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를 용서하라는 가르침 가운데 쉽게 오해하는 내용이다. 예수님은 일흔 번의 일곱번이라도 자신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한 편 뺨을 때리면 다른 쪽 뺨도 들이대라는 말씀은 아주 극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향해 용서를 선언하고 큰 사랑을 베푼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을 본다. 이런 용서만으로 모든 게 다 끝나는 걸까? 나는 용서한다지만 나홀로 선언한 용서가 상대방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오로지 나 자신의 평안 외에... 예수님은 형제를 용서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전제가 있음을 말씀하신다. 형제의 회개이다. 그래서 형제의 회개를 위해 '경고'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상처에 대한 이해와 용서의 행위보다 죄를 지은 자의 상태에 더 큰 촛점을 맞추고 계신다. 그를 회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하신다. 뉘우침 없는 용서란 없다. 용서는 죄를 덮는 게 아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 은밀하게 권면할 필요는 있다. 회개를 권면하라는 말씀이 죄를 지은 사람에게 야박하게 대하라는 말씀은 아닌 듯 하다. 하나님의 자비를 우리도 실천해야 한다.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내가 회개했노라' 말하면 용서해주라는 말씀을 바로 이어서 주셨다. 우리는 그 회개의 진정성을 모두 헤아릴 수 없다. 또 모든 인간은 다시 실수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회개의 선언을 모두 받아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태도이리라. 형제의 뉘우침 앞에서는 한 없이 너그러워야 한다.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용서하셨다. (오늘 가정예배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