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좋은시-시체놀이/김선우

시체놀이 김선우 배롱나무 아래 나무 벤치 내 발소리 들었는지 딱정벌레 한 마리 죽은 척 한다 나도 가만 죽은 척하나 바람 한소끔 지나가자 딱정벌레가 살살 더듬이를 움직인다 눈꺼풀에 덮힌 허물을 떠어내듯 어설픈 움직임 어라, 얘 좀 봐. 잠깐 죽은 척했던 게 분명한데 정말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것 같다 딱정벌레 앞에서 죽은 척했던 나는 어떡한담? 햇빛이 부서지며 그림자가 일렁인다 아이참, 체면 구기는 일이긴 하지만 나도 새로 태어나는 척한다 햇빛 처음 본 아기처럼 초승달 눈을 만들어 하늘을 본다 바람 한소끔 물한 종지 햇빛 한 바구니 흙 한 줌 고요 한 서랍…… 아, 문득 누가 날 치고 간다 언젠가 내가 죽는 날, 실은 내가 죽는 척하게 되는 거란 걸! 나의 부음 후 얼마 지나 새로 돋는 올리브 잎새라든지 나팔꽃 오이 넝쿨 물새 알 산새 알 같은 게 껍질을 깰 때 내 옆에 있던 기척들이 소곤댈 거라는 걸 어라, 얘, 새로 태어나는 척하는 것 좀 봐! * 김선우 강릉 출생.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1996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의 사물들』. 전래동화 『바리공주』.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 』. <현대문학상>, <천상병시상>, <이육사문학상>, <한국여성문예원 올해의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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