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축구는 왜 컴플리트 포워드를 원하는가

마르코 반 바스텐(Marco van Basten)(사진1), 안드레이 셰브첸코(Andriy Shevchenko), 디디에 드록바(Didier Drogba),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Zlatan Ibrahimović),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Robert Lewandowski), 디에고 코스타(Diego Costa). 축구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 공격수들은 현대 축구의 대표적인 컴플리트 포워드들이다. 컴플리트 포워드는 공격수에게 요구되는 모든 능력을 두루 갖춘 만능형 공격수를 일컫는 말이다. 골 결정력, 위치 선정, 피지컬, 볼 컨트롤, 속도 등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모든 요소들을 두루 갖춘 선수만이 소화할 수 있는 포지션으로 한마디로 ‘완벽한 공격수’라고 할 수 있다. 컴플리트 포워드들은 공격수에게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갖추어야하기 때문에 세계에서도 몇 명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컴플리트 포워드라고 불리는 선수들은 모두 세계적으로 이름이 나있으며 축구계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빅클럽들이 컴플리트 포워드를 원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현대 축구에서 이렇게나 중요한 컴플리트 포워드들이 어떻게 탄생됐고 왜 현대축구에서 중요한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컴플리트 포워드의 탄생배경은 현대 축구의 전술사와 큰 연관이 있다. 축구 규칙이 현대적인 모습으로 정립된 19세기 중반 이후, 영국의 지도자들은 팀의 조직화를 위해 ‘포메이션’을 도입했다. 이 때 피라미드 시스템(2-3-5)(사진2)이 가장 효과적인 형태로 주목 받으며 1930년대까지 세계 축구의 보편적인 전술로서 꾸준히 이용됐다. 이후 중원을 강화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명장 비토리오 포쪼 감독은 피라미드 시스템을 변형시켜 중원을 강화한 메토도 시스템(2-3-2-3)(사진3)을 탄생시켰다. 피라미드 시스템과 메토도 시스템은 수비에 2명의 선수를 배치하는 것과는 달리 공격에 5명(윙포워드, 인사이드포워드, 센터포워드)의 선수를 배치하는 매우 공격적인 전술이었는데, 이 당시 감독들은 많은 골을 넣어야 경기에서 이긴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공격을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20세기 초 영국 아스날의 허버트 채프만 감독이 피라미드 시스템을 한층 발전시켜 WM 시스템(3-2-2-3)(사진4)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냈다. WM 시스템은 하프백이 아닌 센터백을 만들어 공격진에 5명, 수비진에 5명을 배치함으로써 메토도 시스템보다 안정된 공수 밸런스를 이끌어냈다. 이 시기에 많은 팀들이 WM시스템을 사용했기 때문에, 경기가 주로 대인대결로 이루어졌다. 이후 1950년대에 헝가리의 구스타프 세베스 감독이 WM 시스템의 파해법으로 MM 시스템(사진5)을 완성시켰다. WM 시스템을 사용하는 팀끼리의 대결에서는 대인방어로 경기가 이루어졌지만, MM 시스템을 통해 2:1, 3:1과 같은 수적 우위를 확보함으로써 상대 팀의 1:1 체제를 무너뜨렸다. 또한 세베스 감독은 공격진에 ‘포지션 체인지’라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시켰다. 한편 이를 본 브라질에서는 이 전술을 연구한 끝에 “포지션 체인지는 대인방어가 아닌 지역방어로 대처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했고, 그렇게 나온 것이 브라질의 페올라 감독이 완성시킨 4-2-4 시스템(사진6)이다. 4명의 수비수를 포진시켜 지역방어 체제로 가면서, 2명의 미드필더를 상대 진영과 자기 진영을 부지런히 오가는(지금의 박스투박스 미드필더) 움직임을 통해 공수 양면에 걸쳐 수적 우위를 만들어냈다. 이것으로 브라질이 세계정상에 오르면서, 유럽의 여러 팀들은 WM시스템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4-2-4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헝가리의 벨라 구트만 감독은 이 전술로 포르투갈의 벤피카를 챔피언스컵 2연패로 이끌었다. 하지만 일찍부터 수비적인 전술로 ‘이기는 축구’를 표방해 온 이탈리아는 공격적인 4-2-4를 받아들이지 않고 인테르 나치오날레의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을 중심으로 독자적으로 4-2-4의 파해법을 연구했다. 그 해답으로 ‘대인방어와 지역방어의 혼합’을 내세운 결과 “빗장으로 골문 앞을 걸어 잠근다”는 뜻의 ‘카테나치오(Catenaccio)’(사진7)가 탄생한다. 에레라 감독은 4-2-4의 공격수 4명을 수비수 4명에게 대인마크를 시키고 최후방에 이탈리아어로 자유인이라는 뜻의 ‘리베로(Libero)’를 추가로 배치해 수비 시 2:1의 수적 우위를 만들어 내거나 유사 시 커버 플레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리베로의 존재로 인해 에레라 감독의 인테르는 1-4-3-2(5-3-2) 혹은 1-4-4-1(5-4-1)과 같은 형태를 나타냈다. 거칠고 스피드 위주인 유럽 국가들은 두 명의 미드필더만으로 공수 밸런스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로 인해 1960년대 중반, 4-2-4에서 미드필더 한 명을 늘린 4-3-3형태(사진8)가 유럽 팀들에게 보편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반면 이탈리아는 1960년대 후반 들어 세계 축구의 패러다임이 4-3-3쪽으로 흘러가자 1-4-3-2(혹은 1-4-4-1)포메이션을 사용하던 카테나치오를 1-3-3-3으로 변형시켰다(공격수가 3명이므로 수비수를 5명이나 둘 필요가 없었다). 같은 4백이지만 최후방에 리베로를 두는 카테나치오 전술로 1-3-3-3과 같은 형태를 나타냈다. 하지만 1970년 월드컵 결승에서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창과 방패’의 대결에서 이탈리아가 브라질에게 4:1로 대패를 당하면서 카테나치오는 급속도로 쇠락하기 시작한다. 반면 네덜란드는 헝가리와 브라질의 공격적인 전술을 적극적으로 도입, ‘토털풋볼(네덜란드어로 Totaalvoetbal)’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며 1970년대를 지배한다. 토털풋볼은 네덜란드의 아약스가 이탈리아 카테나치오의 인테르 나치오날레를 완파하고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 등장했고, 이 토털풋볼은 1974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가 사용하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토털풋볼을 완성시킨 리누스 미헬스 감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최고의 공격축구를 현실로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럽 선수들은 브라질 선수들과 같은 화려한 개인기를 구사하기 힘들었고, 그로 인해 유럽의 전술적 트렌드는 ‘수비’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헬스 감독은 이 흐름을 공격축구로 되돌려놓기 위해 ‘전진 수비’를 해답으로 내놓았다. 4백 라인을 끌어 올려 라인 사이의 간격을 최대한 좁히고 전방에서부터 상대를 강하게 압박함으로써 경기 주도권을 보다 효과적으로 장악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또한 미헬스 감독은 이러한 압박을 통해 급격히 소모될 수밖에 없는 체력을 짧은 패스를 통한 높은 점유율로써 안배하려 했다. 이러한 토털풋볼의 영향을 받아 유럽 축구의 트렌드는 다시 수비축구에서 공격축구로 변화한다. 이후 1980년대 들어서는 미드필드 싸움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4-3-3의 공격수 한 명을 줄이고, 그 대신 미드필더 한 명을 늘린 4-4-2(사진9)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는다. 이것이 축구전술에서 대표적인 포메이션이라 불리는 4-4-2(four-four-two)시스템이다. 브라질은 이 당시 4-4-2시스템을 변형시켜 4-2-2-2를 완성시켰으며, 이 전술은 최근까지도 브라질 대표팀의 트레이드마크로 남아있다. 1980년대 초반의 4-4-2는 4-1-3-2에 가까운 형태였다. 플랫 4-4-2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다. 플랫 4-4-2가 강한 압박을 시도하기에 가장 유리한 포진이라고 생각한 AC 밀란의 아리고 사키 감독은 토털풋볼에서 영감을 받아 압박 전술을 완성시켰다. 이렇게 등장한 4-4-2와 함께 80년대 중후반을 지배한 또 하나의 전술이 바로 3-5-2(사진10)였다. 4-4-2의 2명의 공격수를 상대로는 3명의 수비수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수비진을 2명의 스토퍼와 1명의 리베로로 3백을 구성하면서 좌우 윙백을 더욱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3-5-2가 새롭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전술적 흐름은 4-4-2와 3-5-2의 대결 구도로 압축된다. 이 양상은 1990년대 중반 혹은 그 이후까지도 지속됐는데, 결국 승리를 차지한 쪽은 4-4-2였다. 빠른 공수전환이 반복되는 동시에, 강한 압박이 중요시되는 현대축구의 흐름 속에서 리베로를 최후방에 배치하는 3-5-2가 더 이상 경쟁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 그 이유였다. 3-5-2를 고집하던 독일과 아르헨티나는 1994년, 1998년 월드컵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다. 1990년대 후반 들어 미드필드 싸움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됐고, 그로 인해 4-4-2를 대신하여 4-5-1(4-2-3-1)이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 이는 4-4-2에서 공격수의 숫자를 한 명 줄이는 대신,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미드필드 장악력을 최대한으로 높인 전술이었다. 이는 1970년대의 4-3-3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모습을 보였다. 1970년대 토털풋볼의 등장 이후 현대축구는 ‘수비’보다 ‘공격’에 많은 비중을 두고 발전해왔다. 1980년대 후반, ‘가장 발전된 형태의 공격축구’를 위해서 압박수비를 사용한 것을 보면 수비도 효율적인 공격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후 1990년대 후반 오프사이드 규정이 공격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새롭게 개정되면서 ‘수비’에 대한 전술연구가 이루어졌고 전술에서 ‘수비’의 비중이 높아졌다. 그리하여 몇몇 팀들은 전진 형태의 압박수비보다는 후퇴하여 골문 앞을 지키는 밀집수비에 많은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득점하는 것’보다는 ‘실점하지 않는 것’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췄고, 압박수비가 아닌 밀집수비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이후 2000년대로 들어와 유로 2004에서 약체인 그리스가 수비축구로 우승을 하면서 수비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이후 2010년으로 들어서면서 현대축구에서는 압박수비와 함께 점유율축구가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많은 팀들이 미드필드에서 수적 우위를 가져가려고했고, 이를 위해 4-5-1을 바탕으로 한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현대축구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펩 과르디올라, 유프 하인케스, 위르겐 클롭, 조제 무리뉴, 안드레 비야스보아스, 브랜단 로저스 등이 모두 4-5-1을 바탕으로 한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이렇게 ‘수비’와 ‘미드필드 싸움’이 현대 축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면서 공격의 비중과 공격수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다. 현대 축구에서는 ‘원톱’을 사용하는 전술을 많이 이용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제로톱(펄스나인, False 9)’을 활용한 전술도 탄생했다. 이렇게 공격수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공격수 한명의 역할이 상당히 커졌고, 공격수들에게는 공격수가 가져야 할 모든 능력들 뿐만 아니라 압박수비를 위한 수비력이나 다른 능력들도 요구됐다. 컴플리트 포워드가 필요해진 것이다. http://blog.naver.com/classikez/220249250885 이 링크로 오시면 더 쉽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컴플리트 포워드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참고자료 및 사진출처 - 네이버 블로그, '공격수' : 컴플리트 포워드 Complete Forward, 길안, 2014. 6 (http://blog.naver.com/bergmahn/220038247068) - 네이버 캐스트, 월드컵 대백과, 월드컵 전술사 Ⅰ, 이형석, 2010. 5 - 네이버 캐스트, 월드컵 대백과, 월드컵 전술사 Ⅱ, 이형석, 2010. 5 - 네이버 캐스트, 월드컵 대백과, 월드컵 전술사 Ⅲ, 이형석, 2010. 7 - 마르코 반 바스텐(Marco van Basten) - www.tgcom24.mediaset.it

축구에 대한 열정 그리고 일상생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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