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가 없으면 글을 쓸 수 없다"

나는 허구한 날 백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글이 써지지 않았다. 첫문장은 고사하고 무엇을 써야할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분명한 것은 무언가를 써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럴 때는 오히려 글에서 잠시 멀어지는 편이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며칠간 거리를 서성거렸고 공원의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그 시간동안 나는 아무런 의미도 건져내지 못했다. 나는 매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채 저녁밥을 축내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는 어부와 같았다.


어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글을 쓴다는 것은 물고기를 잡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내 무의식에 밑밥처럼 몇 개의 단어들을 던진다. 그러면 물고기떼들, 그러니까 생각들이 그 단어들에 달라붙기 시작한다. 그 가운데는 그럭저럭 알이 굵은 놈들도 있고 피라미처럼 쓸모 없는 놈들도 있다. 가장 좋지 않은 경우는 예전에 잡았던 물고기들이 잔뜩 모여들 때다. 그러면 내 소중한 밑밥들만 소모될 뿐이다. 아무튼 어느 정도 씨알굵은 물고기들이 달라붙으면 나는 그물을 던져 그것들을 잡아들이면 된다. 그렇게 한 편의 글이 완성되는 것이다.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시가가 없으면 글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시가가 타는 시간은 일종의 유예이고, 시가에 불을 붙이는 행위는 스스로에 대한 협박이다. '시가가 완전히 타서 사라지기 전까지, 너는 적어도 첫 문장을 떠올리는 편이 좋을걸. 왜냐하면 흡연의 효과는 시간이 갈수록 감소하니까.' 하지만 시가를 빨아들이면 니코틴이 온몸에 스며들면서 글을 적어야 한다는 의지가 옅어지기 시작한다. 글을 적지 않고 그저 시가만 피워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중에는 후회하게 된다.


코카인 중독자이기도 했던 프로이트는 피나는 노력으로 코카인을 끊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담배는 끊을 수 없었고, 마침내 턱에 암이 생겨 인공 턱으로 갈아 끼우기에 이른다. 그 후에도 그는 열심히 시가를 피웠고 결국 구강 전체에 번진 악성종양 - 그러니까 구강암으로 사망한다.


반전은, 그의 나이 83세의 일이라는 것이다.


지금 시대로 치면 중증의 마약중독자로 치부될 터인 사람이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사상가였다는 것은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불공평한 것은 그가 83세라는, 당시는 물론 지금으로 따져도 꽤 오래 살았다는 것이다. 결국 될 놈은 되고 안 되는 놈은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시가가 있어도 글을 쓸 수 없다"라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혼자만의 명언을 남기고 죽을 것이며, 프로이트처럼 위대한 사상가가 될 가능성은 높은 확률로 제로에 가깝다. 게다가 나는 그보다 일찍 죽을 것이다.


여름으로부터 조금씩 빼돌렸던 어둠만큼 겨울의 밤은 길었다. 이 긴 밤을 꼴딱 샌다 하더라도 나는 첫 문장을 적지 못한 채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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