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과 진동. 배려와 불신

참 아무렇지 않게 '배려'라는 말을 쓰곤 한다. 연인에게, 혹은 친구에게 '너는 배려심이 부족해', '조금만 더 서로 배려해주자' 라는 말로 어떤 규정된 울타리를 지어두고서 때로는 '규정을 지키지 않을 시 이 곳에서 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라는 암묵적인 전제를 깔아둔다.

몇 주 전에 '뮤틀리'라는 앱을 구글마켓(잠깐 홍보좀..(긁적)http://goo.gl/6ooqAr )에 출시했다. 보통 UX설계라고 불리는 나의 일. 그것이 내포하는 애매할지도 모를 수많은 일들 중 하나는 해당 어플리케이션의 실제적인 기능이 어떤 가치를 품고/지향하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면 사람들이 제대로 그 가치를 체감할 수 있을지, 전달형태를 고민하는 일종의 무대 연출가와 같은 일이다. 몇 가지 큰 기둥을 적절하게 세우는 일.

뮤틀리는 위치기반 자동무음앱이다. 사람들이 무음을 사용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주요한 물리적 척도인 공간과 시간 중 공간과 관련된. 무음이 필요한 곳, 주로 공공장소를 타겟으로 하여 그 공간에 들어서면 무음, 나가면 자동으로 해제가 되는 기능. 이것이 내포하고 있는 현실세계와 사람들의 사이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가치들 중 하나는 공공장소에서 규칙된 질서와 당위성을 실수없이 대신 지켜주는 데에 있다. Wifi나 GPS를 꺼두어도 문제없이 동작하기 때문에 그 간편함에서 오는 편리함 또한 그에 한 몫할 것이고. 때문에 주요한 잠재적 타겟 중 하나는 도서관(혹은 열람실)이었다. 앱의 형태를 구체화 하기 위해, 또 사용자에 대한 신뢰성 있는 귀납을 위해 시행한 인터뷰에서 생각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열람실에서도 진동을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핸드폰은 무음 또는 꺼주세요'. 낯익은 글귀임에도 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연락이 오면 받아야 하잖아요? 난 진동을 해놔서 별로 피해가 가진 않는 것 같아요. 진동도 약하게 해두는 편인데?". 입가에 가득 묻은 초콜릿을 미처 어찌 하지 못하고 손에 든 남은 초콜릿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한 꽤나 강경한 어투로. 열람실, 무음 따위의 키워드로 구글링을 해보면 진동사용자에 대한 분노의 글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수로 울리는 벨소리보다 진동에 더 민감한 분노를 느끼는 일화는 오히려 보편에 가깝다. 미미한 그 진동은 귀에 거슬린다기보다는 신경에 거슬린다. 물리적 데시벨 자체보다는 크게 조심하지 않는 듯한 그들의 태도. '내'가 규정한 울타리의 바깥에서 내 울타리를 간간이 부수어가며 멀쩡하게 걸어다니고 있는 그들. '왜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지?' 사실 앱을 연출하려는 입장에서 좋지만은 않은 부분이다. 뮤틀리를 많은 이들이 쓴다면 좀 더 공익에 가까운 토양이 만들어질텐데, 공익적인 토양에 방해가 되는 무리들, 뮤틀리의 계획에 참여시키고픈 바로 그 진동사용자들은 정작 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니.

배려. 사전적 정의로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 사람으로서 가져야할 덕목 중 하나. 이것이 없는 사람은 자신밖에는 모르며, 독선적인 행동만 해서 민폐를 끼친다'. 도서관에서의 진동/무음에 관한 배려라면 어렵지 않게 수용할만 한 이야기이다. 많은 이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기도 하고, 그 징표로 '핸드폰은 무음 또는 꺼주세요' 가 적힌 A4용지가 붙어있는 광경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니. 하지만 그 기준이 합의되지 않은 경우라면 누군가가 독선적이라고 하는 것은 누가 기준짓는가. 스스로는 '내'가 항상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아닌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나'는 누군가에게 자기중심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사실 명확한 기준을 지어주는 기계가 있으면 어울리지 않게 '편리'는 할텐데. 마치 그건 회사에서 틈만 나면 교육해대는 애매한 성추행의 그것과도 닮았다.

또 하나 새로이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생각보다 많은 수의 20대가 항상 무음을 해두는 이용자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벨소리, 진동, 무음을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부류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일반화하는 경향은 자연스러운 오류 중 하나. 나 또한 나 같은 부류의 사용자가 대부분일 것이라 생각했으나(사실 그보다는 별 생각이 없었다에 한 표 주고 싶지만) 결과는 나의 패배. 항상 진동/무음을 해 두는 사용자들이 더 많았다. 답답해하는 상대방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필요할 때 내가 연락하면 되니까. 우리 어머니께서는 '개념이 부족하다'라는 표현을 쓰셨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부재 중 통화를 보고 내가 전화를 걸면 그것이 곧 자신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 되며 또한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는 '개념이 부족한' 현상이라고 말하셨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연락을 받기 싫은, 시도 때도 없이 범람하는 타인과의 신호에 항상 응하고 싶지는 않은, 나의 간격을 보장받고 싶은 욕구에 좀 더 집중하는 거라면 어떻게 할텐가? 결국 현대가 만들어 낸 새로운 패턴, 어쩌면 세대차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지 모를 조금은 이질적인 무언가가 탄생해버리는 것으로 어머니와의 대화는 끝이 났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것을 '차가운 배려'라고 불러왔다. 자신의 무언가를 보장 받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간격을 두어 주는 배려. 방해받기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연락을 하고 그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을 받고 싶어하는 것 자체가 '공격'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런 나를 참는 것. 결국 그 사람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해주는 것이 제대로 된 배려라고 생각하지만.. 그 주파수를 맞추는 일은 여간 혼란스러운 일이 아니다. 개개인이 아니라 좀 더 큰 틀의 측면에서,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합의, 라는 측면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지도 모르지만.

사용자가 어떤 물건을 사용하는 데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은 그것이 진짜로 복잡하고 너무 어렵다, 라기보다는 사용자가 기대하는 혹은 머릿속에 담아 두고 있는 어떤 기능이나 개념에 대한 모형과는 다른 사용경험을 주기 때문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 그래서 사용자 경험 디자인에 있어서 '직관적'이라는 키워드가 빠지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 사람과 물건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1:1의 관계에서는 특히나 기준을 명확하게 하기가 쉽지 않아서 친구나 연인 관계에서는 유난히 이런 종류의 싸움들이 잦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불편한' 부분들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차라리 거리가 먼 타인은 그만큼 거리를 두면 편한데. 처음의 그 작은 틈은 상당히 높은 확률로 결정적인 파국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별한 연인들, 혹은 다툰 친구에게 무엇이 문제였냐고 묻는다면 아마 제각각의 입장에서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것들이 모두 불신에 대한 이야기다. 공감의 부재. 사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다름을 수긍하고 어느 정도는 포기한다는 과정이 깃들어 있다. 자신의 입장을 내세워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는 일들. 이런 것들이 많은 종류의 불신을 낳는다. 하지만 자신이 세운 대립각 또한 타인을 해하려는 의도가 아닌 경우도 많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어버리는 (좀 더 많은 이야기들을 쓰고 싶지만 무리한 설 일정으로 졸음이 몰려온다..). 많은 이들이 민감해하는 부분이지만, 사회적인 영역에서도.,정치적인 영역에서도, 종교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의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피해자가 가해자이며 동시에 가해자가 피해자이다. 개인적으로 세월호 사건은 물론 당사자들에게도 너무 큰 실질적 비극이었지만 앞서 언급한 측면에서 '불신의 집합체'를 보여준 너무나 안타까운 사례였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각계 각층에서 서로의 불신이 빚어내는 많은 사건들과 집단적 절망. 그만큼 지금의 사회가 타인을 이해하고 대화할만한 여유를 갖추기 힘든 형태구나. 물론 나부터가 그렇다. 자기 한 몸 챙기기도 벅차다. 예에엣날의 어떤 고리타분한 말을 하자면..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라고 황희정승님이 말씀하셨다. 하하..

사실 사람들은 서로 많은 생각을 나누고 교감하며 비슷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각각의 사고경험은 굉장히 다를 수 있다. 빛으로 구성된 같은 세계 속에서도 두 개인 인간의 눈, 수만개에 달하는 벌의 눈, 그 둘이 주는 감각경험은 상당히 다를 것이다. 사람들 간의 사고 경험 또한 그만큼이나 상이한 경험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조별회의를 마친 후 조장이 말한다. "자, 이제 각자 할 일 다 합의됐죠? 다음주 월요일까지 맡은 파트 해 옵시다" ,"네~" 불성실과 프리라이더를 제외하더라도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결과물이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나오는 일은 보통이다. "아 이게 아니잖아. 우리 다 얘기 합의한 거 아니었나? 왜 이렇게 했지? 다시 하자." 하지만 그 같은 '다름'을 이해하려는 여유를 가지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나 같은 보통사람에게는 특히나. 같은 단어를 쓰고 같은 언어를 쓰고 있지만 우리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합의된 규칙 위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찌보면 굉장히 오만하고 아찔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각에 잡아먹히면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게 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고민을 통해 만들어낸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고, 그 선택을 확신하고 부딪혀나가면서도 함부로 자신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약간은 진부한 마무리로 정리.

espresso haus는 분위기는 좋은데 늦은 시간까지 북적거려서 항상 갈까말까 하게 되는 카페다. 2층이라 그런지 오늘은.. 유난히 벨소리와 진동이 많이 울려서 뮤틀리를 다 깔게 해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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