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택시

술 한 잔도 마시지 않고, 말짱한 기분으로 새벽 2시에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탔어요. 몸 곳곳에는 피로의 문신이 남아있었고, 전화기는 충전이 필요하다고 깜빡거리기 시작했지요. 길은 어두웠고, 택시는 빨랐어요. 창 밖으로는 줄어들기 시작하는 불빛들이 번지면서 흩어졌어요. 이상해요. 꽂히듯 택시를 세우고 근처의 술집을 찾고 싶어졌어요. 무엇이든 팔아 시간을 매수해서는, 새벽 2시에서, 아무 곳에서나 새벽 2시에서, 시계바늘이 멈춰선 새벽 2시에서 맥주를 비우고 싶어졌거든요.흰빛이 감도는 벨지안 맥주를 잔에 가득 부어서 말이죠. 당신이 나오건, 나오지 않건 그것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어차피 우리는 같이 있으니까. 내가 원했던 건 다만, 밤의 틈새를 벌려 얼마동안 당신과 내가 주고받았던 것들을 되뇌이고 싶었을 뿐이니까요. 꼭 어느 날이라고 정해져야 할 필요도, 오늘이 아니면 안될 이유도 딱히 없어요. 그저, 택시의 컴컴한 실내와 운전기사의 무거운 침묵이 그렇게 떠올리게끔 도와줬을 뿐이지요.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으니까, 그게 오늘이라도 이상하지 않은 것뿐. 먹통인 전화기를 들고 혼자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듣고 있나요? 이야기도, 메일도, 심지어 당신과 나눈 어떤 감정도 소통이 아니에요. 상대에 대고 말하지만 그것들은 내 안의 벽에 부딪혀 늘 다시 돌아와요. 당신을 울리고 싶어요. 내가 느끼는 그것들이 당신의 몸을 부들부들 떨리게 하길 바래요. 그렇지만 늘 감동하는 것은 자신일뿐, 외국어로 얘기하는 것처럼 사실은 늘 언어를 겉돌아요. 그럼에도 쉽게 믿어버리죠. 당신은 이해했을 거라고, 왜냐면 그렇게 믿고 싶으니까. 적어도 내게는 모든 것이 진짜이니까. 안녕. 또 하루가 지나갔어요. 내일이 오겠지만 그 내일은 똑같은 오늘이에요.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일은 흥미로와요, 단지 몇 일만. PC를 켜고 쪽지함을 열고, 페이스북을 보면서 다시 오지 않을 것들을 알아버려요. 지나간 것들을 행복해하면 될까요. 인생을 추스리고 다독이면서 다음 우연을 기다려볼까요. 지나쳐요.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있어요. 당신과 마찬가지죠. 그런데도 자주, 그렇지 않다고 느껴요. 그건 착각이라고 말한다면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어요. 착각이 아니라고 말한다해도 믿을수는 없죠. 바로 그 자리, 그 자리가, 지금, 심야택시.

아주 천천히, 그 누군가를 잊어버릴만큼 느리게 연애소설 읽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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