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아는 것과 맛보는 것

요즈음은 미술관이 많이 늘어나고 전시회가 많아져서 감상자들로서는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과거와는 달리 수많은 개인전, 그룹전, 교류전, 초대전 공모전 등 전시회가 열리고, 각 대학마다 예술계열의 학과가 늘어나 미술을 공부하고자 하는 기회도 많아졌다. 또한 후원회나 공공기관의 지원으로 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전시공간이나 예술공연장도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전시회가 많아졌다는 것과 그것을 감상하는 일 사이에는 늘 그렇게 화해로운 관계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작품을 자주 대할 수 있어서 좋지만 너무 자주 대하기 때문에 그것을 소홀히 하거나 쉽게 지나 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감상의 기회가 너무 쉽게 주어지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그것을 감상하는 태도가 다소 반복적이거나 습관적인 것으로 보일 때가 많다. 작가의 정열과 고뇌와 정신의 산물인 작품은 아무래도 힘들게 고심하면서, 그리고 생각하면서 즐기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감상이다. 출판인쇄가 발달하고 전시의 기회가 많아져 고금의 작품들을 다시 접할 수 있고 그에 관한 이론도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과 무엇을 '맛본다'고 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다. 예술작품은 그것을 이해하기 이전에 느낄 수 있어야 하며, 내용을 의식하기 전에 거기에 감동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미술작품의 감상은 감상자의 순수하고 선입견 없는 마음의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 지식이나 편견은 작품을 올바로 보는 것을 방해한다. 상을 탄 작품이나 이름난 작가의 작품에만 매달리거나 팜플렛에 인쇄된 평론가의 해설에서 그 의미를 찾으려는 태도는 작품을 주체적으로 보려는 자의 태도가 아니다. 미적 감동이란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고 직접 그 회화나 조각의 기법을 통해 자신이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가끔 꾸르베나 세잔느의 그림은 이해할 수 있지만 니크르송 또는 몬드리안의 그림은 모르겠다고 하는 감상자가 있다. 사람들은 동물이나 산이나 사과가 그려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회화적 언어, 즉 선이나 형태나 색으로 전달받는 데서 기쁨의 의미나 정서가 전달되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작가의 의도이기도 하다. 이때문에 구체적으로 산이나 사과가 그려져 있지 않은 선이나 색에서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이미지나 형태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음과 음의 조화를 거부하고 음악이 성럽할 수 없듯이 회화의 방법은 선, 면, 색채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몬드리안의 그림이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그 그림 속에서 회화 이외의 요소와 관련 지어 연상하려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회화는 그 화면 속에 무엇이 그려져 있는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무엇이 그려져 있는가보다는 어떻게 회화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있는가가 문제이다. 작품 속에서 무엇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거기에 무엇을 부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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