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좋은시-무덤 사이에서/박형준

무덤 사이에서 박형준 내가 들판의 꽃을 찾으러 나갔을 때는 첫서리가 내렸고, 아직 인간의 언어를 몰랐을 때였다. 추수 끝난 들녘의 목울음이 하늘에서 먼 기러기의 항해로 이어지고 있었고 서리에 얼어붙은 니삭들 그늘 밑에서 별 가득한 하늘 풍경보다 더 반짝이는 경이가 상처에 떨리며 부드러운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내가 날려 보낸 생의 화살들을 줍곤 했었다. 내가 인간의 언어를 몰랐을 때 영혼의 풍경들은 심연조차도 푸르게 살아서 우물의 지하수에 떠 있는 별빛 같았다. 청춘의 불빛들로 이루어진 은하수를 건지러 자주 우물 밑바닥으로 내려가곤 하였다. 겨울이 되면, 얼어붙은 우물의 얼음 속으로 내려갈수록 피는 뜨거워졌다. 땅 속 깊은 어둠 속에서 뿌리들이 잠에서 깨어나듯이, 얼음 속의 피는 신성함의 꽃다발을 엮을 정신의 꽃씨들로 실핏줄과 같이 흘렀다. 지금 나는 그 정표를 찾기 위해 벌거벗은 들판을 걷고 있다. 논과 밭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 무덤들은 매혹적이다. 죽음을 격기시키지 않고 삶을 껴안고 있기에, 둥글고 따스하게 노동에 지친 사람들의 영혼을 껴안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봉분들은 밥그릇을 닮았다. 조상들은 죽어서 산사람들을 먹여 살릴 밥을 한상 차려놓는 것인가. 내가 찾아 헤매다니는 꽃과 같이 무덤이 있는 들녘, 산 자와 죽은 자가 연결되어 있는 밥공기와 같은 삶의 정신, 푸르고 푸른 무덤이 저 들판에 나 있다. 찬 서리가 내릴수록 그 속에서 잎사귀들이 더 푸르듯이, 내가 아직 인간의 언어를 모랐을 때 나를 감싸던 신성함이 발 가운데 숨 쉬고 있다. 어린아이들 부산을 떨며 물가와 같은 기슭에서 놀고 농부들이 밭에서 일하다가 새참을 먹으며 죽은 조상들과 후손의 이야기를 나누던 저 무덤, 그들과 같이 노래하고 탄식하던 그 자취를 따라 내 생이 제 스스로를 삼키는 이 심연 속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간다. 겨울이 되면, 저 밭가의 무덤 사이에 누워 봉분들 사이로 얼마나 밝은 잠이 흘러가는지 아늑한 그 추위들을 엮어 정신의 꽃다발을 무한한 꽃다발에 바치리라. 나는 심연들을 환하게 밝히는 한순간의 정적 속에서 수많은 영혼들로 이루어진 은하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내려다보면 지하수의 푸른빛을, 추위 속에서 딴딴해진 그 꽃을 캐서 나는 집으로 돌아가리라. * 박형준 정읍 출생.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同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91년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 하련다』, 『빵 냄새를 풍기는 거울』,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있다』, 『춤』. 산문집 『저녁의 무늬』, 『아름다움에 허기지다』. <동서 문학상>, <현대시학 작품상>, <소월시문학상>, <꿈과 시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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