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넷 잔. Story of Picture - 10(完)

달그랑.


문이 열리고 중년의 남성이 카페에 들어섰다. 제럴드는 이야기를 중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자리를 떠나려는 그를 붙잡고 물었다.

"그래서 그 남자는 그녀를 만났나요? 그 다음은요?"

제럴드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손님이 와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해야겠네요. 죄송합니다."

"잠, 잠시만요."

제럴드는 곧장 bar로 돌어가 손님을 맞이했다. 맥이 빠진 나는 잠시동안 그림을 주시하며 뒷면에 새겨진 짧은 시를 되내어 보았다.

'......그저 가만하 걸어가리. 소녀의 두 뺨은 가을 노을만큼 붉으리.'

"괜찮은 그림이죠?"

"네?"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방금 카페에 들어온 남자였다. 이야기를 도중에 그만두게 만든 장본인이란 생각이 들자 그를 곱게 볼 수가 없었다.

"뭐, 그렇죠."

남자는 나의 퉁명한 대답에도 묵묵히 웃으며 그림을 감상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작은 소리로 새어나오는 시구를 들을 수 있었다.

"소녀의 두 뺨은 가을 노을만큼 붉으리."

"어떻게 그 시를......"

"그쪽도 아시나요?"

"네. 방금 전 그림에 얽힌 사연을 듣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제럴드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남자는 작은 에스프레소 잔을 들어 입술을 적시고 다리를 꼬았다.

"음. 그렇군요.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으셨군요."

남자는 다시 한 번 그림을 주시했다. 그 사이 나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7:25. 약속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남자의 입이 열린 것은 5분이 지나서였다.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병원을 퇴원한 남자는 수소문 끝에 여자를 찾아가죠. 하지만 여자는 이미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고민을 했죠. 잠깐이라도 좋으니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야할지. 아니면 그녀의 행복을 위해 이대로 사라져야할지. 결국 남자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네? 남자는 그럼?"

"남자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죠. 자신이 갈만한 곳은 그 곳 뿐이었으니까요. 남자는 재활 훈련 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은 오직 갈대밭이었죠. 노을에 물든...... 그리고 5년 후 저기 저 그림을 남긴 채 돌아가셨어요."

"그렇군요...... 그럼 그 때 시도 쓰여진건가요?"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시는 남자가 쓴 것이 아닙니다. 남자의 유서에는 마지막 그림을 그녀에게 보내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담당의는 그림을 여자에게 보냈죠. 그리고 그림을 받은 여자가 그림의 뒷 면에 시를 적은 것입니다."

"그럼, 저 그림은 어떻게 이 곳에 있는거죠?"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이 카페의 주인이 워낙 발이 넓어 구했을 수도 있겠네요." 우린 마주보고 웃음을 나누었다. 시간은 어느새 7:40을 넘기고 있었다. 나는 부랴부랴 겉 옷을 걸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기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또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네. 저도 그랬으면 좋겠군요. 아 참. 그 이야기를 못 드렸군요."

"네? 무슨?"

"그림에 적힌 시에는 다음 구절이 있답니다. 제가 적어 드리죠. 가시는 길에 읽어보세요."

남자는 펜과 메모지를 꺼내어 재빠르게 글씨를 써내려갔다. 나는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카페를 나섰고, 지나가던 택시를 붙잡아 탔다. 약속 시간까지 10분이 채 남지 않았지만 택시를 타서일까? 마음은 급하지 않았다. 나는 주섬주섬 남자가 건넨 메모지를 꺼내었다. 그 메모지에는......

바람이 분다.

등을 돌려 붉게 물든 갈대를 지켜본다.

붉은 물결을 헤치고 다가오는 이는 누구인가?

아무래도 좋다.

오늘은 그대와 함께 해변을 거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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