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여덟 잔. 미궁(Labyrinth) - 2

미용실은 특유의 약품냄새와 함께 브라이언 맥나잇의 〈Back at one〉이 흘러나왔다. 까마귀 한 마리가 다가와 자리로 안내했고, 잡지 한 권을 건넸다.

'현대사회에 필요한 테세우스의 지혜'란 칼럼을 반정도 읽었을 무렵,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잡지를 빼앗았다. 그리고 익숙한 동작으로 흰 시트를 펼쳐 나를 감쌌다. 바깥 날씨와는 대조적으로 시트는 햇살을 가득 머금은 듯 몹시 포근하고 부드러웠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알아서. 적당히 잘라주세요."

'적당히'란 단어 때문일까? 고양이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가위질을 시작했다. 어깨 위로 떨어지는 머리 뭉치. 코끝을 간지는 머리카락. 귀를 스치는 가위의 날카로움. 그리고 머리를 만지는 고양이의 손길은 사라진 S를 떠올리게 했다.

침대에서 사랑을 나눈 후 미소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던 S의 손길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살결이......왼쪽 날개뼈 부근에 물든 분홍색 반점이......그리고......

"머리 감겨 드릴게요."

다시 눈을 떴을 때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고, 대신 까마귀(처음 자리에 안내해준 그 까마귀인지 아니면 다른 까마귀인지 헷갈렸다.)가 서있었다.

"저기, 고양이는 어디로 갔나요?"

까마귀는 대답없이 나를 의자에 눕히고 물을 틀었다. 미적지근한 물이 머리를 두드렸다.

"물 온도는 적당하신가요?"

"네. 그보다 고양이'씨'는......"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까마귀는 공장의 기계처럼 일관된 행동으로 머리를 감겼다. 전두. 정수리. 후두. 측두. 다시 정수리. 바짝 붙은 까마귀의 부푼 가슴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랫도리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막기위해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칼럼 제목이라든가 어디론가 사라진 고양이씨라든가…… 고양이’씨’?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앉으시겠어요?"

까마귀는 머리의 물기를 대충 닦아준 뒤 자리로 안내했다. 시트를 씌워주고 점점이 멀어지는 까마귀의 행동은 너무나 깔끔해 소름이 끼쳤다. 그 모습은 마치 컨베어벨트에 올려진 캐리어처럼 보였다. 공항에서 주인을 잃은 캐리어가 영원히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 듯 까마귀도 이 곳에서 계속해서 누군가의 머리를 감기고 안내하고 돈을 받고…… 이 또한 참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시트 곳곳에 투명한 회색 자욱을 남겼고, 난 멍하니 그 자욱을 응시한 채 잡지에 실렸던 칼럼의 제목을 생각하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잠시 뒤 고양이'씨'가 다가와 드라이를 해주었고, 마침내 시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까마귀가 웃으며 말했다.

"10,000원입니다."

그 미소가 소름끼치도록 낯이 익었다.

꿈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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