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향이든, 사랑에는 보증이 필요하다

골드바흐의 추측이라는 것이 있다.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표시할 수 있다"라는 주장인데 현재까지 증명되지 않았다. 수학자들이 열심히 달려든 결과 아직까지는 이 추측을 반박하는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4 = 2+2 6 = 3+3 8 = 3+5 10 = 3+7 = 5+5 12 = 5+7 14 = 3+11 = 7+7 16 = 3+13 = 5+11 18 = 5+13 = 7+11 20 = 3+17 = 7+13 이런 수학자들의 증명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한 천재가 등장했으니, 그가 괴델이다. 그가 밝혀낸 것은 다음과 같다. <참일지라도 그 체계 내에서는 증명이 불가능한 명제가 존재한다.> 그냥 쉽게 말하면 증명 불가능한 명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괴델의 (제1) 불완전성 원리라고 부른다. 증명 불가능성의 선언은 수학자들에게 재앙이다. 골드바흐의 추측이 옳다/틀리다를 증명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시절, 수학자들은 자신의 인생을 그 해결을 위해 바칠 용의가 있었다. 어떻게든 옳거나 그른 것으로 결판이 날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괴델은 '아무리 노력해도 애초에 증명 불가능한 것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가혹하게도, 골드바흐의 추측이 그 증명 불가능한 것인지 증명 가능한 것인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이제 수학자들은 원칙적으로 증명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문제를 증명하려고 해야 한다. 불완전성의 원리로 인해 어지간한 각오로는 난제의 증명에 도전하기 힘들어져 버렸다. 우리도 어떤 퀴즈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이 답이 있다는 보증이 필요하다. 추리소설을 흥미진진하게 읽는 이유는, 작가가 끝부분에서 모든 미스터리를 속시원하게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신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문제집의 답안지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그 문제집을 풀 의욕은 급격히 저하된다. 자신이 문제를 풀어서 답을 적어도 그것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영원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맞았든 틀렸든, 둘 가운데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보증이 필요하다. 하여, 사랑에도 보증이 필요하다. 사랑을 유지하는 데는 '언젠가는 상대가 나를 좋아해줄 것'이라는 보증이, 사랑을 단념하는 데는 '상대가 나를 영영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이 필요하다. 이러한 보증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사랑은 유지되지 못하고, 단념되지 못한다. 지고지순한 짝사랑은 다르지 않냐는 항변에 대해서는 미안하지만, 다르지 않다. 짝사랑도 결국 '언젠가는 상대가 나를 좋아해줄 것'이라는 마음에서만 가능하다. 짝사랑을 실패한 후 아무 죄 없는 상대를 원망하는 것은, 그가 나를 좋아해줄 것이라는 자신의 망상을 현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짝사랑의 대상은 날 희망고문하다 배신한 썩을 놈 혹은 쌍년이 되는 거다. 사실 그는 그런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쯤에서 마지막으로 아는 척을 하겠다. 좋아한다는 뜻의 like와 사랑한다는 뜻의 love는, 각각 고대 영어의 lician과 라틴어 lubet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이 둘의 의미는 모두 '즐겁게 하다'라는 뜻이다. 속뜻을 파헤치자면, 우리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사랑이란 감정이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는 데서 오는 즐거움에서 유래했기에 '그가 날 사랑하지 않아도 난 사랑할 수 있어요'는 사랑에 대한 헛된 망상이자, 사람에 대한 지나친 기대다. 풋풋한 학창시절, 우리는 사랑의 신성함을 믿고 사람의 애타심을 믿는다. '상대가 날 사랑하지 않아도 난 사랑할 수 있어!'라는 마음을 먹는다. 터무니없는 망상이자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다. 그래서 우리는 겁없이 짝사랑을 감행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실패한다. 그래. 이런 시절도 있어야지. 그래야지. 내게도 있었으니,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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