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좋은시-황홀한 결별/도종환

황홀한 결별

도종환

이 세상에서 가장 샛노란 잎 한 장씩 내려 지붕의 반쪽을 덮고 나머지 반은 당신 가실 길에 깔아놓고 있는 은행나무를 향해 누가 바이올린 소리를 들려주면 좋겠어요 은행잎이 떨어지면서 긋는 음표의 곡선들을 모아 오선지에 오려 붙이며 당신을 생각했지요 가장 황홀할 때 결별하는 은행나무 밑에서 이 음악이 완성되면 어긋나는 우리의 운명도 아름다운 풍경이 될 것 같아서요

떡갈나무 잎 떨어져 날리는 동안 바람은 몸을 부벼 첼로의 낮은 음을 만들고 나는 그 소리에 내 비애의 키를 한 옥타브 내려 맞추었어요 내 슬픔은 비명소리보다 낮은 음에 더 잘 어울리거든요

오늘은 내 슬픔보다 더 많은 산벚나무 팽나무 갈참나무 작은 잎들이 결별하는 날 오후 내내 리끼다소나무 잎들이 금빛 실비를 지상에 뿌리며 흐느껴 우는 날 나는 비처럼 내리는 초독楚毒을 향해 은빛 금관악기를 불었어요 내 어깨 내 손등을 바늘 끝으로 찌르며 쏟아지는 아픈 모음들

그러나 나는 파멸보다 먼저 가을이 찾아오고 노을이 아직도 내 한쪽을 불태우고 있을 때 이 산의 나무들과 내게 이별이 찾아온 걸 고맙게 생각했어요 이렇게 서서 이별의 끝을 향해 걸어가는 그대를 향해 경배하는 오늘은 이 산의 모든 나무들이 나뭇잎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날

* 도종환

청주 출생. 1984년《분단시대》로 등단. 시집 『두미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람의 마릉에 꽃이 진다』,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그대 가슴에 뜨는 나뭇잎배』,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모과』,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동화『바다유리』. <민족예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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