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바야시 노부야스 (岡林信康) ; そくらえ節

일본을 떠나 아시아 최고의 저항 포크싱어 오카바야시 노부야스. 음악은 시대를 표현하는 일종의 운률의 역사서이다. 보여지는 세상이 아닌 그 이면에 썩어가는 부조리에 대한 성찰의 시선으로 대중에게 역사 의식을 고취시키고 정의에 대한 호소를 하는것이 음악인들이 가져야할 덕목이자 의무이고 책임이다. 유태인이란 이유로 훗날 역사가에 의해 폄하당했던 밥 딜런의 음악 정신은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일본의 밥 딜런, 아니 밥 딜런을 있게한 미국 포크음악의 아버지인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같은 존재가 바로 '오카바야시 노부야스'이다. 실제로 일본 음악계에서 그의 애칭은 ;포크음악의 신(フォークの神様)'이다. 서슬퍼런 일본의 전체주의 권력앞에서 신랄한 비판의 노래를 불러댈수 있다는것은 음악적 역량과 별개로 대단한 용기와 신념을 필요로 한다. 데뷔 싱글인 'そくらえ節 (똥 먹어라 節)'를 비롯해 많은 그의 노래들은 당시 정부로부터 방송금지 처분 대상이었다. 정부 권력과 정치가를 비롯한 기득권자들에 대한 신랄한 가사는 번역기로 해석해 부자연스러운데도 대중들의 응어리를 녹여버릴만큼 명쾌하고 통쾌하다. 한국 포크의 태생적 한계는 모던포크의 정신을 저버린채 형식만 빌어왔다는데에 있다. 스스로 저항의 아이콘임을 부정한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아직도 저항노래의 대표적이라는것은 시대의 핍박만으로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한국 음악인들의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은유와 역설의 가사로도 감동을 줄수있지만, 혁명을 위한 저항운동에서 필요한건 구체화된 서사적 가사이다. 각설, 신학대에 들어갈만큼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오카바야시는 교회의 부당한 처사에 반발,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한다. 그곳에서 다카이시 토모야와 조우해 기타를 배우며 음악을 접하게 된다. 1967년 다카하시를 비롯해 여러 음악인들이 모여 다카하시 사무소를 설립하고 교류했는데, 이 다카하시 사무소는 이후 일본 포크 음악의 산실이되었다. 다카다 와타루, 엔도 켄지, 오카바야시, 잭스등이 참여한 이 집단은 교토를 중심으로한 관서지역 포크의 메카였다. 그 역시 당시 성행했던 여러 콘서트에서 공연하며 음반도 발표하지만 발표하는곡마다 금지곡 처분으로 인해 직설적인 음악활동에 많은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이후 포크락으로의 변화등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노력을 하던중 71년 돌연 4년간의 은둔형 농경 생활을 하게된다. 75년 음악계에 복귀해 과거와 달리 패러디 성향의 음악을 하기도했지만 80년대 중반 메이져 레코드사와의 계약이 만료된후에는 정통적인 포크스타일로 전국 투어를 떠나게 된다. 더불어 전통 음악과 현대 음악과의 접목을 시도하는등 실험적인 작업을하다 알게된 한국의 사물놀이에 굉장히 충격을 받은듯 하다. (일본 자료엔 개안(開眼)이란 표현을 쓴것을 보면 그러하다.)  근래에는 작곡도 하고 J리그에서 서포트 활동을 하는등 평탄한 삶을 살아가는듯 하다. 2005년 그의 라이브를 보고 어느 블로거는 하느님의 강림이라고 표현했고, 어제 소개한 이즈미야 시게루는 오카바야시의 공연을 보고 '썩어도 도미'(일본에선 도미라고 하나보네요)라며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한다. 소개할 동영상은 그의 데뷔 싱글에 수록된 'そくらえ節'와 '山谷ブルース'이다. ('똥 먹어라 節'은 한줄의 가사가 끝날때마다 같은 후렴구가 반복되서 붙인 제목인듯 하다.) くそくらえ節・岡林信康: http://youtu.be/kv03261ldZ0 http://youtu.be/yuPyhdzyG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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