자연 속의 한 존재일 뿐이다. 성철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렇다. 산은 산일뿐이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물은 물일뿐이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산과 물은 의미 없이 그저 존재할 뿐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저 세상 속에 의미 없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이, 조금은 가볍게 흐르는대로 사는 것도 괜찮다. 이렇게 쓰고 보니 허무주의자의 글 같다. 하지만 나는 허무주의자가 아니다. 되려 '인생은 무의미하기에 살만하다.'라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기에 순간순간 최선을 다할 수 있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 수 있다. 나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면서, 순간순간을 살고 싶다. ​ ​*밑줄 긋기 ㆍ모두가 ​인간의 권리에 대해 떠들어 대지. 얼마나 우습니! 너는 무슨 권리에 근거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야. - p. 132 ​ㆍ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 뿐이지. - p.96 ㆍ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더 강력하고 의미심장하게 보여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중략)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 p. 147​ ㆍ자세히보기 http://blog.naver.com/sniperhu/220089095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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