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깃들어있는 1003km의 여정,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이슬람을 만나다>

길. 길은 많은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우리가 걷는 길 자체를 뜻하기도 하고, 개인의 삶이나 사회적ㆍ역사적 발전이 전개되는 과정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데 지향하는 방향이나 지침을 뜻하기도 하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길을 찾아 길을 걷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 드리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십니다. 세계 3대 성지 순례길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죠. 산티아고 길을 걷고 쓴 여행에세이도 국내외 저자를 불문하고 많이 출간되어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공식 사이트( http://peregrinossantiago.es/ )에 가면 월별 순례자 통계와 연간 통계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연간 통계는 2013년 자료(pdf)까지 올라가 있는데요, 통계를 살펴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습니다. 2013년에 총 215,880명의 순례자가 산티아고 길을 걸었는데, 그 중 우리나라 사람은 1.28%에 해당하는 2,774명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루트도 다양한데요, 역시 통계를 살펴보면 가장 많이 걷는 길이 프랑스 길(Camino Francés)로 70.30%를, 그 다음이 포르투갈 길(Camino Portugués)로 13.69%를, 그리고 이 책에서 걸은 플라타 길(Vía de la Plata)은 4.18%로 네 번째로 많은 순례자가 지나간 길입니다. 참고로 이 책 말고도 저자의 책 세권이 함께 출간되었는데 한 권은 프랑스 길을 걸은 이야기이고, 한권은 포르투갈 길을 걸은 이야기라고 하네요.

플라타 길은 과거 포에니 전쟁 때 카르타고의 한니발장군이 코끼리를 끌고 온 길로도 유명한데요, 세비야를 출발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1,003km에 걸쳐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에스트레마두라, 메세타, 칸타브리아 대산맥, 갈리시아 지방을 두루 지나는 코스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플라타 길에 많이 관심이 가는데요, 정말 단순한 이유지만 세비야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스페인 전체를 돌아본 건 아니지만 그중 세비야는 정말 인상 깊은 곳이자 스페인에 다시 간다면 꼭 한 번 더 들르고 싶은 도시이기도 하니까요.

저자는 두 딸의 엄마인 중년 여성입니다. 평범한 주부로 살다 50대에 이르러 도보여행을 통해 새로운 인생길을 걷습니다. 이 책은 2008년에 41일간 플라타 길을 걸은 기록인데요, 경험도 많고 포용력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연령대의 저자 때문인지 길을 걸으며 내면의 무언가를 깨닫는 과정에 대한 서술 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느낌이 강한 책입니다. 실제로 저자와 같은 시기에 플라타 길을 동행하는 사람들은 저자보다도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중간 중간 지역에 관련한 역사나 건축물에 대한 설명도 나오긴 합니다만 역시 이 책의 중심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자는 플라타 길을 걷기에 앞서 2006년에 프랑스 길을 걸었는데요, 그때 함께 한 프랑스 여성 피아(일정 내내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을 담당)와 플라타 길도 함께 합니다. 프랑스 길은 동에서 서로 이동하다보니 해가 늘 등 뒤로 뜨는데, 플라타 길은 남에서 북으로 이동하다보니 오른쪽에서 해가 뜹니다.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아름다운 일출을 즐길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날씨가 좋은 스페인이지만 저자가 걷는 기간에는 유독 비가 많이 내립니다. 무릎 위까지 물이 찬 냇가를 건너고, 진흙탕을 걷으며 지치기도 하지만 도보여행자들의 노고는 대평원의 밀밭과 꽃밭 등 대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충분히 보상 받습니다.

책에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걷는 과정 중에 묵기로 예정했던 숙소가 문을 닫기도 하고, 일행과 의견이 달라 기분이 상하기도 합니다. 그런 날엔 아무리 피곤해도 상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때론 길을 잃어 얼떨결에 찾아간 마을에서 머물기도 하고, 함께 걷는 사람들 사이에 로맨스가 생기기도 합니다. 잔잔하지만 일행만큼 다양한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빠르게 책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책 속 문장 중에 가장 와 닿은 부분

“먼 길을 걷는 이들은 긍정적이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며 사람을 대한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끼리 서로 만나 익숙해지는 데 필요한 건 긍정적인 사고와 열린 마음 뿐이다. 그것이면 된다. 다른 모든 것은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니까.” (92p)

여행에세이를 읽다보면 풍경에 대한 서정적 접근이 지나치다 싶은 경우가 생깁니다. 도대체 어떤 감성을 가지고 있어야 저런 문장이 나올까 싶기도 하고, 역시 작가 감성은 다른 것인가 싶기도 한데요, 이 책은 그와 달리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쓴 글이라기보다 저자의 일기를 엿본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길이란 무엇일까요? 길을 걷는다는 건 무엇일까요? 우연히 지나치는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게 하고, 스페인 여러 곳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이 1년마다 모여 길을 걷게 합니다. 때론 다른 여행자들의 오만과 무례함 때문에 기분이 상하기도 하지만 힘들게 걸은 뒤 만나는 뜨거운 샤워, 맛있는 음식, 포근한 잠자리에 기쁨을 느낍니다. 힘들지만 주변의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우연한 만남과 스치는 인연에서 힘을 얻습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올레길, 둘레길 등 우리 주변에도 길은 많이 있고 함께 걷고 인연을 맺을 사람도 많습니다. 책을 읽으며 제가 얻은 가장 큰 길도 역시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산티아고 길을 걷고 싶은데 그 거리 때문에 엄두가 안 나는 분들을 위해 통계 자료를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2013년 산티아고 길 순례자 중 33,461명(15.50%)이 60세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길에서 길을 찾고자 하는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책 권하는 냐옹이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