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서울에서 태어나지 않은 나는 서울 내에서라면 어디로 거처를 옮겨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단지 내가 주로 가는 곳, 만나야할 사람들이 사는 곳, 혹은 일하는 공간에서 가깝거나 멀다는 차이가 있을 뿐, 서울은 어디를 가도 서울일 뿐이다.

얼마 전 홍대에서 호주로 건너가 기술자가 되었다는 친구를 만났다. 그는 내 신학교 동기였으며, 지방에서는 꽤나 큰 규모를 자랑하는 교회 담임 목사의 아들이었다. 요즘 담임 목사는 보통 교회에 고용된 사람들이 많지만 그의 집안은 말하자면 오너다. 그의 할아버지가 개척한 교회에서, 그의 아버지가 목사로 일하고 있고, 그도 교회가 속한 교단의 신학교를 다녔으니, 신학교 시절 내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이 어땠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리는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이가 나쁠 이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별로 가까워질만 한 꺼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학교를 그만두기 직전의 한 학기동안 나는 대부분의 강의에 출석하지 않았고, 당연히 동기들을 만날 일도 없었다.

그런 그를 다시 만난 건, 내가 교회와 학교를 모두 그만두고 서울로 상경한지 두 달 정도 되었던 여름이었다. 그때 그는 해병대에서 복무하고 있었고, 마침 휴가를 나와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터미널의 작은 가게에 들렀다. 서로를 알아본 우리는 꽤 반가워했지만 나는 그의 이름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고, 대충 얼버무려 나중을 기약하는 인사를 나누었다.

그 다음에 만났을 때 그는 거제도에 있는 조선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휴가를 나온 군인이었고, 그는 나에게 술과 고기를 사주었다. 나는 그날 여전히 목사의 아들인 그의 앞에서 담배 연기를 연신 내뱉으며 엉망으로 취했다. 아침에 그의 숙소에서 눈을 떴을 때, 누군가가 우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없을거라고 말 했던 것 같은데, 그게 누구였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수 년만에, 그를 홍대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교포들이 많이 입을 것으로 추정되는 회갈색 점퍼를 걸치고 있었고, 본인 말로는 호주에서 고기를 많이 먹어 덩치가 커졌다고 했다. 여전히 술을 마시지 않으며, 내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떨떠름하게 지켜보는 그의 앞에서 나는 예전처럼 취하고 싶었지만, 그는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그가 호주에서 하고 있는 일은 간단히 말해 기술직 노동자였다. 그런 그에게 샌님 같은 직함이 박힌 내 명함을 건네주며 부끄러웠지만, 그는 나의 새로운 직업을 꽤 마음에 들어했다. 우리는 모두 고향을 떠나서야 제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서로를 만나 우리가 꽤 좋은 선택을 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가끔 서울살이의 팍팍함을 토로하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대개 그들은 태생이 서울인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나는 안락한 도피처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나는 전혀 돌아가고 싶지 않다. 서울을 떠난다면, 떠나고 싶어진다면, 나는 당연히 고향이 아닌 더 큰 도시로 갈 것이다. 이건 내가 고향을 싫어하기 때문이 전혀 아니다. 단지 할 수 있는 일, 만날 수 있는 사람, 일 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은 곳을 원하기 때문이다.

호주로 돌아간 친구는 백인 미녀와 곧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시드니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한 번 가겠다고, 마치 오래 전 터미널에서 처럼 나중을 기약해두었다. 다시 만날 때 우리가 어디에 있다고 해도 서로에게 놀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날의 우리가, 각자의 제자리에 서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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