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지만 로열석에 앉아야 하는 이유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문화계에는 온갖 공연이 넘쳐난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문화는 인간의 생활에 활력과 윤활제가 되어 주는 매개체이다. 밋밋해지기 쉬운 삶은 문화예술을 만나 희로애락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청각장애 2급임에도 일 년에 2~3회 정도는 다양한 문화예술을 체험하며 여가를 즐기고 있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다른 장애인들에 비해 높은 편이라 할 수 있다. 한번은 자유롭게 오는 순서에 따라 자리에 앉는 공연장에서 애를 먹은 적이 있다. 공연을 볼 때 들리지 않는 관계로 시각에 많이 의지하는 편이고, 무대와 가까운 좌석에 앉아 입모양과 표정을 보아야만 공연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 나름대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날은 멀리서 아무런 감흥 없이 그냥 몸만 왔다 갔다 하는 그런 공연만 보고 돌아왔다. 겉으로는 멀쩡한 나를 누구도 장애인으로 보지 않았고, 결국 자리를 양보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면, 시각장애인을 위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양보받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예전에 뮤지컬 공연 관람을 위해 인터넷에 접속해 장애인 할인 사항에 대해 꼼꼼히 읽었던 적이 있다. ‘장애인은 전화통화를 통해 확인 후 할인받을 수 있다’는 글귀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청각장애인은 일반 통화가 불가능하기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만 한다. 그 요청이 불편하기도 하고, 알리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것까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야 해서 소문도 걱정스러워 부탁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무척 보고 싶었던 공연이라 우선 인터넷에 접속해 좋은 자리를 예약하기 위해 나름 애를 쓴 후, 장애인 할인을 받기 위하여 기획사에 전화를 했다. 기획사는 장애인 할인은 자신들의 업무가 아니라면서 주관하는 회사에 전화를 해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니 결국, “예매했던 좌석을 취소하고 다시 예매해야만 장애인 할인이 가능하다. 다시 예매하는 도중에 예매하려고 했던 좌석을 다른 사람이 차지하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자리에 앉아야 할 것이다.”는 무책임한 말을 들었다. 너무 화가 났다. 어렵게 인터넷에 접속해 무대 앞좌석을 잡기 위해 애썼던 시간이 헛수고가 될지도 모른다는 실망감과 기대하고 기다리던 뮤지컬의 시각적 즐거움을 누릴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애꿎은 수화통역사에게 화를 냈다. 기획사와 주관업체에 수차례 전화를 했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장애인 할인을 포기하고 정가로 표를 구매해 공연을 보았다. “장애인이 장애인 할인을 받지도 못하네요.” 전화통화를 도와줬던 비장애인 수화통역사도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기막히다며 어이없어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장애인 차별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서 비장애인들이 청각장애인에 대하여 너무도 모른다는 서글픈 마음이 든다. 일상처럼 우여곡절 끝에 공연을 관람하던 어느 날 문득 공연장 안 휠체어 지정석 자리가 어디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휠체어 지정석 자리는 1층 맨 끝 뒷자리로 정해져 있었다. 어디서 보고 듣고 싶은지 이야기하고 들을 수 있는 이들도 자리를 선택할 기회조차 없이 지정된 장소에서만 관람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공연장뿐 아니라 여러 행사장에서도 늘 있었다. 장애인과 관련된 행사가 아니면 오든지 말든지 눈길도 주지 않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기 일쑤다. 행사장에서 좌석 배정을 받을 때 중간이나 조금 더 뒤쪽으로 밀려나 자리에 앉기도 했다. 청각장애이다 보니 수화통역을 더 잘 보기 위해서는 무대 바로 앞에 앉아야 함에도 앞자리는 대부분 고위 관직을 위한 내빈석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관행은 마치 고위 관직에 대한 예의인 것처럼 굳어져 있다. 왜 굳이 내빈석을 맨 앞자리에 지정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관습으로 굳어진 관행이 장애인 차별을 부추기는 꼴이 되는 것은 아닌지, 관행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늘 해오던 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을 먼저 깨뜨려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해본다. 앞자리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나 무대 위에 수화통역을 잘 보아야 하는 청각장애인, 또는 편의가 필요한 장애인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면 어떨까. 단 반드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앉을 수 있는 분위기가 절실하다. 그러기 위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 없는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고, 국가기관 등의 적극적인 정책이 더해진다면 지금의 최대 화두라고 할 수 있는 ‘사회통합’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빈부격차, 지위고하를 떠나 모든 사람은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있는 한 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 함께 공존하며 평등한 인권의 권리를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차별 없는 세상은 없다지만 사람들의 배려가 우리 생활에 자연스레 녹아든다면 ‘차별’이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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