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정주영 아저씨의 럽흐 스토리를 보면서
진짜 저게 사실이라면 순수럽흐 로맨티스트는 故정주영 아자씨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져
그렇게 그 아자씨에 대해 멋힛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둥! (엄마아빠몰래 눈시울을 붉히면서 감통받아씀 ^.^;;;;저런남자 멋힛어 꺄호~이러면서요 ㅋㅋ)
이아자씨 자세히 보니 나름 자장구 매니아였음.+_+/
자전거를 매우 조아하는 저로선!! 시간이 있는 틈을 이용해 찾아봤어요. +_+///
우선 아자씨 이야기를 해보면
1915년 11월25일 강원도 통천에서 6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남.
3년 동안 서당에서 한문을 익히고 소학교에 들어감 (소학교... 올드하당;; 국사책에서만 봤던 소학교ㅋㅋㅋ) 전교 2등으로 졸업했는데 붓글씨 쓰기와 창가를 못해 그렇지 학과 공부는 1학년에서 3학년으로 월반할 만큼 잘했다고 하는데 이건 .. 그냥 믿거나 말거나 아님?
한 번 쯤은 공부들 다 잘해 봤다고 하니 ㅋㅋㅋ 시골학교잖소? 우리도 할수 있음! +_+;;;;;;;;
암튼 상급학교에 진학해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지만 가난했던 집안 형편상 꿈은 한낱 꿈으로 끝났다고해요.. ㅠㅠ 흑흑 ㅠㅠ 아자씨 불쌍..
아무리 해도 가난을 못 면할 것 같은 농사일에서 벗어나려 가출했다 잡혀오기를 세 번,열아홉 살 때 도망에 성공 !
그의 첫 취업은 복흥상회란 쌀가게에 취직했는데 자전거를 탈 줄 몰라 혼쭐이 났다고 해요.
자전거를 못탄다는 말을 못해 비 오는 날 자전거에 쌀가마니를 비끄러맨 채 끌고 나섰다고 해요. 결국 고객의 쌀과 팥이 다 망가지는등 자장구를 못타서 고생을 .. 또르르르르
그날 밤 선배 배달꾼에게 자전거 쌀 배달의 기술과 요령을 배워 내리 사흘 동안 거의 밤잠을 안 자고 배달 연습을 했다면서
정주영 아저씨 평생을 쌀가마 배달하는 자장구 타는 것처럼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고 해염
그렇게 일한 결과 2년 만에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았으나 중 · 일전쟁 발발로 문을 닫았음... 안까비....
40년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열었지만 잔금 치른 지 닷새 만에 불이 났다는 슬픈 사연도 있었음. 이렇게 위대한 사람도 항상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였네염
(요즘 다들 힘든데 힘내요 우리...)
암튼 그 이후 자장구를 타면서 배달을 해서 그런지 결국 바퀴 사업인 1946년 봄 현대자동차공업사 간판을 걸었다고 해염.
정주영아자씨의 기초체력은
아마 자장구로 부터 시작했을지 모르겠어요.
좀 쌩뚱맛지만... 그래서 앞으로도 열심히 자장구를 타야겠어요
함께하실꺼졍?
이건 진짜 모르는 거임.. 빙글라이더 중 나중에 위대한 세계적인 기업가가 나올지도 모름
미래의 주인공은 자전거를 조아하면서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일지 모름 ㅋㅋㅋ
암튼 우리 모두 열심히 자장구타요 +_+//
사진참고자료: 문화일보, 한국경제, 오마이블로그
저 짐 자장구 아산병원 전시관에 전시되어있데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