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관절의 유연성과 근력의 강화; Flexibility of Articulation & Strengthening of Physical strength

근력은 관절의 유연성이 확보되어야만 강화될 수 있다. 이것은 새로운 이론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유연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연한 만큼 운동을 할 수 있고 활동할 수 있다. 그래서 당연한 유연성의 의미를 생각할 필요 없이 오직 근력의 강화에만 치중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유연성의 의미를 간과한 사람들이 도달하는 결론은 단 하나 부상뿐이다. 신체의 한계 일반적으로 운동을 통해 입게 되는 부상은 과격한 운동을 해서라기보다 자신의 한계치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10층 높이의 건물에서 뛰어내리면서 운동을 하겠다는 사람은 없다. 몇 백 킬로그램의 물체를 들거나 밀어서 운동을 하겠다고 우기는 사람도 없다. 우리가 부상을 입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의 한계치를 간당간당하게 오갈 때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체의 한계치란 물리적 기준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인체가 시공간에 적응하는 능력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그런 말은 물리학이나 운동역학에서 따질 일이고, 여기서 말하는 한계치란 어떠한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최대의 능력을 뜻한다. 이 말도 어렵게 들린다면, 상황을 설정해보자. 우리는 운동을 하면서 자신을 한계로 몰아붙일 수 있다. 미친 듯이 달린다든가, 무거운 물체를 밀거나 당긴다든가 같은 방법으로 지구력과 근력을 한계로 몰아붙일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한계의 정의다. 그럼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한계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체가 적응하는 능력, 적응력이다. 적응력의 한계를 말하려는 것이다. 인간은 적응력에 한계가 있다. 문제는, 그것을 자신만이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광범위한 범주의 경험치로 해석하여 일반적인 적응력의 한계를 추정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경험일 뿐이다. 그것은 일반화할 수 있는 지표나 기준이 될 수 없다. 나는 되는데 너는 왜 안 되냐 라고 말한다면, 그는 아마추어다. 방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몸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면, 그는 아마추어다. 시간이 지나서 적응하면 될 거라고 말한다면, 그는 아마추어다. 그런 방식으로 운동을 하기 때문에 자신의 한계치를 모르고 부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부상은 매우 사소한 판단 실수나 부주의에서 비롯된다. 거창한 사건이나 충격이 아니라, 매우 작은 자극과 분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부상의 범위를 세포의 파괴로 본다면, 모든 것이 부상이다. 허나, 우리는 세포의 분열을 부상이라 부르지 않는다. 신체적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를 부상이라 말한다. 그리고 운동을 통해 입는 물리적 부상은 거의 다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스스로의 실수이다. 나는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할 것이다. 자세와 동작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자세에만 치중했고, 뒤에는 동작에만 치중했다. 허나, 아무래도 둘의 개념을 합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세와 동작은 언제나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물리적 과정이다. 그것이 정적이든, 동적이든 말이다. 인류의 진화 우리는 어떠한 상태의 자세와 동작에 있어서 최소한의 중립을 유지할 만큼의 유연성과 근력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앉고 걷고 뛰고 들고 당기고 매달리는 등의 동작을 수행하거나 서고 버티고 멈추는 등의 자세를 수행할 때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인체가 직립보행으로 진화한 유인원이란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원숭이에 비해서 인간의 하체는 매우 뛰어난 균형감각을 보유하고 있다. 로봇으로 아무리 그것을 흉내 낸다 해도 인간을 넘어설 수는 없다. 상하좌우로 돌고 틀고 뛰고 구르는 그 수많은 동작은 어떤 생물도 할 수 없는 것들이다. 혹자는 자신의 몸이 둔하다거나 느리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생명의 진화를 무시하는 착각이다. 모든 인간은 움직일 수 있게 태어났다. 두발과 두팔이 있다면, 할 수 없는 운동을 찾는 것이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은 운동을 할 줄 모르고 몸이 약하다고 착각을 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도 비판했지만, 인간의 두뇌도 운동을 하는 일부라면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하거나 운동을 하지 않고 먹기만 해서 비만에 이르는 것도 개인의 자유라는 뜻이다. 영국의 한 사람은 200kg이 넘는 자신의 몸이 국가의 책임이라며 소송을 냈다. 결과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입에 직접 음식을 넣고 먹어서 살이 찐 것을 국가의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손과 입이 국가의 소유라는 뜻인지 모를 일이다. 맛있다고 먹을 때는 내 손이고 입이였다가, 살쪄서 목숨이 위태로워지니 내 책임이 아니라니, 그것은 대관절 무슨 논리일까? 어떠한 자세와 동작도 가능한 것이 인체고 따라서 언제든지 강해질 수 있는 것이 인체다. 자신의 몸이 약하다는 핑계는 운동을 해본 적이 없거나, 운동을 잘못 배웠거나, 운동을 하다가 다쳤기 때문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말하면 굉장히 냉정할 수밖에 없다. 약하면 죽어야 되는데, 인류 문명이 발달해서 돈만 벌어도 생명이 유지되는 것이다. 인간을 만들려고 지구로 굳이 하느님이 찾아와 사람을 흙으로 빚었다고 생각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지구의 대기와 환경에 적응한 결과물로서 포유류의 한 종류로 진화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자신의 게으름을 변명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진화론을 이해하고 싶다면, 한 가지만 하면 된다. 자신의 손을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진화론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손은 생물 진화의 정점에 있다. 나는 인간의 진화론에서 손과 뇌의 상관관계가 매우 긴밀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자세와 동작 이제 유연성과 근력에 대해서 따져보자. 그것은 자세와 동작으로 대변된다. 유연성은 자세로 시행되고, 근력은 동작으로 시행된다. 그러니 자세와 동작을 어떻게 하는지만 알면, 유연성과 근력을 확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한다. 그 말은 지면에서 수직으로 서서 활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중력에 저항하는 인체의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나는 ‘인체의 신비’에서 두발 두손 두눈을 구분하였다. 이것은 철저하게 물리적인 기준에 맞춘 것이다. 인체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가 올바르게 기능해야만 한다. 엄밀히 말해서, 어디의 근육을 어떻게 쓰는가는 정확하게 가르칠 수가 없다. 근육의 크기가 다르고 골격의 구조가 다르며, 수축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수많은 물리적 시차를 무슨 수로 동일시한 후에, 인체의 부위(근육)를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는가? 이것은 확률적으로 지극히 희박한 일이다. 반면, 실제 물리적 작용점이 되는 두발과 두손은 물리적 제어가 가능하다. 손과 발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만 알면 되는 것이다. 무예에서는 모든 기초가 여기서 시작된다. 발은 보법, 손은 수기다. 나는 여기서 무예가 아니라 운동으로서의 손발의 자세와 동작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허나, 그 실전과 결론은 동일하다. 그것이 내가 누구나 아는 당연한 것(손발)으로 운동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이유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건강해질 수 있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자, 손에서 시작되는 팔은 어깨로 종결된다. 발로 시작되는 다리는 골반으로 끝난다. 인체를 막대기나 마네킹이라 생각해보자. 조립식 인체는 몸통에 머리, 두 팔, 두 다리를 끼운 것과 다르지 않다. 그 속에는 뼈가 존재하고, 뼈와 뼈는 다시 관절로 연결된다. 인대와 힘줄, 근육이 견고하게 뼈와 뼈를 이어주고 잡아당기면서 인체의 형태를 직립보행이 가능하도록 유지한다. 인체의 운동역학에서 가장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동작들은 한정되어 있다. 웨이트 트레이닝에서는 그것을 3대 운동으로 구분한다.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 스쿼트. 대한운동법에서는 인체를 상중하로 나누어 인체의 세 부분에 집중한다. 어깨, 척추, 골반이 그것이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대한운동법은 동일한 역학을 기반으로 한다. 다른 모든 운동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다시 운동법을 고안한 이유는, 그것이 더 광범위한 대중을 포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운동이 대중적이지 않은 이유는, 인체의 구조적 원리를 무시하거나 간과하기 때문이고 말이다. 가장 큰 관절과 근육을 중심으로 인체를 단련해야만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 이제부터 기존의 근육명칭을 사용하기가 어렵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근육이 아니라 관절과 근육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척추를 기준으로 머리뼈와 꼬리뼈가 있다면, 어깨관절과 골반관절은 자동차의 바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짐작하듯이, 우리는 몸체인 척추와 동력을 발휘하는 네 개의 관절을 강화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지만, 근육이 아니라 관절이다. 마땅한 용어가 없어 어깨와 골반이라는 일반적인 명칭을 사용하지만, 관절군을 말한다. 어깨근, 골반근, 척추근이라는 말도 괜찮을 듯하다. 네 발로 걷는 동물이라면 굳이 나눌 필요가 없지만, 인간은 두 발로 걷기 때문에 어깨와 골반의 운동법을 구분해야 한다. 그 이유는 어깨와 골반의 운동반경과 범위가 다르고 그 강도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골반은 미는 운동을 하고 어깨는 당기는 운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구조적으로 그렇다. 발은 땅을 미는 일에서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고 손은 무언가를 당기는 일에서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 대한운동법에서 정리했듯이, 최선의 방법이 최고의 방법이다. 골반은 앞굽이 걷기(밀기)가 최선이고 어깨는 어깨 당기기가 최선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체를 강화할 최선의 방법이자 최고의 방법이다. 매우 쉽고 간단함에도 사람들은 그 중요성을 간과한다. 별 것도 아닌 운동으로 뭐가 강해지는 거냐고 의문을 갖기 쉽다. 왜 그럴까? 사람들이 운동을 못해서인 걸까 아니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둘 다 아니다. 일반인이 운동으로 강해지고 능력을 향상하지 못하는 뻔한 이유는 바로 ‘운동량의 부족’에 있다. 그렇다. 운동을 별로 안 해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소위 말해서 운동량이 많고 몸이 좋은 사람은 운동을 잘하고 힘을 잘 발휘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설명이 길어진다. 근육이나 관절이 강한 것과 운동을 잘 하는 것, 운동을 많이 하는 것과 운동을 잘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인체를 본인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일반인도 올림픽 나가서 금메달을 따야 하고,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이렇게 클 수도 없다. 운동 방식에 따른 자세와 동작에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운동선수와 일반인의 차이가 그렇게 큰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방법이나 능력의 차이로 치부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지를 신중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그래서 그것이 꼭 많은 시간과 부상을 동반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물리적이고 역학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다. 다시, 자세와 동작으로 돌아가자. 앞굽이 걷기에서 요구되는 자세는 정확한 11자의 형태다. 앞무릎과 앞발, 뒷무릎과 뒷발이 정확히 진행방향을 가리켜야만 한다. 앞무릎이 앞발보다 앞에 있다고 해서 무릎이 아픈 건 아니다. 무릎이 아픈 건 압축에 따른 강한 충격이 발생했기 때문이지, 무릎이 발보다 앞에 있어서가 아니다. 그러니까, 앞굽이 걷기를 할 때 그런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발과 발목과 무릎과 골반의 힘이다. 관절을 강한 힘으로 잡아주기 위해서는 그 부위에 의식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몸에 힘을 싣는다는 생각으로 앞굽이 걷기를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발의 좌우요동을 줄이고 땅에 발을 박는다는 느낌으로 허벅지로 버티고 골반으로 당겨야 한다. 그것만 되면, 모든 하체운동은 그것으로 끝난다. 동작을 수행할 때 중요한 것은 진행방향과 몸통골반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나가는 발과 당기는 발도 언제나 최소한의 최적화된 동작을 수행해야만 한다. 사람들의 보행형태만으로도 수많은 문제점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발바닥의 어디가 닿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저 사람이 부드럽고 힘 있게 걷느냐이다. 엉덩이로 걷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면에서 가해지는 무릎의 충격을 얼마나 부드럽게(리드미컬하게) 흡수하고 다음 다리로 옮겨갈 수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부드러우면서 힘차게 걷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 가능해도 건강의 90%는 확보되며, 장수의 70%는 깨달을 수가 있다(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말이다). 부드럽고 힘차게 잘 걸을 수 있는 강한 다리는 건강의 전제이자 장수의 시작이다.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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