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쯤 성당여행 _ 아름답고 오래된 우리 성당 여행하기

아름답고 오래된 우리 성당 35곳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낸 책이다. 우리 성당의 정겨울 만큼 아담하고 담백한 조형미를 잘 보여주고, 또한 유려한 문장과 아름다운 사진은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우리 성당의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벽돌 성당, 석조 성당, 그리고 한옥 성당에 이르기까지 건축 형식이 무척 다채롭다는 사실도 새삼 알게 해준다. 책 속의 붉은 벽돌 성당은 포근하고 서정적인 감성이 묻어난다. 석조 성당은 남성적인 듯 부드럽고, 한옥 성당은 조선의 선비처럼 단아하고 교양적이다. P.17~18 : 명례방공동체는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1785년 봄 그의 집에서 이벽과 이승훈, 정약전·정약종·정약용 삼형제, 권일신 부자, 그리고 또 다른 신자들이 모여 집회를 열다가 형조(추조) 에 체포된 것이다. 이것이 한국 천주교 첫 번째 박해사건인 을사추조적발사건이다. 형조판서 김화진은 검거된 사람들이 대부분 사대부 자제임을 알고 이름도 밝히지 않고 석방시켰다. 그러나 김범우는 지체가 낮은 중인이라는 이유로 모진 고문을 당했다. 형조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자 김범우를 밀양 단장으로 귀양을 보냈다. 그는 유배지에 가서도 큰 소리로 기도를 하고 주변에 전도를 하는 등 신앙심을 키워나갔다. 애석하게도 그러나 고문받을 때 입은 상처가 깊어져 1787년 단장에서 숨을 거두었다. 김범우의 죽음은 천주교가 겪게 될 ‘피의 세례’를 예견하는 것이었다. 한국 천주교가 희생과 순교의 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첫 번째 주춧돌은 마땅히 김범우일 것이다. -본문 17~18쪽 P.124 : 대추 한 알도 이러할진대 풍수원성당이 저절로 생겼을 리 만무하다. 풍상을 견디며 200년 세월을 그 안에 묻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경기도 용인에 살던 신태보는 신자 40여 명과 8일 동안 헤매다 이곳에 정착하였다. 그들은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우며 우리나라 최초로 신앙촌을 일궜다. 그들을 지켜준 것은 신앙심이 유일했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 성직자도 없이 80여 년이나 믿음을 지켰다. 신태보는 훗날 상주 잣골에서 은둔 생활하며 교회 재건 운동을 벌였다. 천주교 서적을 필사하여 나누어 주다가 관헌에게 붙잡혀 전주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그는 옥중수기에 “내 다리는 살이 헤어져서 뼈가 드러나 보였으며, 앉지도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상처는 곪아서 악취를 풍겼고 방은 이와 벌레투성이라서 아무도 근접할 용기를 내지 못하였다.”고 적고 있다. 풍수원성당은 그들이 남긴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선배님이 출판에 뛰어드신 모양입니다. ⁠한 번쯤 누구나 성당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성당에 대한 기억이 새록거립니다. ⁠지난 성당의 기억을 떠올리며 눈오는 겨울 책 한권 펼쳐 보심은 어떠실 런지요.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http://mailnewsday.tistory.com/4100

바닷물속에 녹아있는 2.8%의 소금이 바닷물을 썩지않게 한다고합니다. 세상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2.8%면 충분합니다. 이세상을 아름답게할 2.8%... 우리들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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